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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Oct 24. 2021

영화 <스탠바이, 웬디(2017)> 리뷰

우주를 달리는 빛이여, 항해는 그 자체로 유의미하나니

영화 <스탠바이 웬디>는 주인공 웬디(다코타 패닝)가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에 참가하기 위한 여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스타트렉 시리즈를 안다면 더욱 몰입도가 높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스타트렉을 모조리 꿰찰 필요는 없다. 미국에서도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지만, 영화에서 묘사되듯 웬디처럼 "커크 함장님의 할머니까지 알고 있는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사람은 많지 않으므로. "스타워즈와 스타트렉"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소소하게 즐길 웃음 포인트가 있는 정도이니, 힐링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언제든 부담 없이 꺼내 볼 수 있는 좋은 성장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스탠바이, 웬디>의 주인공인 웬디는 자폐증을 겪으며, 이전에는 함께 살았던 듯하나 언니 오드리(앨리스 이브)가 결혼하고 출산함에 따라 스코티(토니 콜렛)의 재활 센터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우리에겐 간단한 아침 루틴(기상 후 샤워와 같은)조차 규율에 어긋나지 않도록 암송할 수 있을 만큼 뇌리에 새긴 채 움직여야 하고, 복잡한 '마켓 가'의 횡단보도는 아예 '어떤 상황에서도 건너지 않는다'는 규칙에 따라야 한다. 우리가 하루하루 흘려보내는 일상다반사가 웬디에겐 익숙해지기 전까진 어려운 퀘스트의 연속이기에, 그는 새로운 것이 발견될 때마다 머릿속에 아로새겨야 한다.



시나몬 롤을 판매하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웬디의 모습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그에게 연애감정을 품은 듯 보이는 니모(토니 레볼로리)와의 대화는 뚝뚝 끊기며, 언니 오드리와 오랜만에 만나는 장면에선 조카 루비를 만날 수 없는 까닭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노하는 장면에서 웬디가 감정 조절에 취약한 모습이 드러난다. 걷잡을 수 없는 들불처럼 산화하는 감정은 스코티가 웬디를 '스탠바이' 시키며 잦아든다. 그럼에도 웬디는 이전의 생활, 즉 오드리와 함께 하는 '집에서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 강렬한 소망에 응답하듯 찾아온 기회가 있었으니, 바로 파라마운트 픽쳐스에서 개최한 스타트렉 공모전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스타트렉이라는 드라마/영화는 미국의 오랜 프랜차이즈 시리즈들이 갖는 비판점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긴 하다. 미국 문화에 대한 신격화, 미개척지를 찾아 헤매기에 나타나는 식민주의적 모습 따위 말이다. 그러나 웬디가 스타트렉 시리즈를 신봉하게 된 것은 스코티의 아들인 샘(리버 알렉산더)이 말하듯 그러한 요소 때문이 아니라, 스타트렉 시리즈 속 감정 없는 외계인인(정확히는 하프 벌칸인인) 스팍에게 웬디가 이입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스팍이 남들과 같은 세상을 공유하지만, 다른 세계를 살 수밖에 없는 이방인인 것처럼, 자폐증이 있는 웬디는 동일한 시공간을 살고 있을지언정 매일매일 부딪히는 나날이 남들의 것과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주인공이 성장하는 로드 무비이기에 웬디는 며칠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적지 않은 고난을 겪는다. 분명 특별한 악역은 없으나, 선의인 양 접근하고서 웬디를 배신하는 소시민적 악역이나, 시치미를 뚝 뗀 채 3달러짜리 초코바를 18달러에 팔려는 부류가 많다는 것이 이들의 삶을 고달프게 만드는 주요 원인은 아닌가 고민하게 만든다.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선의란 정녕 역사 안에서 잠드는 것은 불가하다고 말하며 그들을 거리로 내쫓은 후 이불을 덮어주는 방법 밖엔 없는 것일까?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 영화, <스탠바이, 웬디>를 좋은 힐링 영화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는 모두에게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은 웬디와 삶을 분리하였을지라도, 언니 오드리 역시 웬디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자동차를 몰고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동생을 위해 사방팔방 뛰는 언니다. 웬디가 쓴 427페이지짜리의 시나리오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읽어보려 애쓰는 스코티는 언니 오드리가 발견하지 못한 그의 재능을 찾아내 놀랍고 창의적인 소녀라고 칭찬한다. 이 세상이란 어차피 모두가 공존하는 곳이다. 누군가를 급격히 타자화 시키거나 악마화 시킬 이유가 있을까?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웬디의 세계를 이해하고서 클링온어로 말을 거는 경찰(패튼 오스왈트)이 있다는 것을 통해 우리는 타인보다 울퉁불퉁할지라도, 웬디가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희망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독 벤 르윈이 그리는 세상은 이토록 따뜻하다.



마켓 가(街)는 결코 건너선 안 되는 길이었으나 웬디는 사고를 내지 않았다. 무심한 듯 보였으나 웬디의 아이팟엔 니모가 준 플레이리스트가 담겨 있었고, 여정이 끝났을 때 웬디는 니모에게 자신이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선물한다. 스타트렉 공모전에서 시나리오가 선정되어 대단한 상금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웬디는 계속 글을 쓰라는 조언을 들을 수 있었으며 세이프티 존에 머물렀다면 보지 못했을 다양한 인간군상과 길 위의 풍경을 보았다. 빛은 제 목적지도 모른 채 무엇보다 빠른 속도로 우주를 유영하기 마련일 것이나……. 이 영화를 모두 본 후 나는 생각한다, 빛에겐 다른 물체와 맞닿는 순간 의미가 생기는 것이 아닐 것이며, 빛은 목적지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 그저 항해 자체에 의미를 두고 우주를 가로질렀을 뿐일 거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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