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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현옥 Oct 11. 2020

나 열심히 했다구!


 수능이 끝나고 교문을 나설 때의 그 기분을 잊을 수 없다. 이 시험 하나를 위해 수없이 밤잠을 설치며 공부하고, 친구들과 울고웃던 기억들이 있기에 수능이 끝나면 굉장히 기분이 후련할 줄 알았건만, 생각보다 그렇진 않았다. 오히려 허탈하다고 해야할까. 하늘을 바라보니 노을이 예쁘게 지고 있었고, 아침에는 분명 그렇게 찼던 바람이 선선하게만 느껴졌다. 옆에는 시험장에서 쏟아져나온 학생들이 바글바글하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수능은 대단할 줄 알았다. 긴장감에 몸이 떨리고 압박감에 밥도 잘 먹지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수능도 결국엔 그냥 시험일 뿐이었다. 우리가 초등학생 때부터 숱하게 치러왔던, 그리고 앞으로도 치게 될 시험 중 하나일 뿐이었다. 국어 영역 문제를 풀며 ‘이게 정말 수능이 맞나’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수능날이라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은 것인지, 마치 모의고사를 볼 때처럼 긴장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시간이 딱히 모자라지도 않았다. 그냥 평소 시험을 볼 때처럼 아는 것은 최선을 다해 풀고 모르는 것은 제발 맞기를 기도하며 찍었다. 


“너거들 수능치믄 여서 등급 두 개씩 떨어진다 생각카믄 된다!” 


 그래서일까? 겁을 주려 하신 것인지, 자극을 주려 하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들이 하셨던 말씀과는 달리 나는 그동안 모의고사에서 받았던 것과 똑같은 등급을 받았다. ‘예전에 어떤 선배는 시간이 없어 5문제를 찍었는데 그게 다 맞아서 본인 수준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대학을 갔다더라!’라는 식의 얘기도 많이 들었기에 ‘수능 대박’이라 불리는 기적도 살짝 기대하긴 했지만, 결과는 더 오르지도, 하지만 더 떨어지지도 않은 딱 내 실력에 맞는 성적이었다. 그래도 딱히 실망할 것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다시 그때만큼 열심히 할 순 없을 것 같다 할 만큼 최선을 다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손이 타버릴 듯 뜨거울지라도 담고 싶은 태양이 있다면 죽어도 놓지 말 것’


 고3 시절 별다른 목표없이 남들 하는 것 만큼 공부하던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해준 문장이다. 하루에 3시간만 잠에 들었고, 카페인이 맞지 않아 커피 몇 모금만 마시면 심장이 벌렁대고 설사를 죽죽하던 내가 나중엔 고카페인 커피만을 찾아서 기숙사 냉장고 안에 쌓아두고 마셨다. 그 때 잠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잠을 자지 않으니 급식실까지 걸어갈 힘도 없었다. 기운이 없으니 밥 먹는 것도 귀찮았고, 힘에 많이 부칠 때면 링거를 맞았다. 이 모든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중의 최선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성에 차지 않았나보다. 인서울을 부르짖던 엄마니 결과가 많이 아쉬웠겠지. 하지만 뭐 어찌하리, 이미 시험은 끝났고 성적은 나온 것을. 심지어 난 수시가 아닌 정시였기에 자소서나 면접같은 변수도 생각할 수 없었다.


 수능이 끝나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 학교 접수라는 제일 큰 산이 남아있었다. 이 시점에 나는 엄마와 마주치기만 하면 으르렁거렸다. 엄마는 갈만한 학교를 알아보라며 난리였고, 나는 어차피 수능 성적대로 점수 맞춰 가는건데 알아볼 게 뭐 있냐며 배째라 식이었다. 엄마는 나만 보면 대학이 어쩌구, 과외를 그렇게 했는데 저쩌구 하며 듣기 불편한 말만 줄줄이 해댔다. ‘점수가 좋지 않아도 괜찮다. 네가 최선을 다했으면 됐다.’라던 엄마의 모습은 없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면서! 말을 뒤바꾸는 엄마가 야속했고, 마주치고 싶지 않아 매일 엄마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자는 척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나의 최선이었는데. 어두운 독서실에서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공부하고, 뿌듯한 표정으로 잠에 들던 내 시간들은 모두 의미를 잃은 것 같았다.


 어느 날 잠이 오지 않아 집 앞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샀다. 편의점 사장님은 주민등록증 검사를 하더니 미심쩍은 눈초리로 소주를 내줬다. 처음으로 마셔보는 술이었다. 안주로 뭘 먹었는지, 안주를 먹긴 했는지도 기억 나지 않는다. 순식간에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침대에 누워 이제 막 잠이 들려 할 때쯤, 엄마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술 마셨니? 왜?”


