5-1. 단 한 치 앞도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사랑

나르시시스트 양육자가 지배하는 세계

by 은현

5-1. 단 한 치 앞도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사랑 / 나를 버려주세요



[단 한 치 앞도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사랑]


신체 학대는 겉으로 드러나고 눈으로도 보인다. 그리고 학대를 당하는 대상은 실제로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기억하고 인지하게 된다. 그에 반해 정서 학대는 신체 학대와 달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측정하기도 힘들다.

사실 이 두 가지 학대 방식은 각각 따로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다면 당장의 고통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신체 학대가 정서 학대보다 더 위급한 사안일 수밖에 없고, 신체 학대에서 벗어나는 것을 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먼저 신체 학대에서 벗어나야 정서 학대에 귀라도 기울일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관련 도서를 몇 권만 읽어보아도 조금씩 단어나 표현 방식이 다를 뿐 비슷한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도 책마다 같은 개념을 설명하지만 ‘내성적’, ‘조용한’, ‘은밀한’ 등의 다른 단어로 번역되기도 하는 것처럼)


아래는 그 중 『그 사람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입니다』와 『나는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에 나오는 행동 패턴을 인용했다.
(용어에 관한 간단한 설명은 글의 맨 아래 [개념 설명]에 따로 빼두었다. 조금 더 자세한 사항이 궁금하다면 인용된 도서를 직접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 사람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입니다』
- 세 단계: 애정 공세, 펌하, 버림
- 통제와 조종(가스라이팅, 삼각 관계화, 간헐적 강화, 거짓 사과, 주제 돌리기 및 초점을 틀어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우기, 비난하기, 양극단의 혼합된 메시지, 벌주기 등)


『나는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가스라이팅, 미끼, 투명인간, 러브바밍, 스크루지, 더 무서운 조력자들



“나르시시스트 학대에는 전형적인 행동 패턴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세 단계 패턴을 따른다. 첫 번째 단계는 보통 애정 공세(또는 이상화 단계)로 불리며, 그 다음은 폄하, 마지막으로는 버림이다.”
“이를 단계로 설명하면 행동이 순차적으로 일어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그렇기도 하지만, 처음 두 단계는 마지막 버림 단계까지 관계 전반에 걸쳐 간헐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세 행동 사이클이 여러 번 반복될 수도 있다.”
『그 사람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입니다』 _(2. 세 단계: 애정 공세, 폄하, 버림 中)


간헐적 강화 / 채찍과 당근 번갈아 주기
“간헐적 강화는 나르시시스트가 설정한 규칙에 따르는 조건적인 행동을 말한다. 그들의 사랑은 불규칙적이며 그들의 조건에 달려있다. 이로 인해 당신은 불안정해지고 그들의 사랑과 관심을 갈망하게 된다. 그 관계는 미묘한 잔인함과 주기적인 애정이 혼합되어 나타난다. 그들은 당신에게 구애하다가도 갑자기 멀어진다.”
『그 사람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입니다』 _(5. 통제와 조종 中)




사랑,

나는 늘 사랑 앞에서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시시각각 변해버리는 엄마의 사랑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다. 내일이 없었고, 6시간, 아니 단 1분 뒤도 기약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항상 ‘오늘’, ‘지금’이 아니면 안 됐다. 정확히는 찰나의 어느 시점.

나의 원가족, 내가 처음 마주한 세상에서는 내가 가진 전부를 내어주어도, 가진 것을 모두 활용해도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나에게 사랑과 애정은 말 그대로 ‘단 한 치 앞의 미래도 기약할 수 없는’ 공허함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밝고, 맑고, 명랑한 아이였다. 엄마의 통제가 나를 서서히 짓밟아 가기 전,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까지는 그런 모습이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족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사랑이 넘치던 아이였기에(어릴 때 나는 생일이 되면 집 주변에 살고 있는 친한 이웃들의 별명을 언급하며 그들의 수만큼 초를 불어 그들의 행복을 바랐다), 나는 내가 가진 사랑을 모두 내어주고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어 했을 것이다.


어떤 날은 엄마가 보인 사소한 반응으로 기대에 들떠서, 내가 품고 있는 모든 것을 엄마에게 주려고 다가가면 엄마는 내가 가진 것을 앗아간 뒤 잠시 비친 반응을 거두고 나를 내쳤다.

나는 내 것을 내어주는 게 익숙했다. 나를 깎고 잘라내는 것. 언제나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나의 모든 것을 주어도 받을 수 있을지 모를 사랑의 부스러기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다.


