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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현옥 Nov 01. 2020

나와의 데이트

MBTI를 아세요?

 최근 넷상에서 핫했던 키워드 하나가 있다. ‘MBTI 검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MBTI는 성격 유형 검사 도구로, 사람의 성격을 16가지 심리 유형 중 하나로 분류한다. 인터넷에서도 무료로 간편하게 검사 가능하니 혹시 아직 자신의 MBTI를 모르는 사람은 재미삼아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재미없는 얘기로 들릴 것 같아 설명하고 싶진 않지만,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이것을 필수로 설명해야 읽을 때 훨씬 이해가 쉬울 것 같다. MBTI는 크게 네 가지 분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외향과 내향을 나누는 E와 I, 감각과 직관을 나누는 S와 N, 합리적 사고와 감정을 나타내는 T와 F, 마지막으로 판단과 인식을 나누는 J와 P이다. 빠른 이야기 전개를 위해 간략히 설명했지만,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내용들이니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검색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요 근래 친구들과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에서 이 MBTI 검사가 상당히 유행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성격 유형을 알아보고, 지인들과 공유하며 딱 맞는다고 신기해했다. 나 역시도 이 유행에 편승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검사 결과 나의 성격 유형은 ‘ESFP’였다. 최종 검사 결과가 나오는 화면엔 ESFP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중앙에 나와 있고, 그 위엔 ‘자유로운 영혼의 연예인’이라고 쓰여 있었다. 밑에 빼곡히 쓰여 있는 설명을 읽으니 대충 나랑 맞게 나온 것 같았다. 외향적이고, 꾸미는 것 좋아하고, 감성적이고 어떨 땐 천방지축이기도 하고……. 뭐, 틀린 말은 없네!


 그러던 중, 어느 날 엄마가 뜬금없이 물었다.


 “너 MBTI 검사 한 번 해볼래?”


 평소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엄마는 이전부터 심리학 연구소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 곳에서 MBTI 강연을 한다는 모양이었다. 이미 MBTI 검사를 해봐서 안해봐도 된다며 손사래를 쳤으나 엄마는 전문기관에서 진행하는 것이기에 인터넷에서의 무료 검사보다 훨씬 더 정확하다며 강연을 들을 것을 적극 추천했다. 사실 이제 MBTI에 대한 흥미는 많이 떨어진 상태였지만, 결국 나는 강연을 듣게 되었다.


 그 곳에서의 MBTI 검사도 크게 다르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저 인터넷에서 질문지에 체크하던 것을 종이로 옮겨놓은 것과 다를 바 없어보였다. 하지만 역시 전문기관은 다르다는 것일까? 결과는 전과 같지 않았다. 검사가 끝나자 엄마는 내 결과가 궁금한지 옆으로 밀착해왔다. 


 ‘ENFP’


 내 검사결과였다. 강사분이 자신의 MBTI 결과를 명찰에 써서 가슴팍에 달라고 했다. 다르게 나온 결과에 신기해하고 있자, 엄마는 ‘아닌 것 같은데…….’ 하며 검사가 잘못 된 것 아니냐고 물었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강사분의 설명을 들어보니 ESFP와 ENFP는 한 글자 차이일 뿐인데도 많이 달랐다. ESFP는 당당하고 스포트라이트를 즐기는 느낌이라면, ENFP는 그 보단 좀 더 감성적인 느낌이었다. 


 이게 정말 맞는 건지 아닌건지 아리송하게 생각할 때쯤, 강의는 어느새 1부가 종료되고 2부로 넘어갔다. 2부에선 한 성격유형을 가진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앞에 나와 다른 유형 사람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너네 ENFP들은 왜 그래?”

 “ENFP들은 이럴 때 어떻게 생각해?”

 “너희 ENFP는 이렇게 생각은 안되는 거야?”


 다른 성격 유형을 가진 사람들이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다른 ENFP 명찰을 단 사람들이 뭐라고 대답하는지 가만히 들었다.


 “우리 ENFP들은 원래 그래.”

 “ENFP들은 이렇게 생각해.”

 “우리 ENFP들은 이런 생각을 해.”


 처음 보는, 나이도 성별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로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 답변들은 내 생각과도 정확하게 일치했다. 이 집단에 속해있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지고, 다른 이들이 하는 말들이 위로가 되었다.


 평소 스스로를 손해보며 사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다. 싸울만한 상황이 생기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툼을 피하고 싶어 딱히 잘못한 것이 없어도 먼저 사과했다. 직설적이게 말하는 것이 힘들어 항상 최대한 돌려말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화내야하는 일에 한 번 시원하게 싸울 줄도 모르는 내 자신에 대한 합리화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나 스스로도 이런 내가 갑갑하고 속상했다. 매번 져주기만 하니 누군가는 나를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아 서글펐다. 소심한 성격이 전혀 아닌데도 남과 부딪힐만한 상황이 생기면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 긴장됐다. 어렸을 땐 굉장히 당당한 성격이었는데. 성장하면서 겪은 어지러운 경험들로 성격이 답답하게 변한 것 같아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런데 MBTI 강의를 들으러 와보니 이런 성격을 가진 것이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대립 상황에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나는 이상한 것이 아니였다. 그냥 나의 성향이었던 것이다. 


 긴 강의가 끝나고, 모두가 동그랗게 둘러앉아 오늘 수업을 통해 느낀 점을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잠시 고민하다 ‘내가 조금 더 좋아졌다’라고 대답했다. 사실이었다. 바보같게 생각됐던 나 자신이 상대가 상처받지 않게 배려하느라 그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스스로가 약간 기특하기도 했다.


 MBTI는 같은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현재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올 수 있고, 너무 맹신하면 안된다고 한다. 하지만 성격 유형 검사를 통해 나 자신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가져보는 것도 정말 의미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강의 후 서로 느낀 점을 말하는 시간에 엄마는 딸이 이렇게 여린 성격을 가졌는데 어렸을 적 너무 강하게만 키운 것 같아 후회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미안하다고, 앞으로 더 잘해주겠다고 하는 엄마의 말이 내 가슴 속에 나비가 되어 날아들어왔다. 진짜 나를 찾은 것 같고, 나를 더 아껴줄 수 있는 기회가 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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