 엄마의 질문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엄마는 잠과 술에 취해 비몽사몽인 나를 붙잡고 또 그놈의 대학 얘기를 했다. 지긋지긋하고 역겨웠다. 내가 뭘 더 얼마나 해야 해? 수많은 상처 되는 말들이 엄마의 입을 통해 세상에 나왔지만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지나 잊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내가 너무도 잊고 싶어 결국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정말 노력했으면 그 성적 받고 아쉬워서 눈물이라도 났겠지’

 ‘엄마한테 미안하지도 않니?’


 수능 성적표가 나오던 날 교실 뒤편에서 친구들과 함께 울던 것이 생각났다. 왜 엄마는 항상 아무것도 모르면서 저렇게 날 잘 아는 듯이 얘기할까? 엄마가 내 엄마인 것이 너무 증오스러웠다. ‘해준 것도 없으면서’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사실 그렇다기엔 없는 형편에 경제적으로 너무 많은 지원을 해주었기에, 또 그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기에 그렇게 말할 수도 없었다. 그냥 이 상황이 너무 끔찍하고 최악이었다. 내가 대체 왜 엄마한테 미안해해야 하지? 성적이 잘 안 나와서 가장 슬픈 것은 나인데, 왜 엄마에게 사과해야 하냔 말이야?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더 이상 엄마와 대화를 할 가치를 느낄 수 없었다. 물론 사실은 엄마가 하는 말을 내가 일방적으로 다 듣고 있던 거니 대화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나는 방에서 티셔츠 하나만 챙겨입고 밖으로 무작정 뛰쳐나왔다.


 막상 밖으로 나오니 엄청난 추위가 엄습했다. 드라마에서처럼 ‘엄마 미워!’하며 뛰쳐나왔는데 갈 곳도, 연락할 곳도 없었고 무엇보다 겉옷을 갖고 나오지 않은 것이 무척 후회됐다. 나는 고민하다 아빠에게 전화했다. 시내 상가 계단에 앉아 아빠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심각한 자기 연민에 빠졌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수능만 치면 고생 끝일 줄 알았는데 더한 고통이 나를 괴롭히고 있지 않은가! 쪼그린 채로 무릎을 모으고 그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참으로 불쌍하다, 내 자신!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고 있자니 아빠가 금방 나를 데리러 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나는 아빠 차 조수석에 올랐다. 어디든 집보단 낫겠지. 아빠가 데리고 간 곳은 웬 집 근처 카페였다. 여긴 왜 온 건지 의문이 가득한 채로 카페 문을 열자 맙소사, 그 곳엔 엄마가 있었다. 순간 아빠에게 엄청난 배신감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아마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저런 표정을 하고 있지 않을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표정을 한 엄마 주변엔 보이지 않는 검은 기운이 가득해 보였다.


 카페에서 엄마와 나눈 얘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말하는 중에 집을 박차고 나간 싸가지 없는 딸이 되어 있었다. 또 다시 기억도 나지 않는 고통의 시간들이 시작되었다. 나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와는 그 어떤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계속해서 질문 세례들을 퍼붓다 내가 가까스로 꺼낸 ‘엄마 앞에선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라는 선언에 ‘그래, 알겠다.’ 하며 차가운 표정으로 바람처럼 카페 문을 나섰다. 엄마가 너무 싫다는 나의 고백에 아빠는 내 생각을 돌리려 쩔쩔맸다.


 하도 울어서 눈이 퉁퉁 붓다 못해 불어터진 나를 데리고 아빠는 근처 호프집에 갔다. 아빠는 김치전에 칭따오 맥주를 시켰다. 맛이 없었다. 아빠는 내 기분을 풀어주려는지 이런저런 얘기들을 꺼냈다. 대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하지만 앞으로 내가 어떤 어른이 됐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아빠에겐 미안하지만 그 때 했던 얘기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딱 하나. 술에 취할 것 같아서 맥주를 그만 마시고 싶었는데 아빠 앞이라 멀쩡한 척 했더니 아빠가 역시 내 딸이라 술을 잘 마신다며 칭따오를 끝도 없이 시켰던 기억 뿐이다.


 하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그 호프집에서의 시간이, 수능 후 대학 때문에 시달리고 성적 때문에 무시받던 내 마음을 조금은 풀어주었음은 확실하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 해서 그 과정까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너무 속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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