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소유, 소유할 수 없음

나르시시스트 양육자가 지배하는 세계 속 생존기

by 은현




물건: 일정한 형체를 갖춘 모든 물질적 대상

소유: 가지고 있음. 또는 그 물건.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논문을 찾아보다 알게 된 정보 중 하나는 아동의 물건을 부수는 것도 학대에 해당한다는 정보였다.


그날은 5월 15일. 당시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슬라이드 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엄마의 심기를 거스른 게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전후 상황은 기억나지 않고 거실에서 엄마가 내 폰을 높이 들고 있는 장면부터 그날의 기억이 시작된다.

엄마는 들고 있던 나의 폰을 그대로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그러고는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아마 그랬던 것 같다) 다시 폰을 주워 한 번 더 세게 바닥으로 내리쳤다. 뭐라 뭐라 말했던 것 같은데… 소리(나를 향한 욕이나 비난 같은)를 질렀던가? 이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그러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그렇게 몇 번 더 바닥으로 내던져진 폰은 화면이 있는 쪽과 자판이 있는 쪽, 반으로 쪼개졌다. 엄마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두 개로 분리된 기계를 번갈아 주워다 몇 번이고 다시 들었다가 바닥으로 내리꽂아서 박살 냈다. 파편이 이리저리 튀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화면 패널이 있는 쪽과 자판이 있는 쪽이 완전히 산산조각 날 때까지 다시 주웠다가 내리치고 다시 줍고 바닥으로 내쳤다.

엄마는 늘 이런식으로 급작스럽게 감정을 폭발시키고 폭력적인 행동을 쏟아낸 후 유유히 자리를 떠난다.


그렇게 한바탕 지나가고 고요해진 거실. 바닥에 먼지처럼 잘게 조각난 조각들을 치우는 건 내가 해야 했다. 나는 맨손으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조각난 부속품들과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 부스러기들을 그러모아 치웠다.

조각이 부서지면서 이곳저곳으로 날아갔는지 그날 이후로도 종종 소파 밑이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자잘한 부속품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런 조각들은 제대로 치우지 않았다고 혼이 날까 봐 일상을 지내면서 눈에 보일 때마다 몰래 치웠다.


그날의 나는 핸드폰이 왜 박살이 나야 했는지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박살 난 폰은 두 번째였다. 첫 번째 폰은 어떻게 되었는지 까먹고 있다가 두 번째 폰이 부서진 날에 나는 일기장에 ‘또’ 박살 났다고 기록한 걸 보게 되었다.

사진1.png


그해의 나머지 7개월을 보내는 동안 나는 폰이 없는 상태로 학교에 다녔다. 내가 아무런 불편함을 못 느끼고(엄마에겐 그렇게 보였나 보다) 지내는 것 같은 모습에, 엄마는 나와 연락이 안 되는 게 너무 짜증 나고 화가 난다면서 그해의 마지막쯤(12월 30일)에 폰을 새로 사주었다.

(대리점에 햄드폰을 받으러갔다는 내용)

이 일련의 사건들의 정확한 날짜를 알고 있는 이유는 (위에 첨부한) 일기장에 적혀있어서다.



엄마는 유독 전자제품 관련해서 다른 물건보다 더 엄격했다. 무슨 말이냐면 MP3고, 전자사전이고, 핸드폰이고 간에 DMB 기능이 있는 전자기기를 사주지 않았다(나는 집에 있는 TV도 자유롭게 볼 수 없었다). 늘 그런 기능이 있는지 직원에게 물어보거나 내가 기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통해 확인했다.

그리고 어떤 종류든 상관없이 내가 전자기기를 사용하고 있으면 그 자체만으로 혼을 냈다. 혼내는 이유는 늘 얼토당토않거나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엄마는 내가 전자기기를 사용하고 있으면 ‘논다’라고 말하면서 혼을 내기도 했는데,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는 것도, 전자사전으로 단어를 검색해도, MP3로 노래를 듣고 있어도 엄마는 저걸로 딴짓한다며 딴지를 걸거나, 모든 전자기기는 ‘오락기기’라는 이상한 논리로 나를 비난했다. 어떤 종류의 전자기기든 관계없이 내가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모습이 포착될 때면 엄마만의 기준으로 혼을 내거나 종종 빼앗아 가서 며칠이고 몇 주고 못 쓰게 하곤 했다.

