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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아 Apr 04. 2024

내 글이 좋아, 그런데...

일상 기록

2024.04.04.

분명 내 글보다 잘 쓴 글을 읽고 싶었다.


  <대학글쓰기2: 사회과학글쓰기> 수업 과제로 비평문 쓰기가 있다. 지난 일요일까지 초안을 제출했고, 그 이후에는 모든 학생이 자신이 쓴 글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오늘이 오기 전까지 3번의 수업 시간 동안 9명의 학생이 발표를 했다. 좋은 비평문으로 기억에 남는 글은 한 편도 없었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내 글을 다시 읽어봤다. 내가 쓴 글은 어떤 피드백을 받을지, 더 수정할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괜히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역시 내 글은 달라. 다시 봐도 잘 썼어. 교수님께 내 글이 최고라는 칭찬을 받는 터무니없는 상상까지 한다. (그럼에도 내 글이 잘 쓴 글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정성을 들인 글에서만큼은 자신감이 높은 편이다.)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듣기 딱 좋은 마음가짐. 나도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조금 우스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멈춰지지 않는 생각이다. 나르시시즘이 이런 걸까.


여전히 내 글이 더 좋아, 그런데...


  이제는 좀 잘 쓴 글을 읽고 싶어졌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보면 왠지 모를 호감과 동질감을 느낀다. 그런 사람과 대화해보고 싶고 배움을 얻고 싶다. 오늘 수업 시간 전에 올라온 파일 중에 이전에 올라온 글들과는 뭔가 다른 글이 보였다. 그 글은 확실하게 비평문이었다. 그것도 내 글과는 달리 한 맥락 안에서 모든 문장과 문단의 흐름이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잘 쓴 비평문. 내 글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수준 높은 어휘와 깊은 사고가 담긴 글. 그래도 나는 내 글이 더 좋았다. 내가 쓴 글이어서 그렇겠지만. 수업이 시작하기 전, 교수님께서는 미리 온 학생들의 출석을 체크하시다가 해당 글을 쓴 사람에게 말을 거셨다. "--(이름), 오늘 발표지? 글을... 잘 썼던데. 역시 미학과 학생이라 그런가. 이렇게 잘 쓴 글은 간만에 봤어. 아니, 너희들(다른 학생들)이 못 썼다는 건 아니고 (웃음)" 타인을 향한 교수님의 칭찬을 듣고 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글에 흠뻑 빠져 과하게 자랑스러워하다가 찬물이 끼얹어진 순간이었다. 내가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경쟁의식


  잘 쓴 글을 읽으면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이상한 경쟁의식이 생기고 말았다. 이 점에서는 내가 더 나은데? 이 부분은 나도 보고 배워야겠다. 이러한 생산적인 성찰도 분명 했지만 신경이 온통 교수님과 그 사람의 관계에 가 있었다. 발표가 모두 끝나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름)는 잠깐 남아서 나 좀 보고 가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신 건지 궁금해서 일찍 강의실을 나설 수 있었음에도 천천히 짐을 쌌다. 학생에게 하시는 말씀을 기어이 조금 듣고 나왔다. 다른 학생의 발표를 듣고 피드백하는 활동이 참여 점수에 들어가는데 그분은 도통 피드백을 하지 않아서 교수님이 독려하시는 듯한 맥락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그 사람이 의식되었던 것일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최고인 상태? 최고의 평가? 글 잘 쓰는 학생을 향한 교수님의 애정?


  당최 모르겠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못나게 굴었던 것인지, 타인의 평가에 의존적인 것인지. 내가 너무 오만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건 오만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내적 동기가 특정 시점에서 만족 상태에 이르면 그때부터는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민감해진다. 1학년 때도 경험했던 바이다. 내가 만족할 만한 글을 완성했을 때의 기쁨보다 교수님께서 은밀히 나를 불러 가장 잘 쓴 글 두 편 중에 내 글이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을 때의 기쁨이 더 컸다. 이게 맞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내 글이 최고가 아니라면 그 글을 쓰기까지 내가 들인 노력은 무의미한 것인가? 나는 언제쯤 순수하게 창작의 기쁨만을 느낄 수 있을까? 누가 내 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다른 사람의 글이 어떤지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순전히 쓰면 쓸수록 점점 더 좋아지는 글, 읽고 싶어지는 글, 여운을 남기는 글을 쓸 때의 행복만을 경험하고 싶다. 내 글보다 잘 쓴 글을 보며 자극을 받아야지, 위기의식에 예민해지고 싶지 않다.


결론: 그게 너무 어렵다!!! 언젠가는 편안함에 이르겠지 뭐! 일단은 최선을 다하고 보자=내가 제일 잘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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