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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현옥 Oct 18. 2020

드디어 혼자다!

 우여곡절 수능이 끝나고, 내가 갈 대학도 정해졌다. 노력에 비해선 조금 아쉬운 결과였지만 그동안 대학 하나를 위해 너무 힘을 뺐기에 더 이상 아쉬워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대학 홈페이지 합불 확인창에 뜬 합격 문구를 확인하고 이 사실을 엄마에게 알렸다. 엄마는 의례적인 축하를 건넸고, 나도 건조하게 감사를 표했다. 예상했던 합격이기에 그다지 기쁘다거나 하진 않았다. 엄마 친구 아들은 의대를 갔다던데, 나는 대학을 붙어놓고도 괜히 눈치가 보였다. 이 세상 엄친아들은 대체 왜 다 잘난 것일까? 나도 누군가에겐 엄친딸일 텐데……. 재수 없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아, 근데 대학! 그게 뭐 어쨌다고! 더 이상 삶에 미련이 없는 90대 노인처럼 지내다가도 노력보다 못한 결과에 가끔씩 발작하는 하루가 이어졌다. 아직 예비번호를 받은 학교가 남아있긴 하지만 합격을 기대하기엔 힘든 번호대였다. 에이씨, 인생이 뭐 이러냐? 짜증나 죽겠다. 누가 그랬더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가끔은 배신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시간은 흘러 예비번호를 받은 대학의 마지막 추가합격자 발표날이었다. 솔직히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거의 반포기 상태였던 건 맞다. 추가합격을 알리는 대학 담당자의 전화는 9시로 마감이었고,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앞으로 한 시간 내에 추가합격 전화가 오지 않으면 나는 떨어질 터였다. 그리고 8시 반. 내 휴대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ㅇㅇ대학교 추가합격 소식 전해드리려 연락드렸습니다. 등록하실건가요?”


 맙소사. 지금 나보고 추가합격했다고 한거야? 얼떨떨한 기분으로 등록하겠다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엄청난 희열이 느껴지기보단 멍했다. 몇 초 동안 머릿속으로 방금의 상황이 빠르게 정리되고,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대박!’


 대박, 진짜 대박이었다. 담임 선생님조차도 붙기 힘들 것 같다고 기대하지 말라고 말했었는데! 그 다음 일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엄마에게 전화해 이 사실을 알리고, 이전에 합격했던 대학교의 예치금을 빼고, 담임선생님께도 소식을 전하고……. 엄마는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했다며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숙사는 이미 수시 합격자들과 정시 최초 합격자들로 꽉 찬 상태였다.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자취를 해야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자취라니! 드디어 이 지옥같은 집에서 탈출하여 타지에서 혼자 살게 되는 것이었다. 합격한 대학교는 본가에서 차로 4시간 이상 걸리는 먼 지역이었다. 남들은 본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학교를 다니게 되면 집이 그리워 향수병에 걸리기도 한다던데, 나에겐 더할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자취를 하게 된다는 소식에 너무 좋아 기쁨의 삼바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나는 마치 친척어른이 용돈을 꺼낼 때 속으로는 좋으면서 겉으론 예의상 거절하는 아이처럼 덤덤한 척을 했다.


 개강을 앞두고 나는 자취방으로 이사를 마쳤다. 허름하고 좁은 월세방이었지만 학교와의 접근성만은 최상이었다. 이사 당일, 그 좁은 방 안에서 나 포함 다섯 가족이 꾸역꾸역 잠을 청했고, 다음 날 잘 지내라는 간단한 인사와 포옹을 마지막으로 나는 그토록 바라던 혼자가 됐다. 닫히는 문 사이로 아빠의 얼굴이 사라질 때는 살짝 눈물이 핑 돌 뻔 했다. 이상했다. 이 순간을 얼마나 바라왔는데 왜 눈물이 나려 할까?


  혼자가 되면 자유에 취해 마냥 좋기만 할 줄 알았건만, 그렇지만은 않았다. 아무도 모르는 타지에 홀로 온 것이기에 집에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게다가 잠을 청하려 불을 끄면 짙은 어둠 속에 혼자 있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어두운 것이 싫어서 잠이 올 때까지 휴대폰을 하다 까무룩 잠드는 하루가 반복됐다.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나였기에 외로운 것이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개강 후 동기들과 가까워지게 되면서 상황은 점차 나아졌고, 나는 어느새 타지 생활에 완벽히 녹아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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