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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 Nov 20. 2020

굳은 살(殺)

미스터리 소설

< Episode 1. 無 >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저 무의미한 삶을 멈추고 싶었을 뿐.

나이 서른에 가진 것 하나 없는 백수인 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따로 없었다.

게임하며 버는 돈으로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매 끼니 때울 정도는 됐다.


나는 평소에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다들 사후세계니 뭐니 얘기하는 것과는 달리, 난 죽음 이후엔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사후세계는 아닌가? 아무튼.

이곳에 오게 된다는 걸 알았다면 어떻게 해서든 기서 끈질기게 살 궁리를 했어야 했다.


삐- - -

아까부터 거슬리던 삐- 거리는 소리가 점점 줄어들더니 이내 정신이 들었다.

몸이 너무 무거워 휘청거렸다. 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앗... 어라? 난 분명...


어렴풋이 내가 뭔가를 하고 있던 게 떠올랐지만 이내 사라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불 꺼진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버튼도 작동하지 않 문은 반쯤 열려있었다.

밖으로 나와보니 검붉게 물든 하늘에 익숙한 건물들과 익숙한 풍경. 우리 동네 우리 집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원래 알던 것과 사뭇 다른 느낌을 풍기고 있다.


곳곳이 부서진 건물과 도로, 그리고 들.

여기저기에 붙어있는 어두운 빛의 불꽃들까지.

주변이 검붉게 일렁이는 게 불같은데 가까이 가도 그렇게 뜨겁진 않았다.

마치 영화 <콘스탄틴>에 잠깐 잠깐 나오는 지옥처럼 내가 있던 그 자리 그대로 세상이 지옥화 된 듯한 느낌이었다.


분명 내가 아는 동네 풍경 그대론데 유령도시처럼 사람 한 명 없고 캄캄하기만 하다.

주변을 좀 둘러보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저기 보이는 멀쩡하게 불 켜진 편의점.

평소에도 자주 다녔던 그 편의점이 맞다.


엥? 왜 저기만 멀쩡하지?


자연스럽게 내 발걸음은 편의점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가 편의점으로 가길 기다리기라도 한 듯 때마침 뒤에서 검은 연기 덩어리가 빠른 속도로 무섭게 다가왔다.

뭔진 모르지만 왠지 위험 것 같아 전력으로 달렸다.


'헉... 헉...  거 뭐야?'


숨이 찼다.

편의점에 무사히 도달하고 유리문을 열고 들어와 문을 잠그는 순간,


─텅-

연기가 문에 부딪혔다.

분명 검은 연기인데 왠지 아있는 것처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들어올 방법을 찾는 듯 보였다.

잠시 숨을 고르던 찰나


"어서 오세요."


깜짝아. 뭐야 직원이 있었어? 아까 봤을 땐 없었는데.

그나저나 되게 태연하네 이 사람.

20대 중반쯤 돼 보이는데 남자인가? 여자...?


"후.. 하...  안녕하세요. 저 잠깐만 있다가 갈 거예요. 밖에 저 검은 연기 때문에 도망쳐 온 거거든요."

"네? 무슨 연기 말씀이?"


어라? 없어졌다. 분명 있었는데?


"아... 아닙니다. 혹시 이 세상이 어떻게 된 건가요?"

"아뇨 여긴 평소와 같아요. 괜찮으세요?"


평소와 같다라... 사람이 맞긴 한 건가?

그나저나 이 정도 으스스한 정도면 아무도 안 살겠구.

뭔가 많이 이상한 사람 같지만 적대적이진 않은 것 같다.


"네. 저는 괜찮은데, 아니 그보다 밖에 검은 연기 진짜 못 보셨어요?"

"검은 연기...? 아! 더스트 말씀이신가 보네, 처음 보셨어요?"


직원은 이상하다는 듯 바깥과 나를 번갈아 봤다.


니가 더 이상하다 이 녀석아.


"그게 무슨... 더스트요?"

"아, 여기 계신 걸 보면 더스트를 모르실 리가 없을 텐데요. 이곳에 오기 위해 밟는 절차 중 만나게 돼있거든요. 그리고 더스트는 누굴 쫓거나 그러진 않아요."


더스트? 먼지? 무슨 먼지가 저렇게 크고 무섭게 생겼나.

