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현옥 Sep 27. 2020

예전엔 좋았었지

 그동안 너무 어두운 얘기만 한 것 같아서 따뜻했던 시절 얘기도 해보려고 한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처음부터 엄마와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아니었다. 좋은 시절은 조금 많이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하긴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여느 어린아이들처럼 엄마와의 시간을 행복해했고, 엄마도 나와 함께 있으면 행복해보였다.


 언제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어린아이들과 여행을 다니는 부모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펼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글의 내용은 굳이 나중에 커선 기억도 못할 어린애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부모들이 민폐라는 내용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르고 통제가 어려우니 시작된 얘기였다. 댓글창은 글 내용에 공감하는 이들과 네가 부모 맘을 아느냐 화내는 이들이 뒤엉켜 이미 전쟁터였다. 해당 글을 쓴 글쓴이가 어떤 생각인지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 여행다녔던 것을 커서 기억도 못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난 완전히 반대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가족은 참으로 많이도 돌아다녔다. 나와 동생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면 공부하느라 가족끼리 뭉칠 일이 없다는 이유로 여름 휴가 때만 되면 아빠 차를 타고 거의 전국 팔도를 다 돌아다닌 것 같다. 당시 아빠 차는 커다란 suv였는데, 오래 앉아있기를 지루해 하는 우리를 위해 부모님께선 뒷자석 시트를 모두 젖히고 그 위에 두꺼운 이불을 깔아 우리가 누워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일이라 굉장히 오래된 기억이기에 내가 당시의 여행지를 모두 기억하고 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 때 느꼈던 기분들만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뜨거운 햇빛 아래 주차를 오래 해두어서 다시 차를 탈 때 애먹었던 기억, 이해도 못하는 공연을 보면서 그냥 엄마아빠가 웃으니 따라 웃었던 기억, 해변에서 기껏 텐트를 쳐놨더니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다 무너졌던 기억……. 신기하게도 기억 속 모든 일들이 다 좋은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닌데도 그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왠지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뒤 부모님이 매일같이 싸우고, 10년 동안 산 집을 떠나 더 작은 곳으로 이사하고, 기초수급자로 선정되고, 부모님이 이혼하고……. 시끄럽고 힘들었기에 가족의 울타리가 갑갑하고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제대로 기억하진 못하더라도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가족간의 가슴 따뜻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어두웠던 시기에 가족을 마음 속 깊이 증오하지 않고 결국 그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아빠, 이혼했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