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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 Nov 12. 2021

가식을 빼기로 했다

헤어디자이너, 과거

미용사의 길 6년,

밀려오는 회의감에 스스로 '선택'한 무직.

백수 2년 혹은 그 이상.

아직까지도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들을 글로써 정리해 보고자 한다.




한때, 나는 세계적인 헤어디자이너가 꿈이었다.

헤어디자인 전공 2년, 헤어샵 실무 4년을 지나 보내고 문득 느꼈다.

'미용으로는 뼈와 살을 깎는 고통을 겪어야 겨우 성공하겠다'

라고.


물론 안 그런 일이 세상에 어딨겠냐마는

실제 겪은 바로는 다른 일에서 성공하기 위해 들이는 에너지에 비해

미용은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터무니없이 성공 기준이 높다고 느꼈다.



인생에서 미용을 마지막으로 한 그해,

예상한 만큼의 그 정도 에너지를 써가며 성공할 수 있는 미용을 계속할 것이냐,

그 에너지로 충분하게 성공할 수 있을 다른 무언가를 할 것이냐는 기로에 섰지만,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미용은 성공에 필요한 기대 에너지가 너무 큰 직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미용으로 성공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성공이 하고 싶었던 거였다.


헤어디자이너, 미용사는 분명히 매력적인 직업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대화로 유대감을 형성하고 교감하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런


사람 냄새나는 직업이다.

나는

사람 냄새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육체적으로 힘든 건 힘든 것도 아니었다.



고객들이 날 좋아하더라 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고객에게 사근사근 잘 웃고 말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을 때.


이제 보니, 그때부터 잘못된 길에 들어선 것이었다.


나는 그냥 얘기하고,

나는 그냥 웃었을 뿐인데.

그때부터였다.


잘하고 싶은 압박감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가 하고 싶어서 했던 건데,


잘 웃어야 해.

사람들은 잘 웃는 사람 좋아해.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해.


싫은 사람인데..., 그래도 웃어야 해.


그게 내가 인정받고,

내가 사는 길이야.



나는 그렇게 나를 가식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단지 잘하고 싶었을 뿐인데,

잘 보이고 싶었을 뿐인데.


이게 내 정신을 갉아먹는 걸

그만두기 전에는 몰랐다.


그리고 내가 그런 걸 잘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아무 말 없이 시술만 하는 일이었다면 달랐을까?



미용을 그만두고

나는 내게서 가식을 모두 빼내기로 했다.

그랬더니,

6년이라는 시간 중

내게 남은 것은 그 무엇 하나 온전한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남은 게 없지만,

'성공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그만둔 이상 뭐라도 해야 했다.


이것저것 알아보고 공부하고 배웠다.

유튜브 영상 촬영, 영상 편집, 브런치 작가, 전자책 제작 판매,

스마트 스토어, 마케팅, 재테크, 투자 등…


그동안 배운 건 많지만,

뭘 해야 할지 뭘 '지속'해야 할지 모르겠다.



현재의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

제로.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


… -1, 0, +1 …

과거, 현재, 미래.


지금까지 마이너스인 과거를 지나왔지만,

과거의 모든 걸 털어낸 지금.

0, 제로인 상태에 머물러있는 지금.


….

내겐 미래가 남아있었다.


마이너스를 만들어 낼 것이냐,

플러스를 만들어나갈 것이냐.


꽤 긴 시간 제로에 머물렀다.

이제 내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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