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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현옥 Oct 18. 2020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20살, 꿈도 목표도 없던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조금 뜬금없지만, 바로 ‘연기’가 하고 싶었다. 연기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친구 동아리 공연을 도와주다가 배우로서 무대에 서게 되었는데, 그 때처럼 많은 칭찬과 환호를 들은 적은 생전 처음이었다. 그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칭찬을 들었던 때가 언제였을까? 공연에 왔던 한 학년 위 선배가 내게 혹시 연기할 생각 없냐며 진지하게 물어왔다. 평소 무섭고 어렵게 생각하던 선배였기에 선배의 칭찬이 더 기쁘게 다가왔다. 하지만 난 이미 고등학교 2학년. 이제 진지하게 대학 입시를 생각해야 할 때였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제가 무슨 연기에요.’ 하고 웃으며 손사래를 치자 선배는 2학년이면 아직 늦지 않았다고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해주었다. 그래도 난 자신이 없었다. 공부밖에 해 본 적 없는데……. 예체능이라곤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데……. 에이, 나같은 애가 무슨 연기야!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연기하기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던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은 시간이 지나 고3이 되고, 대학생이 되었다. 다시 되찾은 1학년은 신세계였다. 사람들은 우리를 ‘새내기’라 부르며 귀엽다 말했고, 평생 장녀로만 살아온 나는 막내 소리를 듣게 되었다. 생애 처음 알바하게 된 횟집의 인상좋은 푸짐한 사장님은 바쁠 때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나를 ‘애기야!’ 하고 불렀다. 세상에, 스무살짜리 애기라니? 늘 동생들 챙겨라, 동생들이 뭘 보고 배우겠니 소리만 듣다가 ‘애기’, ‘막내’라니…….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쁜 수준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로 처음 받아보는 것 같은 소위 ‘우쭈쭈’ 취급은 꽤나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18살이 늦은 나이라 생각해 포기했는데, 2년이 지난 지금도 난 아직 어리구나!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말로 후회하겠구나!


 운명처럼 자취방과 멀지 않은 곳에 연기학원이 있었고, 나는 그렇게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부모님께는 비밀이었다. 혼자만의 힘으로 학원비를 충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돈이 없어도 즐겁고 행복했다. 연기를 하면 할 수록 연극영화과에 대한 아쉬움이 커졌고, 나는 2학기 때 휴학을 하고 반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당연히 반대했다. 취미로만 하라고, 헛바람이 들어서 헛짓거리를 한다는 말을 들으며 화내고 울었다.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사냐는 말. 왜 그렇게 살 수 없을까? 지금 시도라도 해보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그렇게 잘못된 걸까? 엄마는 자기도 하고 싶은대로 했으면 우리 가족은 다 뿔뿔이 흩어져 살았을 거라며, 넌 그런 걸 원하는 거냐고 수화기 너머로 귀가 따갑게 소리질렀다. 그럼 나는? 나도 엄마처럼 하고 싶은 것 다 참고 살아야 하는 걸까?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난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연기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더 이상 지원은 없으니 알아서 하라는 말에 나도 순간 욱하여 말 안해도 그렇게 할테니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고 엄마를 차단했다. 


 그리고 그 날 밤, 부모님이 집에 찾아왔다. 웬 처음보는 커다란 차에 박스를 일곱개나 싣고 이럴거면 다시 집으로 내려가자며 역정을 냈다. 주말도 아니고 평일이었는데 어떻게 그 먼 길을 이렇게 갑작스레 올 수 있었던 것인지 아직도 의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눈물로 호소하는 것 밖에 없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것이 사실이긴 한건지, 긴 논쟁 끝에 결국 부모님은 한 번 시도는 해보라며 마지못해 다시 집으로 내려가셨다. 분명 밤이었는데 어느 새 해가 뜨고 있었다. 거울을 보니 웬 괴물처럼 눈이 퉁퉁 부운 추레한 여자가 서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결국 연극영화과에 가지 못하고 원래 다니던 학교에 복학했다. 입시를 준비 하기엔 너무 짧았던 기간과, 연극영화과 입시는 연기 뿐만이 아닌 뮤지컬 노래나 현대무용같은 특기를 함께 준비했어야 했는데 그것을 혼자 준비하기에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계였다. 웬 놈의 원서비는 이렇게 비싼지 한 학교당 10만원이 필요했고, 세 곳을 넣으면 30만원이었다. 지금이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20살의 나에겐 너무 비싼 돈이었다. 나는 결국 원서를 넣지 않았다. 지금 시도하면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18살의 나도, 20살의 나도, 결국은 자신이 없어 하지 못했다.


 말로 다 할 수 없이 우울한 날들이 이어졌다. 엄마는 왜 원서를 넣지 않았냐며 또 난리였다. 시간을 버리고 남들에게 뒤쳐졌다며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 듣기 싫었다. 누군가를 만나서 얘기라도 시원하게 하고 털어버리고 싶었지만 연기 입시를 준비하며 학교 사람들도 만나지 않아 연락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밤이 되면 속에서 불꽃이 일어나는 양 뱃속이 뜨거웠다.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끊임없이 담배를 피웠다. 내가 지금 내뱉는 것이 담배 연기인지, 한숨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 것조차 큰 짐으로 느껴질만큼 힘들었을 때, 어떠한 계기도 이유도 없이 그냥 문득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의 나는 글과는 인연이 없었다. 아무리 곱씹어도 내 인생 몇날며칠을 공들였던 글은 고3 때 썼던 자소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므로 내가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는 나조차도 모르겠다. 사실 나의 무의식은 문학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우울이 내 속을 지독하게 훑을 때면 이 기분을 글로써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밤새 사전을 뒤적이며 더 쓰라린 단어, 더 칼날같은 문장을 적어내고 나면 모든 생각을 글에 집중해서인지 더 이상 우울하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약한 냄새가 밴 집을 창문 열어 환기시키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쓴 글들은 모두 어두운 그림자를 껴안은 듯 쿰쿰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게 되겠지. 언젠가는 나도 읽는 것만으로 가슴 속이 따뜻하게 채워지고 사랑이 충만해지는 글을 쓰고 싶다. 나를 조금 더 알아가고, 지금의 흘러가는 시간 자체를 아끼고 소중히 다루게 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을거라 믿는다. 아픔으로 남은 도전이었지만 결국 그것이 내게 또 다른 가능성을 가져다주었으므로, 엄마 말대로 버린 시간은 아니었다고. 난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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