이러한 모습은 두 번째 사회,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점점 더 영향을 미치게 됐다. 집에서 엄마에게 했던 것처럼 친구들에게 나의 모든 간과 쓸개를 빼주었다. 친구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채서 챙겨주고, 불편할 것 같은 일을 미리 감지해서 하지 않는 것 등등. (이 모든 상황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 점을 염두하고 돌아보면 내가 친구들 사이에서 겉돌거나 이상한 친구들이 꼬였던 게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된다. 나이가 어릴 땐 약간은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그 나이대에 맞는 행동이었을 텐데 나는 반대로 했던 거다. 그런 나의 모습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족족 챙기는 애들이 꼬이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이 지나도 다음 날 학교에서 만날 수 있는 게 반 친구들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두려웠던 것 같다. 오늘은 이렇게 지내지만 내일은 인사조차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던 것도 같다. 혹은 오늘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내일은 나를 때리거나 배척하거나 무시할지도 모른다고. 하루치의 사랑도 기약이 없으니 내일이라는 시간은 언제나 새로웠고, 관계는 매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람들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하면 그사이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그래서 나는 학교가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닥쳐오기 전까지 1분도 기약할 수 없는 사랑 앞에 늘 모든 걸 바쳤다. 살아오면서 만난 반 친구, 학교 선생님 등 나를 스쳐 간 애정에 많은 것을 기대었던 것 같다. 어린 나는 뭐가 그렇게 간절했을까. 엄마에게 받지 못하는 사랑을 밖에서는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티끌 같은 사랑이라도 얻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연료로 태워버렸기 때문에 나는 항상 지쳐있었다. 좀 더 크고 나서는 엄마와의 관계로 인해 집에서 온갖 에너지를 빼앗겨서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학교 친구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거나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웠고, 자연스럽게 집에서 엄마와의 관계를 되풀이하는 착취적인 관계를 반복했다. 그런 관계가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했기에.


또래 친구들이 공부에 힘을 쏟기 시작할 때, 나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공부뿐만 아니라 그 나이대 또래 친구들이 관심 있어 할 만한 모든 활동에 관심을 쏟을 에너지가 없었다. 나의 모든 시간은 엄마를 향해있었고(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나이가 조금 들어서는 엄마에게 모든 걸 맞춰야 하는 엄마의 규칙들 때문이었다), 24시간 풀가동하고 있지만 전력만 소모하고 있는 고장 난 냉장고 같은 느낌이었다.

집 안에서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발판 삼아 사회로 나아가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했지만, 틈만 나면 폭발하고 비난하고 분노하고 화내고 폭력을 행사하는 엄마 앞에서는 생존 말고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아주 가끔 사소한 사랑이 내비치는 엄마의 모습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언제 받을 수 있을지 모를 사랑을 좇다가 학교는 학교대로 적응하지 못했고, 집은 집대로 적응할 수 없었다. 기약할 수 없는 사랑 앞에 집조차 하나의 전쟁터였다.


사랑보다 일상적이었던 건 강렬한 비난과 폄하였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지 못할 거라는 걸 어린 나는 당연히 몰랐겠지. 그래서 늘 믿고 버림받고의 무한 굴레와, 아주 사소한 친절에 온 마음을 다 줘버리고 상처받고의 반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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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안에 시시각각 변하는 엄마의 태도가 드러난 일기 내용.
몇 시간 채 되지 않는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또 혼(맞거나 욕먹는 상황)이 났다.






[나를 버려주세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나를 버렸으면 좋겠다.’ 내가 엄마를 버릴 수 없으니 엄마가 나를 버려줬으면 좋겠다. 내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니.

기약할 수 없는 사랑의 고통은, 제멋대로인 엄마의 사랑 방식은 차라리 엄마가 나를 버렸으면 좋겠다는 갈망으로 바뀌었다.


엄마는 종종 심리적 단절을 하나의 방식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엄마는 나를 버렸다가 다시 품고 버렸다가 주워 담고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언제나 희망 고문을 했다. 그럴 때면 매번 버려졌다는 느낌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그 느낌이 익숙해지지 않는 것에 나를 탓했다. 이쯤 되면 익숙해지고 무뎌질 때도 되지 않았냐고. 매번 무너지면서도 그런 사람한테 사랑과 관심을 바라냐고.

그러다가 차라리 엄마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미워하겠다고 다짐도 해보았지만, 사람을 미워하는 게 그리 쉽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엄마를 저버릴 수 있을까 하는 죄책감과 함께, 차라리 버려지는 게 마음이 더 편하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다음에 나를 버릴 땐 다시 나를 품지 말고 제발 그대로 버려줬으면 좋겠다고.


엄마가 나를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갈수록 점점 더 다양한 불안과 상상을 몰고 왔다. 가족이 나를 두고 다 죽어버리는 상상을 하거나, 가족을 두고 내가 죽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그걸 열렬하게 믿었다. 상상은 점점 구체적으로 변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제발 그렇게 되라고 매일 밤 기도했다. 어떤 날은 실제로 믿었고(믿고 싶었고), 상상 속에서 가족의 장례식을 치르기도 했다.

이 상상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이런 상상을 하던 나의 모습을 타인에게 이해 가능한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오래 고민했다.

