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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현옥 Sep 27. 2020

엄마아빠, 이혼했다고?

 다들 그런 날이 있을 것이다. 세차를 하자마자 비가 오고, 새하얀 옷을 입은 날에 꼭 빨간 국물 음식을 먹어 옷에 묻히고, 커피를 사자마자 떨어트려 돈 버리는, 말 그대로 재수 옴 붙은 날! 나에겐 이 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잠결에 알람을 꺼서 등교 버스를 놓치고, 교복을 단정히 입었다고 생각했는데 명찰을 깜빡해서 학생주임쌤한테 혼나고, 점심 때 갈비가 나온다고 해서 한달음에 달려갔더니 알고보니 고갈비였던! 게다가 꾸역꾸역 점심을 먹고 도착한 교실에선 저번 달에 봤던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처참한 등급의 모의고사 성적표가.


 당시는 6월으로, 불행 중 다행으로 해당 시험 성적표는 사설 모의고사 성적표였다. 이 글을 읽는 입시생이 있다면 알겠지? 평가원 모의고사와 사설 모의고사의 중요도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당연히 평가원 모의고사가 훨씬 더 중요한 시험이었고, 사설 모의고사 성적표는 개인의 수준과 그에 맞는 지원 가능 학교를 예상하는 정도로만 사용되었다. 이미 가채점 당시 이번 시험을 얼마나 망쳤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실제 성적표를 마주하고 등급을 확인하려하자 긴장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실눈을 뜨고 성적표를 손으로 가린 채, 천천히 손가락을 치워 과목별 등급을 하나씩 확인했다.


 국어가 3등급, 수학이 4등급, 영어는……. 솔직히 너무 오래 전 일이라 더 이상은 기억나지 않는다. 수학은 원체 못했기에 별로 아쉽지 않았다. 문제는 국어였다. 이번 사설 모의고사는 국어가 특히 어려웠는데, 평소 국어에 자신있는 나로서는 매우 안좋은 일이었다. 수학을 못했기에 다른 과목에서 승부를 내야만 했다. 다행히도 나는 완벽 문과 체질인 것인지 국어와 영어 성적이 남들보다 조금은 나은 수준이라 항상 두 과목에 사력을 다해왔었다. 그런데 국어가 너무 어렵게 나오는 바람에 평균 성적이 평소보다 하락하게 된 것이다. 대학교 입시란 것은 참으로 잔인하게도 같은 등급이라고 해서 다 똑같게 쳐주지 않는다. 똑같은 3등급을 받아도 그 안에서 높은 3등급인지 낮은 3등급인지가 나뉜다. 불행하게도 나는 낮은 3등급이었다. 이걸 운이 나빴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4등급 받을 뻔한 것을 3등급이라도 받았으니 운이 좋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어찌됐던 원하던 대학의 예상 지원 결과가 ‘상향’ 이라고 뜬 것을 보며 나는교실 뒤편에서 홀로 눈물을 훔쳐야만 했다.


 뜨거운 태양이 얼굴을 감춘 어두운 밤, 그 날따라 집 앞 가로등 불빛이 희미했다. 과외가 끝난 나를 차로 데리러 온 엄마는 어디서 들었는지 귀신같이 모의고사 성적을 물어봤다.


 ‘와씨, 말도 안했는데 어떻게 알았지?’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엄마에게 성적표를 건넸다. 속에서 가다듬은 목소리로 말 한마디를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거 사설 모의고사라 별로 중요한 거 아니야.”


 그래, 맞아. 별로 중요한 시험도 아닌데. 자극받아서 다음에 더 잘치면 되지! 성적표를 받은 후 이런 말들로 울적해진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나를 위로하는 것은 내가 제일 잘했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별로 위로해줄 마음이 들지 않았나 보다. 잠깐의 침묵 후 엄마가 낮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아이고, 누가 봐도 또 한 소리 듣기 전의 상황이다. 시간 엄청 뺏기겠네. 큰일이다.


 “엄마아빠 이혼했어.”


 나는 놀랐다. 사실은 놀란 척 했다. 너무도 예상 외의 말이라서 그랬을까? 보통 이런 말 들으면 가슴이 철렁하고 뭐 그래야할 것 같은데. 나는 굉장히 덤덤했다. 대답 없는 나를 두고 엄마는 주절주절 얘기를 꺼냈다. 이혼한지는 좀 되었다. 아빠랑 서로 사이가 안 좋아서 이혼한 것이 아니다. 돈이 없어 나라에서 이혼가정에게 주는 지원금이 필요했다. 막내 동생은 아직 어리니까 말하지 마라. 없는 살림에 너네 키우려고 이렇게까지 한다…….


 “그러니까 열심히 해.”


 말을 마치고 엄마는 차에서 먼저 내렸다. 나도 말없이 따라내렸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거짓말 아니고 진짜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엄마는 우리가 이혼 사실을 알게되면 상처받아 학업에 지장이 갈까봐 그간 이 사실을 숨겼다고 했다. 나는 아빠를 생각했다. 집에 잘 오지 않던 아빠. 아빠가 일하는 사무실이 집과 멀어 사무실 근방에 작은 방을 구했다고만 알고 있었다. 아빠가 집에 잘 오지 않는 이유가 그 이유만은 아니었겠구나. 딱히 슬프거나 하진 않았지만 동생들 얼굴을 보니 마음이 복잡했다. 어두운 방안에서 등 돌리고 자는 엄마는 작아보였다. 그래, 열심히 해야지. 열심히 해야하는데……. 나 이미 열심히 하고 있는데 더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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