사진3.png (고등학교 2학년 일기장)


이걸 또 다행이라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된 요즘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면 나는 아마 성인이 되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구경도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고등학생 때 친구가 안 쓰는 공기계를 빌려서 몰래 썼다.)



물건을 박살 내는 것뿐만 아니었다. 엄마는 내 물건을 빼앗거나,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나의 물건을 처분해 버렸다. 버리거나, 누군가에게 줘버리거나. 가끔은 그냥 가져가거나.

이사로 인해 중학교와 고등학교 합쳐서 각 두 벌씩. 나는 교복을 네 벌이나 입어보았지만 나에게 남아있는 교복이 단 한 벌도 없다. 엄마는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줘버렸다. 물론 교복이란 부모님이 사주는 것이고, 이사로 인해 앞으로 입을 일이 영영 없을 테니 소유권을 주장하기엔 부족할 수 있겠지만.

나중에 대학교에 들어간 후 동기들이 만우절에 교복을 입고 오자고 서로 대화를 나눌 때 나는 어울리지 못했다. 교복이 없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이런 경우와 비슷한 일(비슷한 나이 또래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차단되는 경험)을 성장하는 내내 너무나도 여러 번 반복해서 겪었던 탓에, 성인 이후에 이런 경험을 맞닥뜨릴 때마다 넌덜머리가 났다. 또, 또, 또. 나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사람들 틈에 못 끼는구나.



교복 외에도 다양한 물건들이 엄마 마음대로 정리 리스트에 해당되었다. 물어보면 이미 다른 사람에게 갔거나, 버렸거나 둘 중 하나였다. “너한테 이제 필요 없지 않니?”라는 말과 함께. 가끔은 “내가 왜 니 허락을 맡아야 되니?”, “그거 내 돈 주고 산 거잖아.”라며 그 물건의 소유권은 사준 사람의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중학생 때쯤 아빠가 생일 선물로 만화책 세트를 사준 적이 있다. 며칠 뒤 택배가 도착했는데 엄마는 어떤 이유(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를 들어가며 그 택배를 뺏어가 돌려주지 않았다. 나는 택배를 뜯어보지도 못한 채 빼앗겼다.

소유권은 사준 사람에게 있다고 해놓고 엄마는 말을 바꿨다. 온갖 이유를 들며 돌려주지 않았다. 결국엔 성인이 되면 돌려주겠다는 말을 했고, 나는 그 말을 듣고 포기했다. 엄마의 말은 지켜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얼른 마음을 포기하는 게 나에게 더 이로웠다.


나의 예상대로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돌려받지 못했다. 20대 중반이었던가? 어느 날 문득 나도 까먹었던 그 만화책 세트가 생각났다. 달라고 언급했더니 그 일을 별일 아닌 걸로 취급하면서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니. 니가 안 가져간 거잖아. 가져가지 그랬어? 여태 지가 안 가져가 놓고 왜 나한테 그러니?’라며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말했다. 그리고 어디 있는지 기억나지 않으니 알아서 찾으라고 했다.



나에게 물건이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내 것이 아니게 될 수 있었다. 어쩌면 애초에 이 세상에는 ‘내 것’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이겠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떠한 것이든 ‘나의 것’이라는 애정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어린아이에게 그게 가능할 성싶지만…



이러한 일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이어졌다.

엄마는 매번 내가 주문한 택배 박스를 말없이 다 뜯어버렸다. 택배 박스를 포함해 상품 박스까지 다 뜯어놓기도 했다. 이런 날이 이어지다 결국 나는 엄마와 다퉜다.

그때 엄마는 ‘그 물건 사는 용돈 누가 주는데’, ‘별스러운 가스나’, ‘유별나다 유별나’, ‘이런 건 왜 사니?’, ‘됐다, 됐어. 더럽고 치사해서 이제 안 뜯어준다’, ‘여태 너를 위해 택배 박스를 직접 정리해 준 건데, 엄마한테 감사하지 못할망정’이라는 말도 같이. (엄마는 내가 산 물건을 보고는 여러 개 구매하게 되는 화장품이나 엄마가 보기에 좋아 보이는 물건 같은 것들을 하나만 달라고 가져가기도 했다)


