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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현옥 Oct 11. 2020

쉬어가기

 챕터2로 넘어가기 전, 추후 엮어질 이 글들의 목표성을 확실히 하려 한다. 만약 내 글을 여기까지 빠지지 않고 읽은 사람이 있다면 내가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굉장히 궁금하고 짜증이 날 수도 있다. 한도 끝도 없이 우울하고 기분 나빴던 일들만 늘어놓는, 딱히 교훈과 깨달음이 있는 것도 아닌 마무리도 굉장히 애매모호한 글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나 또한 딱히 그 생각을 부정하고 싶진 않고, 오히려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책이 될 이 글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지 힘들었던 얘기’를 풀어놓는 것 뿐이다.


 내가 평소 쓰던 글들은 모두 소설, 허구의 이야기들이었다. 내 마음대로 상상하는 것이 좋았고, 내 입맛대로 결말을 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처음 에세이를 써야한다고 했을 때 대체 무슨 이야기를 쓰는 것이 좋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무슨 내용을 써야하지? 사랑스러운 내 고양이와의 일상? 아니면 남차친구와의 운명같은 사랑 이야기? 혹은 내가 지금까지 깨달았고 얻었던 마음의 양식들? 작성해야하는 목차의 개수가 꽤 많았기에 내가 길게 얘기할 수 있으면서도 나 스스로 글 쓰는 것이 지겹지 않은 내용이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결국 결심하게 되었다. 내가 그 동안 어디에도 다 터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 엄마를 증오하지만 또 사랑받고 싶었던 딸의 이야기를 써야겠구나! 


 이 책은 재미없는 나의 살아온 이야기이다. 별로 즐거울 것도 없고, 나 이렇게 힘들었어요 하며 징징대는 어린아이같은 23살 여자의 하소연이다. 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들을 때마다 좋은 소리를 들을 때도 있었지만 재미없다, 뭘 말하고 싶은거냐는 혹독한 평가를 받을 때도 많았다. ‘이러이러한 내용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라고 나의 취지를 말했더니 ‘그런 글은 너 혼자서 쓰고 독자들이 읽었을 때 재미있어할 글을 내놔라.’ 라고 하던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나는 어떤 글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야하는 걸까? 감동적인 이야기? 통쾌한 이야기? 교훈적인 이야기? 나는 독자들이 좋아할 글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뿐.


 아무리 친한 친구일지라도 어두운 얘기, 특히 가정사는 더더욱 말하기 힘든 법이다. 성당에서 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해성사를 하는 죄인의 심정으로 이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별로 흥미롭지도 않은 이야기지만, 이걸 누가 읽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털어놓는 것 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다. 단 한 명이라도 이 글을 읽어준다면, 그리고 과거의 나를 가엾게 생각하고 다독여주고 싶어한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이자 목표가 아닐까. 게다가 누군가가 우연히 내 글을 읽고 이 재미없는 이야기에 용기와 동질감을 느낀다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굉장한 일이지 않겠는가. 내 얼굴에 침뱉기라 느껴져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꺼내기 힘들었던 얘기, 하지만 너무나도 말하고 위로받고 싶었던 얘기들을 나는 이곳에 두서없이 흩뿌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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