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기록
2025.5.10.
우리 집 이야기를 할까 한다. 지난 연휴 동안 집에 있으면서도 나 좀 외로웠거든. 편한 자식이라는 거, 확실히 있다. 우리 집에서, 아니, 우리 엄마한테는 그게 나다. 언니와 동생한테는 안 하는 이야기, 예컨대 우리 집 형편이나 딥한 가정사에 대해 나한테는 다 한다. 그게 얼마나 오래된 건지 가늠도 안 된다. 중학생 무렵부터였으러나. 내 인생의 절반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나는 엄마의 리스너가 되어왔다. 한때는 그게 나름 좋았다. 내가 엄마의 듬직한 딸이라는 게. 우리가 특별한 모녀 관계인 것 같아서.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우리의 대화가 쌍방향 의사소통인지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숨막히는 대화 주제가 점점 많이 들려왔다.
가장 최근 건은 아빠가 다니는 직장이 어려워져서 아빠가 잠시 쉬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역시나 엄마가 나한테만 말했다. 엄마가 그 사실을 전화로 이야기해준 전날 딸들보고 전화될 때 하라길래 집에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됐는데 그날 전화에서 알았다. 아빠가 요며칠 일이 없다가 지금은 아예 집에서 쉬고 있고 엄마는 족발집 알바를 뛰기 시작했다고. 사태의 심각성에 눈앞이 아찔했는데 엄마가 덤덤하게 말하길래 나도 덤덤하게 반응했다. 아빠가 쉴 기회지 뭐, 이참에 운전 면혀 연수도 받고 잘됐네. 좋게 생각하려 했는데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알바, 과외 자리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난 주 금요일 저녁, 약 두 달만에 집에 도착했다. 저녁 먹고 해야 할 일을 끝내고 큰방에 혼자 있을 때였다. 거실에서 인간극장에 청년 귀농 이야기를 보며 아빠가 쓸 데 없는 짓이라며 비난하는 게 엄마는 그리도 듣기 싫었나보다. 내가 있는 방에 들어와서 아빠 험담을 했다. 일주일 넘도록 집에서 쉬면서 아무 일도 안 하려고 하는 주제에 = 엄마가 제안한 시급 높은 알바를 몸 다 상하는 일이라며, 자기가 다쳐서 아무 일도 못하는 골 보고 싶냐는 아빠가 그런 말할 자격이 있냐는 게 요지였다. 아... 깝깝해....
그게 시작이었다. 정확히는 '또' 시작이었지만. 난 아빠도, 엄마도, 몸 상해가며 일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떤 딸, 아들이 그렇게 안 생각하겠냐.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두 사람을 한심하게 생각하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열심히 하는데 겨우 최저시급 받아가며 평생을 제자리걸음하는 우리 집구석이 내 숨통을 빈번히 조일 뿐이다.
엄마의 가족 험담이 그냥 험담이면 (그것도 해롭긴 하지만) 그나마 들어줄만하다. 그런데 그놈의 궁상, 돈 얘기가 섞이면 이젠 진짜 못 들어주겠다. 아빠 험담에서는 "...엄마." 라고 말하며 더 안 듣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 솔직히 짜증낸 수준도 아니었다. 엄마는 그게, 고작 그 정도로 그렇게나 서운했던가보다. 그 다다음날 험담의 대상은 같이 사는 할머니였다. 요지는 또 하지 말라는 물청소를 했다는 것. (중요) '자기가 물세 내줄 것도 아니면서.' 그 얘기를 나한테 왜 하는 건지... 이때는 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던 것 같다. "엄마...쫌.." 그러면서도 엄마는 할머니한테 쩔쩔맨다. 뭘 계속 먹이려 하고. 이건 할머니도 그러신다. 정서방 뭐 좀 멱이려고. 챙겨주려고 쩔쩔맨다. 그게 너무너무 갑갑하게 느껴진 건 왜일까. 집에 있어도 바로 그 쩔쩔매는 모습들 때문에 마음이 하나도 편하지 않았다.
다시 엄마와 내 이야기로 돌아가서. 드라마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를 보는 중이었다. 엄마랑 동생이랑 같아. 딸이 엄마한테 짜증내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고 나서 감동적인 장면으로 넘어가는 클리셰. 공감하면서 봤는데 엄마가 나를 보고서 울먹이는 걸 참으며 말했다. "엄마가 험담을 좀 하기로서니 좀 들어주면 되지. 짜증을..." 동생이 엄마 편을 들었다. "그래, 나같으면 다 공감해줬다." 내가 무엇을 더 공감해줘야 해? 아빠가 한심하다고? 무능하다고? 몸도 안 편한데 계속 집구석 비집고 다니는 할머니가 나도 너무 싫다고? 엄마의 감정에 동기화되었던 나날이 스쳐지나갔다. 그런데 더 억울한 건, 그렇게 나한테 자기 감정을 쏟아붇고 자기 편을 만든 엄마가 뒤돌아서면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할머니가 또 건조기 필터 먼지 싱크대에 버렸어.... 짜증..."이라고 내가 말하면 "못 본 척해. 엄마가 다 치울게." 분명 엄마가 그 분노를 주입했는데 이제 그런 엄마는 없다. 돈이 없다길래 "그럼 아빠 술을 사지 말아봐." 이랬더니, "그게 아빠 유일한 낙인데 어떻게 그래." 난 그런 식으로 엄마 곁에 있는 동안 삼각화의 희생양이자 엄마의 일시적인 푸념을 들어줄, 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었던 셈이다.