친구가 생일 선물로 우양산을 사준 적이 있다. 두 개를 사줬고 개중 하나가 고장은 아닌데 너무 빡빡해서 사용하기에 조금 불편했다. 이왕이면 조금 더 편한 게 손이 가니까 나는 상대적으로 덜 불편한 걸 들고 다니던 중이었다. 선물을 받은 지 3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엄마가 ‘못 보던 우산이 있네?’ 하고 말을 걸어왔다. 나는 친구가 선물로 주었다고 답했다. 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하나 달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의 머릿속에서는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우양산이 괜찮은데, 저 나머지 하나는 사용감이 좋지 않으니 내가 쓰던 걸 줘야 하나? 하지만 그러면 내가 받은 생일 선물을 내가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게 아닌가? 그리고 내가 사용하던 걸 주면 그건 그거대로 쓰던 거 주냐고 뭐라할 텐데. 그렇다고 저 사용감 좋지 않은 우양산을 줬다가는 어떤 욕을 들으려고… 너무 많은 생각이 엉켜서 복잡해졌다.

고민하다가 엄마에게 두 우양산의 상태를 설명했다. 하나는 내가 이미 사용하던 거고, 하나는 사용감이 좀 빡빡하다고. 엄마는 그런 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자신은 기분이 나빠졌고, 삐졌다는 티를 냈다. ‘두 개 중에 니가 안 쓰는 거 줘’, ‘두 개나 있으면서 하나도 안 주냐?’, ‘나는 너한테 얼마나 많이 사줬는데’, ‘그 뭐 좋은 거라고 두 개나 있으면서, 딸이라는 게 지만 알아서… 엄마한테 그거 하나 주는 게 그게 그렇게 아깝니?’라고 하면서.

엄마의 말을 듣자마자 직감했다. 이럴 땐 설명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엄마가 원하는 정답을 맞혀야 했다. 두 개 중 뭐든 하나라도 손에 쥐여주지 않으면, 엄마는 나를 만날 때마다 이 이야기를 무한반복 할테고, 이 상황(딸이 지 것만 끔찍하게 챙겨서 두 개나 있음에도 자신에게 우양산 하나를 주지 않음에 서운함을 느낀 일)을 몇 년 동안 우려먹겠다 싶어서 결국 나는 내가 쓰던 우양산을 줬다. 엄마는 기뻐했다. ‘나는 이렇게 남이 쓰던 거 얻어 쓰면서 지지리궁상으로 산다…’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우산과 양산 겸용임에도 나는 그날 이후 엄마가 그 우양산을 직접 사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어떤 경험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는 나중에 알게 된다. 과거의 경험에서 느낀 ‘어떤 것을 가질 수 없다’라는 느낌과 그 느낌에서 파생된 감정은 끈질기게 나를 쫓아왔다. 그건 이어지고 이어져 결국 나는 내가 스스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무언가를 구매하더라도 소유를 느낄 수 없었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처음에는 물건에 머물렀지만 나중에는 경험으로까지 확장되는 기분이었다. 갈망할 만큼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어도, 하고 싶었던 것을 경험해도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떤 물건은 가지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결될 다양한 경험을 강제로 차단당했다.

'내 것'이 없는 삶. 살아오면서 내 삶에 다양한 물건이 있었음에도 나는 언제나 손에 쥐는 것 없는 삶을 사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삶. 어쩌다 무언가를 가져도 가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는 삶. 만약 아주 조금 이라도 가졌다는 느낌이 들어버리면, 얼른 ‘내 것’이 아니라고 털어버리거나 애정을 떼어버려야 하는 삶.


분명 살아오면서 다양한 물건을 손에 쥐어보았는데, 손에 든 모든 것들은 언제든 신기루처럼 사라지기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버릴 것도 없으면서 다 버리고 떠나고 싶었다. 내 것이 아닌 물건들 사이를 떠나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그 무엇도 가질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떨칠 수 있을 것 같았다.








1. 이 글은 독립출판을 염두하고 쓰는 글입니다. 올해 말로 계획하고는 있지만 글을 쓰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계획이 고정되면 공지 예정)

2. 출판을 하게 될 경우, 출판되는 책은 퇴고를 거치면서 내용이 살짝 바뀌거나 수정되거나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연재했던 글은 수정없이 포스타입에 유료로 남겨둡니다.(출판 시 소장 가격 변경+공개 상자 이동 예정/현재 포스타입 소장 100원 고정) / 브런치 스토리의 경우 글이 비공개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3.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풀어쓰기로 마음 먹은 만큼 어떤 사건들은 임의로 수위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