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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Mar 05. 2019

영화 <파이팅 위드 마이 패밀리 (2019)> 리뷰

아웃사이더는 아웃사이더 나름대로 세계의 왕이 된다

* 아직 한국에 정식 개봉한 작품이 아니며,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파이팅 위드 마이 패밀리>는 실제 프로 레슬링 선수 페이지의 데뷔 전후를 그린 코미디 전기 영화이다. 약간의 각색을 했다 하니 페이지(플로렌스 퓨)의 데뷔기의 큰 줄기는 같을지언정 분명 과장되었거나 축소된 부분이 있겠거니 싶다. 하지만 레슬링과 거리가 먼 나에겐 그것을 분간할 능력이 없다. 후기를 쓰기 위해 검색을 몇 번 해보았다지만 모든 용어가 낯설어 인터넷 창과 내외를 하느라 바빴다. 페이지는 고사하고, 레슬링 자체를 본 기억도 없으니까. 아마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며 한 두 번 스친 적이 있긴 했겠지, 하고 짐작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남은 몇 장면을 내 머릿속에서 끌어올린다면 투니버스에서 오프닝, 엔딩만 들었던 애니메이션 쾌걸 근육맨 정도가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이팅 위드 마이 패밀리>는 감상하기에 조금도 어렵지 않은 영화다. 성장담이라는 이야기 구조를 취하여 진입장벽을 낮추었고, 영화 내용 역시 주인공의 성장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전형적인 요소를 착실히 따르기 때문이다. 나쁘게 말하자면 이야기는 진부하리만큼 정석적이다. 오랫동안 하나의 꿈을 꿔 온 이가 있고, 중간에 갈등과 좌절을 겪고, 회복하여 나아가는 것. 그러나 이런 전통 서사가 다시 반복되고 변주되는 데엔 틀림없이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지점에서 잭 나이트(잭 로던)를 들고 싶다.


결론부터 말해보자. 이 이야기는 결국, 페이지의 이야기다. 카메라는 그의 여정을 따라가며, 페이지가 꿈을 이뤄내는 순간에서 영화는 끝난다. 그러나 100여분의 영화가 오로지 페이지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이미 제목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페이지가 겨루었던 대상은 '외부적 압력을 받는' 본인이 아니었다. 그의 가족이자 가족에 매인 페이지에 가깝다. 그리고 그 가족 중, 페이지의 안티테제로 가장 부각되는 인물이 바로 잭 나이트다.

페이지와 잭의 출발점은 분명 같았다. 나이트라는 성씨를 공유하는 동일한 가족의 구성원이었고 자연스럽게 레슬링을 접했으며 프로 레슬러로서의 성공을 꿈꿨다. 하지만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것은 페이지 한 명뿐이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남매는 갈라진다. 한 명은 꿈에 가까워졌고 한 명은 꿈에서 멀어진다. 한 명은 트레이닝을 포기하는 것이 나을지 끊임없이 고민할 만큼 고통스러워하며, 한 명은 레슬링 선생님으로서의 일상조차 영위하지 못할 만큼 망가진다. 두 사람의 고민은 다르면서도 같다. 좌절을 어떻게 끝내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헤아리고 가늠한다. 페이지와 잭의 접점은 자꾸만 어긋나고 비껴가지만 레슬러 가족답게 링 위의 경기를 통해 갈등은 가시화되고 폭발하며 링 밖의 대화 속에서 해소된다. 두 사람의 좌절은 꿈을 향한 도전과 상실감이라는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저엔 결국 가족이 있었다. 따라서 두 사람이 다시 발돋움을 하는 데엔 가족이 그 무엇보다도 필요했다.


영화의 마지막은 시작과 동일한 지점으로 회귀한다. 남매의 일상으로. 프로 레슬러를 꿈꾸던 두 사람이 어떻게 자랐는지를 비춘다. 한 명은 갈망하던 꿈을 움켜쥐었다. AJ를 꺾으며 화려한 데뷔를 장식한다. 그런 모습만으로도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는 다른 지점도 함께 짚어준다. 우리 모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잭의 품엔 아이가 있고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있다. 재능이 부족했을지라도 다른 길로 꺾어 들었을 때 발견할 수 있는 귀중하고 값진 선물에 대하여 이 영화는 속삭인다. 그것도 상당히 유쾌한 톤으로. 페이지가 되찾았던 목소리가 겹치는 순간이다. 내가 네 꿈을 앗아간 게 아니야, 그저 그들이 그렇게 판단했을 뿐. 타인의 한 마디에 온 인생을 저당 잡힐 필요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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