삼각화는 가족 치료 수업에서 배운 개념인데, 딱 엄마-나-아빠/할머니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자기 편을 만듦으로써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고 같은 편과 돈독해지는 원리. 나는 그걸 엄마와 동생한테 설명하며 말했다. 그건 나한테도, 엄마한테도, 아빠한테도 좋을 게 하나도 없다고. 울분이 터질 뻔했는데 "그래, 알았어. 엄마가 잘못했어." 라고 뚝 잘라버리길래 거기서 멈췄다. 동생은 그제야 심각성을 눈치챘는지, "너 생각보다 많이 스트레스였구나..?"라고 말했다. 더 모질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평생 엄마 감정 쓰레기통으로 살아온 걸 아느냐고. 엄마가 나한테 생각 없이,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던져온 모순적인 메시지들이 언제나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지금 내가 큰 돈 나갈 일 앞에서 불안해하는 것, 옷 잘 안 사고 돈 쓰기 싫어하는 것, 가족 여행이나 가족 쇼핑에서 예민해지고 피곤해지는 것도 다 엄마 때문이라고. 나 사는 것도 힘든데 보태지 좀 말라고. 엄마 얘기만 하지 말고 내 얘기 좀 굼금해해달라고, 들어달라고. 엄마야 말로 내 편이 되어달라고.
다 내뱉지 못했다. 그때 난 그저 가족 치료 삼각화 개념만 내세우며 '김사비' 같은 애가 됐을 뿐이다.
내가 베갯잇에 얼굴을 처박고 숨죽여서 펑펑 운 건 그 다음날 아침 일이다. 언니가 미용실에 가기 전에 잠이 덜 깬 내 앞에 와서 뭐라뭐라 말했다. 나는 컷트만 하라고 했다. "왜~ 너도 염색했잖아. 나도 펌 하고 싶어." 엄마는 그 옆에서 "그래~ 하고 와." 이러길래 내가 그랬다. "나는 내 돈으로 했지." 괄호 치고 너는 돈 없어서 당연히 아빠 카드 긁을 텐데 지금 상황에서 자제해라 이런 의미였다. 엄마가 속이 긁혔는지, 미안했는지 말했다. "엄마가 미안해. 자꾸 현아한테만 없다 소리 하고 아빠 험담하고 그래서 스트레스 받았나봐. 엄마 반성하고 있어." 내가 울먹이며 말했다. "엄만 나한테만 그런다. 진짜 지긋지긋하다고..." 언니는 내가 등지고 있어서 모르겠는데 일시정지된 것 같았다. 내가 내 돈으로 염색했다는 말을 듣고는 잔뜩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그렇지...."
원래도 씀씀이가 제일 큰 사람이라 우리 집 형편을 알고도 저러나 싶었는데 언니는 몰랐단다. 아빠가 집에서 쉬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고 한참을 아무 말도 않고 멈춰있떠니 방을 나갔다. 동생이 알려준 사실인데, 언니가 울었다고 했다. 자기 앞에서. 몰랐다고, 맏이가 돼서 너희한테 부담줘서 미안하다고 펑펑. 언니가 그 이유로 우는 동안 나도 서러움이 터져서 울었다. 아무도 모르게. 엄마한테 전부터 모질게 내뱉고 싶었던 말을 내 속에서 썩히며.
그렇다고 해서 집 떠나는 게 후련한 것만은 아니다. 내 눈치를 보고, 슬금슬금 내게 다가오고, 출근하기 전 마지막으로 내 얼굴을 보러 들어와서는 비몽사몽한 나를 안아주는 엄마의 모습이. 집 안에서 그렇게 그리워하던 딸들이 다 집에 왔는데도 대화는커녕 자기 굴에 들어가는 아빠의 모습이 참... (어깨 좀 피라고 진짜...) 눈에 밟힌다. 내가 오늘 어떤 상금으로 5천만원이라는 상금을 타서 효도(?)하는 꿈을 꾼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나의 안간힘, 발버둥 이면에는 이런 내 가족이 있다. 그래서 난 오늘도 생각한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아주 많이...
가족들은 내가 다시 서울로 돌아오려고 집을 떠날 때 "잘 다녀와"라고 인사했다. 이제 내가 '돌아갈' 곳은 거기가 아닐 텐데. 슬프다. 고향에 있어도 혼자고, 의지할 사람이 없어 외롭다는 게. 이제는 이런 속사정을 가족에게 말하는 것도 어려워졌다는 게. 어딜 가나 이방인이 된 듯하다. 서울에 있으면 진짜 혼자니까. 누구와도 깊은 대화를 하지 못하고, 내 이야기를 하는 방법을 모르겠고, 속이 텅 빈 대화만 오가니까.
그냥.. 하루빨리 나라도 자립해서 안정을 찾고 싶다. (근데 그날이 진자 언제 오는 건데... 오긴 할까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