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엔 싸우지말자 (feat. 내일 축구 가야해)

by 현 Hyeon

[항상 주말을 기다리는 조축인의 축쎄이]


금요일은 누구나에게 즐거운 날일 것이다. 불금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금요일 퇴근길은 유난히 발걸음이 가볍다. 기분 탓인지 지하철에도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고, 그들의 표정도 다 생글생글하는 듯하다.


축구인(?)들에겐 금요일이 또 다른 의미로 신나는 날이다. 시즌 중이라면 해외축구 팬이든 K리그 팬이든 봐야 하는 리그 경기가 많다. 아스날 팬인 나도 리그 휴식기를 갖는 6~8월 주말이 매우 허전했고, 지금은 주중 벌어지는 국대 경기보다 주말에 펼쳐질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기다리는 때가 많다.


또한 조축을 하는 축구인들은, 토요일 일요일 운동장에서 뛰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지금은 토요일 아침, 일요일 아침에 서로 다른 팀에서 운동을 하고 있지만, 신혼 초에는 토요일 아침 팀에만 속해있어 금요일 밤이 무척이나 설렜다. 나름 컨디션 조절을 하고 저녁 식사를 가볍게 하며 일찍 잠자리에 드는 등 경건하게(?) 토요일을 준비했더랬다.


Gemini_Generated_Image_v9wfhcv9wfhcv9wf.png AI가 만들어준 그날 밤…


2017년 겨울, 어느 금요일이었다.


그날따라 유독 잠이 오질 않았다. 다음날 아침 7시엔 나가야 하기 때문에 12시 이전에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런데 눈이 말똥말똥했다. 최대한 잠을 자기 위해 집중했지만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결혼한 지 3개월 차, 와이프는 한창 일할 게 남아있어 거실에 있었다.


침대맡의 조명을 켜고 휴대폰을 들었다. 이것저것 보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조축인들이라면 공감포인트인 것, 경기 전엔 축구 하이라이트 영상을 봐줘야 한다. 호날두 스페셜, 메시 스페셜... 영상을 보기만 해도 마치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마냥 집중해서 보고 내일 플레이하는 내 모습에 투영해 본다. 물론 실제로 성공해 본 적은 없다. 그들의 스페셜 플레이를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알려달라. ㅎㅎ 그래도 어찌 됐든 본다. 루틴이랄까 의식이랄까.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흘렀다. 자기 전 휴대폰을 보면 잠자는 데 더 방해가 된다고 하는데, 그제야 바로 잘 수 있을 것 같이 슬슬 눈이 무거워졌다. 나는 휴대폰을 머리맡에 놓고 조명을 끄려고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와이프가 안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 자고 뭐 하고 있어?"


그런데 그 타이밍이 참 공교로웠다. 와이프가 들어오자 내가 잘못된 일을 했던 것처럼 휴대폰을 황급히 끄려는 모양새였다. 내가 그러한 내 모습을 유체이탈하여 보더라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와이프가 뭔가 오해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기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어버버...."


그랬다. 죄지은 것도 없는 난 어버버 댔다. 와이프는 촉이 예민하다. 그 모습을 놓칠 리 없었다.


"휴대폰 줘 봐 봐"


하지만 난 진짜 잘못한 게 없었다. 그냥 와이프가 날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당황했을 뿐이었다. 순순히 폰을 건넸다.


"어? 이게 뭐야? 빗썸?"


아뿔싸... 활성화돼 있는 어플 중에 빗썸이 있었다.


2017년 12월. 당시 비트코인 1개는 2천만 원이었다. 2025년 현재는 1억 6천만 원을 향해가고 있다. 하지만 그때도 '비트코인 광풍'이라고 했다. 몇십만 원대 비트코인이 급상승해 수개월 후 2천만 원대까지 올랐다. 지금이야 코인투자가 어느 정도 보편화되었지만, 당시엔 비트코인에 투자한다고 하면 도박을 한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였다. 나는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싶었지만 와이프는 반대했다. 가격이 너무 불안정한 것을 떠나, 우리 돈으로 도박을 할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그렇지만, 나는 너무 투자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몰래 비트코인을 샀다. 300만 원어치. 지금으로 치면 비트코인 1/7 조각을 산 셈이었다. 그걸 아직까지 갖고 있었다면... 300만 원은 2400만 원이 돼있었을 텐데. 와이프는 이게 뭐냐며 화를 냈다. 아니, 혼이 났다. 우리끼리 투자하지 않기로 했는데 몰래 했으니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것도 300만 원이나. 그런데 계속 혼이 나자, 나도 오기가 생겼다.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히 투자일 뿐이라며. 비트코인은 내가 공부해 봤는데 도박이나 투기가 아니라 괜찮은 투자라며.


새벽 2시가 되었다. 내가 와이프의 말에 반박한 것은 끝이 없는 평행선을 달리기로 작정했다는 의미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싸울 힘이 우리에겐 넘쳐났나 보다. 시간은 3시가 되고, 4시가 되고, 5시가 되었다.


결론은 어떻게 되었냐고? 결국 절대 비트코인에 투자하지 않으리라고, 아니, 비트코인의 ㅂ자도 쳐다보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고 끝이 났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험난했고, 애초부터 내가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내가 왜 그 진흙탕에 뛰어들었을까. 새벽 6시... 잠도 제대로 오지 않는데 날은 곧 밝을 것이다.


축구 단톡방에 글을 남겼다.


급한 일이 생겨서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요ㅠㅠ 죄송합니다ㅠㅠ



축구팀에 있다 보면 경기 당일 새벽 이런 톡이 올라오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 아기가 아프거나 갑자기 몸 컨디션이 안 좋아진 경우가 많은데, 가끔씩 별다른 이유를 밝히지 않고 불참할 수밖에 없다는 글이 올라온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친구가 이런 글을 올렸길래 운동 후에 슬쩍 톡을 보내 물어봤다.


"형...ㅠㅠㅠ 와이프와 싸워서 못 나갔어요..."


"이해한다. 나도 엄청 싸웠던 때가 있었지..."


30~40대 조축인들의 상황은 많이들 비슷하다. 와이프도 챙겨야 하고, 아이가 있다면 아이도 돌봐야 하고, 운동만 하고 일찍 집에 가야 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 가운데 공은 차는 2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쓸 것이다. 그러면서 틈틈이 메시 스페셜 영상도 챙겨보며 주말을 준비할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겨 축구를 하지 못하는 일도 많을 것이다. 신혼이라면 아내와 싸울 일들도 많을 테다. 이제는 미리미리 그러한 일이 안 생기도록 조정하고 준비하는 노하우가, 조금은 생겼다. 금요일, 토요일 일찍 잠에 들고 축구 다녀와선 가정에 충실할 수 있도록 좀 더 노력한다.


모든 조축인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그들의 아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아니 부탁하고 싶다!


금요일 밤엔 싸우지 말자고요.. 제발...
남편 혼낼 게 있으면… 딱 하루만 참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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