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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Nov 30. 2021

영화 <스포트라이트(2015)> 리뷰


"우린 그저 운이 좋았던 거죠. 당신과 나."


꼭 보겠다고 말한 다짐이 무색할 만큼 난 오랫동안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보지 않았다. 《스포트라이트》가 수작이라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마이클 레젠더스 역을 맡은 마크 러팔로의 연기가 대단히 훌륭하다는 것도. 그럼에도 내가 차일피일 감상을 미룬 건 영화의 소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기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기자들이 추적한 논란이 바로 가톨릭 아동 성범죄였으므로. 내가 가톨릭 신자인 것은 아니나 선하다고 믿고 싶은 인간 종족에 대한 불신과 의심이 결국 고개를 들 만한 이야기는 늘 보는 것이 망설여지기에(그래도 늘 보긴 본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영화 제목인 ‘스포트라이트’는 미국의 일간지인 보스턴 글로브 내 탐사보도 팀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인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마땅한 사건을 추적하겠다는 기자들의 직업정신과 열의가 돋보이는 작명이다. 재미있게도 팀 내에 등장하는 네 명의 기자는 국내에 소개된 포스터 속 문구처럼 '세상을 바꾼 최강의 팀플레이’를 해냈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영상 속에 끊임없이 비쳤음에도 개개인으로 기억에 남진 않는다. 달리 말하자면, 영화의 주인공은 ‘네 기자’가 아니라 네 기자가 포함된 ‘스포트라이트’라는 유기체적 팀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로비 로빈슨(마이클 키튼)과 마이클 레젠데스(마크 러팔로)의 대립을 통해 정의를 추구하기 위한 팀플레이일지언정 얼마든지 갈등이 존재할 수 있고, 샤샤 파이퍼(레이첼 맥아담스)가 비치는 가톨릭에 대한 회의 등을 통해 기자 개인의 내면적 갈등을 지켜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을 개인이 아니라 팀으로 설정한 전략은 사건의 피해자/가해자 측에도 비슷하게 사용된다. 즉, 작가인 조지 싱어와 감독이자 작가인 톰 매카시는 가톨릭 교구의 아동 성범죄를 추적하기 위해 실화를 극화하면서 단 한 명의 피해자에 매달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피해자 한 명의 삶이 얼마나 처절하게 망가졌고 교회 권력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끔찍하게 망가뜨렸는지를 전시하거나 소비하지 않은 대신, ‘생존자’라 불리는 피해자들이 모임을 통해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보여주었고 바로 곁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얼마나 무심해질 수 있는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주며 관객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또한 영화 내에선 집착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우리에게 거듭 강조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한 명의 신부/사제의 일탈처럼 비치지 않도록 사건을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취재를 열심히 한들 가톨릭 교회 관계자에게서 돌아오는 답변이 사과가 몇 알 썩었다고 박스채 버릴 순 없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더더욱. 가장 돌봄이 필요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취약한 환경에 처한 어린아이들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았던 사건들 뒤에 숨겨진 인간의 추악한 면모는 죄책감 없는 개인의 범죄적 계산과 그 모두를 눈 감은 무소불위의 권력일 것이다. 피해자가 너무도 많아 병리적 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거라는 전문가의 말이 흘러나오는 세상 이건만 한편으론 천상에서 지상으로 걸음 한 신의 말씀을 경건하게 받아들인 양 설교하는 종교적 지도자인양 행세하면서도 무수한 개인을 짓밟은 범죄자는 권위에 보호받으며 그저 교구를 옮겨다니기만 하였다. 이렇듯 영화는 스포트라이트팀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이 사건의 뒤엔 얼마나 많은 유착관계가 형성되어 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주었으며 스포트라이트팀이 받은 퓰리처상에 대한 언급을 삭제함으로써 사건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또렷하게 각인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시사 고발 영화는 단순한 사건의 재현이 아니다. 지나간 일을 다시금 들추고자 할 뿐이었다면   기자들의 회고록을 찍거나, 다큐멘터리를 찍으면 되는 일 아닌가. 존재했던 진실을 서사적으로 엮어 내면서도 전달해야만 하는 메시지를 러닝타임 내에 예술의 이름으로 삽입하여 시민의 성찰과 각성을 불러내는 것이야말로 고발 영화의 미덕이지 않을까. 모든 시사 고발 영화가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 기법을 따르며 관객을 소외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엄연히 부당한 억압에 따라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을 단순히 상업 영화라는 미명 하에 왜곡시키고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흥미만을 좇아선 안된다는 이야기다. 영화라는 미디어는 결국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원하든 원치 않든- 재생산하는 측면이 있지 않나. 무너진 사회 정의를 조명하는 고발 영화에 조금의 윤리의식도 기대할 수 없거나, 예민하게 다뤄야 하는 사건을 단순한 감정의 배설구로 사용하는 것은 적지 않은 모순일 테다. 이런 점에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자 동분서주하는 언론에 대한 경의를 표하면서도 무감각한 사회로 인해 비극이 심화된 사건의 본질을 해치지 않았고, 피해자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실화를 각색하였다. 또한 영화 내 등장하는 변호사 미첼 개러비디언(스탠리 투치)의 대사, "이건 명심하세요.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학대하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에요."를 통해 영화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기까지 하니, 훌륭한 시사 고발 영화라 아니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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