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양육자가 지배하는 세계 속 생존기
이해되지 않는 엄마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엄마의 입을 통해 들었던 엄마의 개인적 경험은 물론이고, 엄마와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었거나 공유하고 있는 세대의 슬픔을 반영한 시대적 배경을 통해서도 엄마의 슬픔 같은 것을 헤아려보려 했다. 그러면 엄마라는 사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바랐다.
엄마가 직접 말하는 정보는 한결같았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외할머니가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외에 시댁 식구에게 대접 한 번 받지 못하고,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남편에… 등등.
외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서는 엄마가 온전한 애도 과정을 거치지 못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 외에 있었던 일들은 엄마 나이대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시대적인 슬픔으로 해석했다.
엄마가 똑바로 언급하지 않고 흘리듯 말하는 정보의 경우에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바로 밑에 남동생이 있는 엄마는 남동생에게 많은 것을 빼앗겼을까? 같은 추측들.
외부 상황을 통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면 내부의 영향도 함께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내린 결론은 엄마는 엄마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오는 트라우마 반응, 당시 엄마와 같은 시대를 살아왔던 여성들에게 부여된 불행, 외할머니를 잃은 뒤 관계에서 이별(단절)에 관해 불안이 강한 사람, 기질적으로 통제 성향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해결되는 것이 없었다. 그걸로는 한참 설명이 부족했다. 엄마가 나에게 보이는 행동에 관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다.
한 사람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알게 되면 그 사람을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될 텐데. 엄마 개인의 경험과 사회의 시대를 반영해 엄마의 삶을 이해해 보려 해도, 정말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더더욱 미궁 속으로 빠질 뿐이었다. 아주 커다란 부분이 빠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늘 빈 공백으로 남겨둔 채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는 거겠지, 나에게 말하지 않았거나 말 못 할 무언가가 있는 거겠지… 하며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관해서는 늘 (딸로서) 내가 부족해서, 혹은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과거 경험이 영향이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도 같다.
엄마를 정상적인 보통의 사람(나르시시스트가 아닌)으로 이해한다면 이 해석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서술된 책을 읽기 전까지는.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례와 사례 안에 서술된 대사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여기에서 ‘정상적’, ‘보통’이라는 의미는 ‘나르시시스트가 아닌’이라는 협소한 의미로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엄마가 한 말에 과장이나 모순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혹은 거짓이 있거나.
인간이 태어나고 죽기까지 모든 것에는 일대일 대응의 원인과 결과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엄마와 나 사이에 있었던 모든 관계 속 역동이 ‘나르시시스트’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분명 엄마와 같은 시대를 살아왔던 여성들이 겪었던 어떠한 시대적 불행이 그에게도 드리워졌겠지. 하지만 내가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마지막 조각은 ‘나르시시스트’라는 조각이었다. 내가 평생 풀지 못하는 숙제를 풀 결정적인 단서가 눈앞에 나타난 기분이었다.
결정적인 조각을 찾은 후, 나르시시스트(자기애성 성격) 부모를 설명하는 관련된 도서를 몇 권 더 읽었다. 엄마의 심리적 기저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 및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겪은 모든 상황과 감정, 그리고 아동 학대에 관한 서적과 논문을 읽어도 풀리지 않던 의문이 순식간에 해소되었다.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사례를 직접 겪었거나 엄마에게 직접 들어보았던 말이 서술되어 있었고, 누군가가 내 삶을 몰래 연구해서 책으로 낸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후 엄마가 나에게 말했던 엄마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에게 쏟아내던 모든 말도.
언제나 수없이 많은 말을 쏟아내는 엄마보다, 오히려 말이 별로 없는 아빠의 어린 시절(아빠가 직접 말하던 아빠 삶에 관한) 정보가 더 많았다. 아빠가 해준 이야기를 통해 아빠의 개인적인 경험과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 자식의 관점에서 내 나름대로 아빠의 일생을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가 직접 말한 정보를 토대로는 그 어떤 선형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누군가 일부러 가위로 잘라낸 것처럼 뚝뚝 끊어진 정보들은 그 어떤 이야기도 만들어낼 수 없었다.
관련 도서 중 책 『그 사람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 입니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
"은밀한 정서적, 심리적 학대는 사이비 종교에서 일어나는 일과 같다." (14. 치유와 회복으로 가는 길 中)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 종료는 사이비 종교에서 빠져나올 때의 경험과 비슷하다."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러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에게는 "오랫동안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와 함께 생활한 후에는 이 성격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담사를 통한 정규 치료보다 실제로 이단 탈출 프로그램(사이비에서 빠져나오도록 돕는 심리 치료 방식)이 더 유익할 수 있다." (1. 내현적 수동-공격형 나르시시스트는 어떤 사람들인가? 中)
책에 언급된 구절은 아주 어릴 때부터 이어져 온 엄마의 이해되지 않는 모든 행동을 벗어나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거짓된 어떠한 공간에서 겨우 살아남아 탈출한 것 같은 기분. 밖으로 나오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그런 기분.
