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진짜 착하다!”
그 말을 하는 모두가 웃는 얼굴이었고 호감 가득한 눈빛을 보냈으나, 불운하게도 여기서 ‘너’는 내가 아니었다. 친구들의 시선 끝에 있는 것은 항상 다른 아이였다. 그 아이는 착했고, 잘 웃었고, 귀여웠고, 사랑스러웠다. 이러면 공부라도 좀 못해야 할 것 아닌가? 나의 열등감일지 몰라도 공부도 그냥저냥 꽤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마치 목화솜처럼 때 타지 않고 보송한 매력을 가진 그 친구는 당연하게도 남녀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다. 한창 장난기 많을 때인 중학생 또래들 사이에서 별명이 ‘천사’ 였다면 말 다한 것 아닐까.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 아이를 욕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조차 그녀를 좋아하고, 또 동경했다.
그 시절의 나는 자존감이 최하로 떨어져 있었다. 아빠는 내게 관심이 없고, 엄마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친구들과의 관계도 어느 순간부터 재미가 없고 내가 노력해야만 이어지는 실낱같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선생님들 앞에서 재롱떨고 싹싹하게 구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학교에서 나는 그저 평범한 학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화가 났다. 나는 이렇게 말도 잘 듣고 사고도 안 치는데. 할 일도 열심히 하는데. 선생님과 친한 아이들은 공부 잘하고 조용한 학생들이 아니었다. 가끔 논란의 중심에 서더라도 싹싹하고 살가운 아이들. 나와는 거리가 먼 아이들이었다. 관심이 고팠고, 사랑에 목 말랐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나를 봐주고 내게 벌떼처럼 모여들길 바랐다. 하지만 나는 예쁘지도 않았고, 키도 작고 성적도 안 좋았다. 나는 전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어떡해야 사람들이 나를 봐줄까?’
쓸쓸한 고민 속, 한 아이가 떠올랐다. 모두가 좋아하는 그 아이. 친절하고 상냥한 천사라고 불리우는 소녀. 그 아이처럼 되고 싶었다. 티 없이 맑은 웃음을 짓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착한 아이가 되기로 결심했다. 내가 보는 그 아이는 모두에게 착하다고 ‘인정’받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도 남들에게 인정 받고 싶었다. 그런데 착한 아이가 되려면 어떡해야 하지? 일단 친절해야 하고, 웃어야 하고, 말도 잘 들어줘야 하고……. 그래, 생각보다 별 거 아니구나!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아, 귀찮아. 니가 나 대신 이것 좀 할래?”
같은 반 남자애가 후줄근한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프린트해와야 하는 과제를 그냥 손으로 썼다가 다시 해오라고 선생님께 꾸중을 들은 모양이었다. 평소라면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고 들은 체 만 체 지나갈 일이었지만, 지금의 난 착해지기로 결심했으니까.
“알겠어. 그대로 타이핑하면 되는거지?”
별 생각없이 내뱉은 말에 내가 ‘오케이’를 하자 종이를 내밀었던 아이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오히려 눈이 동그래졌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나는 ‘예스걸’이 되기로 했으니까. 그래야 착한 아이니까.
“선생님이 시켰는데 이거 대표로 할 사람?”
“내가 할게.”
“나 돈 좀 빌려주실 분?”
“내가 빌려줄게.”
“아, 식판 갖다놓기 귀찮다.”
“내가 갖다놀게.”
억울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부분의 일들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귀찮은 일일 뿐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움직이는 대신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그렇게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잖아? 착한 아이 되는거, 쉬운 일이네!
하지만 ‘완벽한’ 착한 아이가 되는 것은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 것과 더불어 화도 내지 말아야 했다. 화내지 않는 것도 생각보다 힘든 일은 아니었다. 화가 날 만한 상황이 생기면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며 주문을 외웠다.
‘착한 나는 겨우 이런 일에 화내지 않아.’
