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가족학 전공생의 글쓰기_2022 서울대학교 인권·성평등 에세이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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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니가 한번 말해봐라.”
아빠의 명령조가 너무 싫었으나 해야 할 말은 해야 직성에 풀릴 나였다.
“일단 나는 엄마가 진심으로 좋아서 그 일들을 다 한다고 생각 안 한다. 그리고 엄마가 진짜 좋아서 하는 거여도 그건 잘못된 거다. 우리가 엄마를 돕고 있으면 무슨 생각이 드는 줄 알아? 아빠랑 오빠들한테 음식이랑 술 나르면서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이게 진짜 가족이라고? 아빠가 며느리로서 역할 운운하는데 아빠는 아들로서, 사위로서 어떤 의무를 다하는데? 생각해봐라.”
몇 년간 속으로만 앓았던 말을 드디어 꺼낸 나는 똑같이 명령조로 갚아줬다. 내 말을 들은 아빠는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얼굴은 내가 알던 험악한 인상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아빠의 분노는 힘을 다했고 이후로는 딸들에게 한 수 가르쳐주려는 듯 이전과는 다른 말투로 대화 주제를 돌렸다.
“전통이라는 게 있어. 이건 오랫동안 대대로 내려온 우리 문화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그니까 그걸 왜 엄마가 감당해야 하냐고. 문화는 바뀌는 거다. 잘못된 문화는 바뀌어야 하고, 또 바뀌고 있어.”
난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문을 나서는 데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던 것에 비해 대화 상대는 논리도 위엄도 없는 나의 아빠일 뿐이었다. 아빠가 또 전통을 들먹이며 갑자기 자기의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아빠가 어렸을 때 딱 너희 같은 사촌 누나가 하나 있었다. 언제는 아버지 앞에서 지금 이 상황이랑 비슷한 이유로 화도 내고 집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혼도 안 한다고 했는데.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 것 같냐? 느그 엄마랑 달리 살고 있지 않을 것 같은데?”
너무 생뚱맞은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뭐라도 말을 해야 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아냐? 그분은 그렇게 안 살고 있을 거다. 혼자 마음대로 판단하고 들먹이고 있네.”
헛웃음을 치고 한 나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래, 됐으니까 이제 들어가 봐라.”
그때 아빠의 표정은 미소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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