나는 황당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쟤 쫓아오던데요!? 제가 어떤 충격에 잠정신을 잃었나 봐요. 그 전 일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정신 차려보니 고장 난 엘리베이터 안이었고, 쫓겨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그나저나 하늘은 왜 검붉은색이고 저 불꽃들은 도대체 뭐예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세요? 아! 고장 난 엘리베이터...! 책에서 봤는데, 이세계에서 오신 분이시구나! 그렇다는 건 평행세계가 진짜 존재하는 거네요!?"


뭐라는 거야 자꾸. 알아듣게 설명하지 좀.


평소 관심 있어하던 분야였는지, 굉장히 들뜬 목소리였다.

나는 짜증 섞인 말투로 되물었다.


"이세계는 뭐고, 평행세계라니요? 그럼 제가 원래 있던 곳이 아니라 다른 곳이란 소리인가요?"

"네 아마도요. 제가 알기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또 다른 지구가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고 들었거든요. 그리고 매 순간 분열되는 시간 공간들도 무수히 많다고 해요."


골머리 아픈 얘기들을 듣다보니 옛 기억이 떠올랐다.

빌어먹을 양자물리학.


<2년 전>


-Youtube 내용 중-

"양자역학은 … … 물리학자에 따르면 … … 당신이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죽음이라는 수 많은 여러 확률들을 뚫고 살아있는 것이다. 시안 룰렛처럼 셋팅 된 총을 당신의 머리에 겨누고 쏜다면 총 맞아 죽을 확률과 불발로 살 확률, 즉 두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인간은 살아있는 상태만 느낄 수 있고, 죽은 걸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의 세상에선 당신이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지만, 당신이 현재 느끼고 있는 '당신의 세상'에서 만큼은 살아있는 상태일 수밖에 없는 . 불발이 수십수백, 수천 번 거듭 반복되다 보면 아주아주 미미한 확률로 총알이 발사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결국 당신의 그 세상에선 당신이 가장 나이 많은 인류 최후의 사람이 될 것이다."


뭐라는 거야, 그럼 내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는 소리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 진짜? 에이... 그럼 내가 불사신이야 뭐야?


나는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늘 생각해왔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아프게 죽는 건 싫지만 그렇다고 그냥저냥 살기도 싫었다.


그렇다고 진짜 죽으면 어쩌지...

가볍게 시작해봐야겠다.

죽을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는 무언가로 테스트해볼까?

숨 참기? 흡...!


될 리가 없지.

인간의 본능은 생존하기 위해 자의로 숨을 참아 죽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죽을 확률이 그나마 있는걸로다가.


오토바이 타고 고속도로 올려서 250km/h로 달려봤다.

일말의 위험한 일 없이 멀쩡히 잘 가다가 휴게소에 들렀다.

빌어먹을. 경찰에게 잡혀서 벌금 내야 될 판이다.


이렇게 죽을 확률이 몇% 나 되려나, 다른 방법이 좋겠어.

읏차-


풍 덩-


"저 ... 괜 ... ... 요? ... 이봐요 정신이 드세요? 119입니다!"

"으... 으윽"

"일찍 발견해서 다행이에요. 운 좋은 줄 아세요."

"아... 네..."


물을 한바탕 먹었는지 배가 불렀고 엉덩이로 떨어졌는지 엉덩이가 욱신거렸다.


너무 아프잖아. 켁- 우웩 물 겁나 비려.

그나저나 뭐야 이렇게 높은 곳에서 뛰어도 멀쩡한데?

사실 나 슈퍼히어로 아닌가?


그 후로도 여러 번 도전했지만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부상에 그쳤다.

크고 작은 죽음이라는 확률을 깨버리고 자꾸 삶이라는 확률이 들어맞는 게 신기했다.

이쯤 오니 오기가 생겼다. 꼭 성공하고 말겠다는.


2년 가까이 시도했던 것 같다. 죽음에 대한 관심이 조금 사그라들고 다치는 게 아프고 싫어서 간접적으로 죽을 수도 있는 고위험 임상실험, 연구 등에도 참가했고,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전쟁위험국가에 여행 가기도 했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집을 나서는데 건물 바깥쪽에서 세상 처음 듣는 큰 소리로 쾅- 하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그 충격과 함께 엘리베이터 줄이 끊어져 그대로 엘리베이터와 함께 추락했다.



죽음은 무(無)라고 나 말고도 누군가가 그랬다.

나는 이제 안다.


니들이 말하는 무(無)는 말이야.

무(死無)라고 하는 거야.

죽음이 없다는 뜻이지.

어떻게든 살아.


나는 아직 살아있다.

의미 없는 살(殺)은 안 하기로 마음 먹었다.


굳은 살(殺)

< Episode 1.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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