화가 진정되면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뒤돌아보면 정말 별로 화낼만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화를 참는 내가 대인배스럽게 느껴져 스스로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사실 화날 일이 생기면 주변 친구들이 나서서 상대방을 욕해주었기에 화를 낼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흥분한 친구들을 진정시키면 친구들은 내게 왜 이렇게 바보같이 착하냐고 한숨을 쉬었다. 정말 완벽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화 내지 않는 것이 아닌, 정말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처음엔 알지 못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야, 쟤가 아까 다른 애들한테 뭐라고 했는 줄 알아?”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와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귓속말을 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다른 반 남자아이 한 명이 내가 성행위를 하는 꿈을 꿨다며 다른 아이들에게 꿈 내용을 묘사하고 있었다고 했다. 평소 친하지도, 그렇다고 아예 안 친하지도 않은 남자아이였다. 그 아이가 했다던 묘사의 수준이 상당히 상세하여 명백한 성희롱이었다. 내게 말을 전해준 친구는 얘기를 하는 내내 자기가 당한 것처럼 얼굴이 빨개져서 부들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화를 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가슴 속은 놀라우리만치 담담했다. 흥분해서 씩씩대던 친구는 별 반응이 없는 내게 이상하다고 했다.
“너는 이게 화가 안 나?”
그 뒤로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이런 일들이 반복됐다. 화를 내야 하는 일도 착한 아이 코스프레를 하느라고 속으로 꾹 참다보니 머리가 고장나 버린 듯했다. 대부분의 감정에 있어 무감각해지고, 둔해졌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친구들의 표정을 보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되고 싶었던 ‘그 아이’가 화내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나도 그렇게 화낼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누가 봐도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한 상황을 담담한 표정으로 지나치는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했다. 하지만 이젠 정말로 화가 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을 뿐인데, 그래서 사랑받고 싶었을 뿐인데. 이제 나는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이상한 아이가 되었구나. 예전엔 평범한 내가 불쌍하다 생각했는데, 이젠 평범하지 않아 비참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 노력했다. 주변 친구들의 생일을 모조리 외우는 것은 기본이고, 감기 걸린 친구가 있으면 대추차를 타주고, 친구들이 귀찮아하는 일은 모두 내가 맡아 했다. 나는 예전보다 훨씬 친구도 늘어났고, 내게 말을 걸고 장난치는 아이들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왜일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착한 아이라고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나는 텅 비어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사랑에 목말라 나 자신을 조금씩 목졸라 죽여가고 있었다.
이 바보 같고 지긋지긋한 생활은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직전에서야 끝이 났다. ‘착한 아이 되기 프로젝트’는 마치 읽던 책을 덮듯이 순식간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람에 집착하던 내가 이 의미 없는 프로젝트를 관둘 수 있었던 이유는 한 선생님 덕분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알게 되어 내가 유독 따르던 수학 선생님. 어린 제자가 귀찮을 법했을텐데도 선생님은 항상 시간을 내어 내 얘기를 들어주셨다. 선생님과 대화를 할 때면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줄도 모르고 두서없이 얘기를 쏟아냈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선생님의 교실. 모든 수업이 다 끝났음에도 복도엔 아직 집에 가지 않은 아이들이 시끄럽게 뛰어다니고, 그들과 선생님의 공간을 교실 문 하나가 완벽하게 가로막았다. 문이 닫힌 교실 안은 마치 우주처럼 조용했으며 형광등 불빛 대신 창문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환한 햇살이 그 공간을 따스히 채웠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슬픈 믿음. 집안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딸이라는 생각. 선생님은 이것들을 내 안에서 모조리 없애주셨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집착한 것은 그만큼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애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자식이 생기면 너 같은 아이였으면 좋겠어.’
선생님이 해주신 이 말은 아직도 내가 살면서 들어본 말 중에 최고의 칭찬이다. 마음이 썩어버린 나를 위로하기 충분했으며, 나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텅 빈 내 안을 채워준 것은 온전하지 못한 방법으로 얻은 수많은 외부의 인정보다 선생님의 진심어린 따뜻한 한마디였다. 나는 소중하고 빛나는 사람이라 말해주셨던 선생님의 그 말들이 진물이 흐르던 마음의 상처를 낫게 해주었고, 사람들의 평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