깨달음의 첫 시작점을 끊은 『그 사람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 입니다』부터 나르시시스트 관련 도서를 하나 둘 읽기 시작하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떤 명쾌한 해답을 발견한 사람처럼 머리가 맑아졌다.
나를 확신하지 못하고 언제나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일삼으면서 살아왔는데 그런 나의 행동과, 어릴 때부터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었던 엄마의 이상한 행동들을 온전하게 언어로 설명할 방법이 생긴 것이었다.
모순을 하나둘 깨닫게 되던 시점 다시 떠오른 기억이 하나 있다. 상담을 받으면서 들었던 이야기였다.
상담에서 나는 엄마와 외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고. 너무 어린 나이에 자신의 엄마를 잃어서 그 영향이 저에게 온 게 아닐까요. 라고.
하지만 상담사는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부모의 죽음이 ○○씨의 어머니에게 슬픈 일인 건 맞지만 그 나이는 ○○씨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어린 나이가 아니에요. 성인이니까요.”라고 했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40대를 바라보는 30대 후반에 돌아가셨다. 그 당시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그때부터 들어왔던 이야기라서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정말 철석같이 믿었다. 당시 초등학생인 나의 나이만큼 엄마가 어릴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아직도 엄마가 외할머니를 잃었을 때의 나이보다 한참 어리다.
상담에서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그런가? 하고 말았는데, 책을 읽고 난 뒤 돌이켜 보니 이제는 어떤 의미이고 어떤 느낌인지 확실히 실감 났다.
내가 믿었던 모든 것이 실제로는 약간씩 비틀어진 모순이라는 걸 이런 식으로 하나씩 깨닫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르시시스트’라는 용어의 체화를 통해 살아오면서 엄마가 나에게 보여준 것, 나에게 했던 말이 모두 ‘가스라이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모든 삶을 다시 경험해야 했다. 평화롭고 좋은 기억이라 강제로 제목 붙여졌던 기억을 다시 살펴보면서 살아오면서 겪었던 모든 경험에 다시 이름을 붙여야 했다. 사랑은 폭력으로, 체벌은 학대로, 나에게 쏟아내던 엄마의 말은 가스라이팅으로.
당시 기이하다 여겼지만 무시했던 나의 감각이 정답이었다는 확신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엄마가 나에게 했던 그 모든 말과 행동이 ‘나를 위함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릴 때 감정쓰레기통으로 썼던 일기를 다시 살펴봐야 했다. 언제부터 잘못된 건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엄마가 하는 말에 어떤 부분이 거짓이었는지, 어떤 말이 나를 조종하기 위한 말이었는지. 엄마가 내 자아의 이미지에 씌운 거짓을 가려내야 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엄마가 쏟아내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모른 채 막연히 당황스럽고 기분이 나쁘다는 느낌만 남은 기억을, 이제는 비난인지 모욕인지 폄하인지 빈정인지 조롱인지 비아냥인지 구분짓지 못했던 말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을 해야 했다.
그리고 모든 걸 다 던져두고서라도 엄마는 외할머니와 사별을 경험했다고 해서 나에게 하는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면 안 됐다. 친가와의 갈등이 있어서, 자신이 대접받지 못한다고 해서 나를 화풀이 대상으로 대하면 안 되었다. 엄마가 어떤 경험을 했던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비난하고, 나의 삶을 통제하며 나라는 하나의 존재에게 인간 이하의 대접을 하면서 보호받아야 할 나의 어린 시절을, 청소년기를, 나의 삶을 빼앗아선 안 되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행동은 정당화할 수 없다.
[참고 도서]
『그 사람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 입니다』
1. 이 글은 독립출판을 염두하고 쓰는 글입니다. 올해 말로 계획하고는 있지만 글을 쓰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계획이 고정되면 공지 예정)
2. 출판을 하게 될 경우, 출판되는 책은 퇴고를 거치면서 내용이 살짝 바뀌거나 수정되거나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연재했던 글은 수정없이 포스타입에 유료로 남겨둡니다.(출판 시 소장 가격 변경+공개 상자 이동 예정/현재 포스타입 소장 100원 고정) / 브런치 스토리의 경우 글이 비공개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3.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풀어쓰기로 마음 먹은 만큼 어떤 사건들은 임의로 수위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