당시의 나는 ‘나 빼고 가족이 다 죽는 그런 상상’이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 느낄 고통의 강도를 매일 일상에서 겪고 있었던 거다, 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당신을 애처럼 다루고 ‘가르치며’ 처벌하고 행동 방식을 지시한다. 그들은 당신과 공유한 모든 취약한 사안을 꺼내 가장 파괴적인 방법으로 상처를 입힌다. (…) 때로는 그들이 차분하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또 어떤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면서도 굉장히 정상적인 이야기인 것처럼 전달한다. 그들은 사랑과 애정의 말을 섞기도 한다. 그러다 다음 순간 당신이 사악하다고 말하며 이제 끝이라고 선언한다.”
『그 사람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입니다』 _「버림 단계」 中



언제 한 번 엄마는 ‘너 어릴 때 너가 말을 안 들어서 현관 밖으로 내보내서 혼쭐을 낸 적도 있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엄마는 거기에다 ‘그래서 니가 다시 말을 잘 듣게 됐어’라는 말도 덧붙였다.


엄마는 “너 엄마 말 안 들으면…”이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해서 ‘관계를 끝낸다’거나, 니가 이러이러한 잘못(지금 생각해 보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을 저질렀다는 말로 시작하여 나의 취약한 부분을 강렬히 비난하고 상처 입힌 뒤 대화를 끝냈다. 어떤 때는 그렇게 욕을 쏟아내고 서는 ‘그래도 너는 이러이러한 부분이 있어서 그나마 낫다’라는 식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가끔은 엄마가 말을 시작해 놓고 중간에 마음대로 대화를 끝내버리기도 했다(대화 속에는 그 어떠한 맥락도 내용도 없고, 어렴풋이 대화했던 것 같은데? 하는 상황만 남기는 행동).


엄마와 다투고 나면, 사실 다툰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욕을 먹고 비난을 듣는 상황이지만, 상황이 종료된 후 며칠 동안 엄마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걸어도 답 없이 무시하거나 없는 사람처럼 나를 대하기도 했는데, 그런 무거운 분위기에 나는 몇 번 말을 걸며 눈치를 보다가 엄마가 마음이 풀릴 때까지 말을 걸지 않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너는 어떻게 말 한 번을 안 거니?”라거나 “나랑 이렇게 계속 말 안 할 거야? 계속 말 안 하면 연 끊어.”라고 했다.

이 방식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되어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똑같았고,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도 엄마는 ‘너랑 연 끊을 거야.’, ‘너랑 말 안 할 거야.’라는 방식을 사용했다. 엄마는 자기 마음대로 대화를 시작하고, 언제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쟁취한 뒤 일방적으로 대화를 종료했다.


엄마는 내가 자신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또 내가 엄마를 버리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고, 그러한 점을 정말 잘 이용했다.

그러니 나는 제발 엄마가 나를 버려줬으면 하는 마음을 버릴 수 없었다.






[참고 도서]
『그 사람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입니다』
『나는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개념 설명]


『그 사람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입니다』_(2. 세 단계: 애정 공세, 폄하, 버림 中, 5. 통제와 조종 中)
- 세 단계: 애정 공세, 펌하, 버림
- 통제와 조종: 가스라이팅, 삼각 관계화(=사회적 상황에서 한 사람이 다른 두 사람 간의 관계를 이용하여 갈등을 유발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는 전략), 간헐적 강화, 거짓 사과, 주제 돌리기_초점을 틀어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우기, 비난하기, 현실 왜곡, 간접적인 모욕, 양극단의 혼합된 메시지, 벌주기 등


『나는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_(Part2-Chapter6 나를 조종했던 것들과 헤어지기中)
- 가스라이팅: 상대가 인지하고 있는 현실적인 상황, 느끼고 있는 감정, 지니고 있는 기억들이 마치 사실이 아닌 것처럼, 잘못된 것처럼 받아들이도록 유도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대에게 혼란을 야기한다.
- 미끼: 상대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자극하기, 일부러 상대의 취약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말이나 행동을 함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화를 돋우어 극적인 감정 반응을 유도한다.
- 투명인간: 자신이 요구하는 대로 상대가 따라주지 않을 경우 그들은 상대와 말을 섞지 않거나 상대를 보고도 못 본 척 무시해버리는 투명인간 취급을 하기도 한다. (…) 비슷한 행동으로 침묵, 눈 마주치지 않기, 투명인간 취급하기.
- 러브바밍: 과도한 애정 공세로 관계 초반에 상대를 끌어당기는 유혹 방법.
- 스크루지: 유독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인색함, 권력 행사와 통제를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 돈이기 때문.
- 더 무서운 조력자들_인에이블러enabler: 나르시시스트는 조력자 없이 혼자서 존재하기 어렵다. 나르시시스트가 잘못된 언행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가정이나 직장 또는 사회 전반적으로 나르시시스트의 잘못을 묵인하고 지지해주는 특정 체제가 존재하기 때문.




1. 이 글은 독립출판을 염두하고 쓰는 글입니다. 올해 말로 계획하고는 있지만 글을 쓰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계획이 고정되면 공지 예정)

2. 출판을 하게 될 경우, 출판되는 책은 퇴고를 거치면서 내용이 살짝 바뀌거나 수정되거나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연재했던 글은 수정없이 포스타입에 유료로 남겨둡니다.(출판 시 소장 가격 변경+공개 상자 이동 예정/현재 포스타입 소장 100원 고정) / 브런치 스토리의 경우 글이 비공개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3.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풀어쓰기로 마음 먹은 만큼 어떤 사건들은 임의로 수위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