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일상 기록_습관처럼 글쓰기 1일 차

by 정현아
2025.7.19.

오랜만에 키보드 앞에 앉았다.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서, 돈을 벌고 싶어서가 아닌, 내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쓰고 싶어서.

습관처럼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글쓰기를 어디까지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알고 싶어서.

내가 이걸 업으로 삼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지난달 23일, 서울대학교 학부대학이 주최하는 글쓰기 특강이 있었다. 이번 강연자는 황석희 번역가였다.

꾸준함, 호기심, 스타일, 향상심

글을 잘 쓰기 위해서 반드시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하셨다. 그중에서도 꾸준함은 다른 세 가지 요소의 근원이라 특히 중요하다고도... 꾸준함이란 매일 4-500자 정도 어떻게든 쓰는 걸 말한다. 배민 리뷰라도 좋으니까 매일 쓰고 봐야 글을 잘 쓸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찔리지도 않았다. 미련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젠 내가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어서였다.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생산적인' 일 중에서 가장 즐긴 일은 글쓰기였는데, 언제부터인가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일이라고 말하지 않게 되었다.


그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1. 글쓰기를 업으로 삼을 만큼 내가 유능하지도, 글쓰기에 진심이지도 않은 것 같다.

2. 3학년 때부터 학술적인 글(선행연구를 찾아서 읽고 적절히 인용하는 것이 몹시 중요한 글)을 쓸 일이 많았다.

3. 글로 돈을 벌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생산성 강박에서 비롯된 자기 계발 속에서 글이 숨 쉴 틈이 되어주었어야 했는데, 글이 오히려 강박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글 앞에 숨이 막혔고, 글 쓸 시간에 빈둥거렸다. 반드시 써야 하는 글(과제)들은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다가 마감일이 임박해서야 괴로워하며 썼다. 나의 글쓰기 방식은 초고를 쓸 때부터 완벽에 가깝게 쓰려고 하기 때문에 피드백을 받고 글을 고치는 일은 더더욱 싫었다.


이것이 내가 글을 멀리한 이유이자, 1.처럼 생각하게 된 계기이다. '업으로 삼을 만큼'이라는 말이 요즘 나의 고민을 대변한다. 이 글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게 뭐예요?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한 사람이 주변에 많다. 주눅 들 일이 아닌데 주눅 든다. 저 사람은 하고 싶은 일 앞에서 저렇게나 빛나는데, 나는 왜 하고 싶은 일이 뭐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할까. 아마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업이랑 관련이 없어서이기 때문이겠지. 자기 방어가 앞서는 나는 위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모르겠어요. (그런 게 있어도 일자리가 없으면 의미가 있나요?)

그래도 제가 해온 일이랑 조금이라도 관련된 직무의 인턴은 다 넣어보고 있어요. (다 떨어지고 있지만요)

HR이나 콘텐츠 관련된 일에 그나마 관심이 가요. (그런 일자리는 SNS 운영 경험이 있고 대외활동/학회/다른 인턴 활발히 해본 사람을 뽑아요 = 내가 뽑힐 가능성이 없는데 대답은 해야겠어서 하는 말)


괄호 안이 내 진심이다. 인턴 지원 몇 개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이렇게까지 삐뚤어져도 되나 싶다. 이번 달 초에 간절했고 꽤 희망이 보였던 인턴에 떨어진 여파가 좀 오래간다. '이런 일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하고 다닐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을 만큼 나와 잘 맞을 것 같았던 자리였다. 그렇게 원하던 곳에 결국 떨어지고 비슷한 인턴 자리를 찾자니 안 보였다. 사실 찾을 의욕도 없었다. 나약한 사람이라고 욕해도 좋다. 나도 지금 이런 내가 무지 별로니까.


하고 싶은 일. 일을 업으로 보지 않는다면 할 말이 많다. 빈둥거리기. 빈둥거리기도 지겨우면 소설이나 산문 읽기. 책 읽기 싫어지면 또 빈둥거리기. 가끔은 좋아하는 사람도 만나기. 뜨개질하기. 취업은 거들떠도 안 보기. 본가에서 가족이랑 살기. 질문의 저의가 이런 답을 듣기 위함은 아니었을 테니까... 그리고 나도 그걸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으니까 억지로 그럴듯한 일을 꾸역꾸역 꺼낸다. 미래지향적이지 않고 많은 사람이 다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 내 경쟁력은 찾을 수도 없는 일들을. ex. 방송국, 애니메이션 회사, 출판사, 기자


물론 아예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말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야기하는 일이 하고 싶다. 글이든 영상이든. 너무 추상적이고 아이디어도 고갈되어서 어디에 말하기 부끄러울 뿐. (이래놓고 면접에서 그렇게 답하기도 했다. 그래서는 안 됐을지도..) 한때는 정말 방송국에 들어가고 싶기도 했는데, 영상 만드는 동아리에 작가로 소속되고 그중 한 명이 하는 단기 프로젝트에 팀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지금은 내가 영상에 1도 관심이 없는 사람인 걸 깨닫고 접었다. 글은... 글이 돈이 될 수 있는 분야가 내가 아는 선에서는 기자, 편집자, 작가 정도인데 언론사, 출판사 모두 사정이 좋지 않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접었다. 작가는 생각해본 적 없다.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은 이미 많은 데 반해 읽는 사람은 아주아주아주 적으니까. 이 글도 몇 명이나 읽을지 모르겠다.


맞다. 나는 팔랑귀에 남이 하지 말라는 건 절대 안 하는 사람이다. 그 와중에 돈은 많이 벌고 싶은..




니트족*이 되는 이유를 알 것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약자. 이대로 가다간 내가 마주할 미래.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부분은 내가 빈둥거리기를 아무리 좋아해도 못내 할 일을 찾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확신이 없을 때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브런치나 블로그에 글을 써서 올릴 때만큼은 스트레스였던 적이 없다. 글쓰기는 일종의 계시에서 비롯된다. (매일 써야 해서 쓰는 거면 모르겠다. 이게 진짜 문제긴 한데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정말 어리석으니까 일단 시작했다.) 이런 걸 보면 글을 더 자주 써서 주목받는 쪽이 내가 직무 교육을 듣거나 학회 활동을 한 후 인턴으로 뽑히고 취업에 이르는 쪽보다 기쁘게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글쓰기 특강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강연이 끝난 후 질의응답에서 황석희 번역가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급변하는 시대가 허락하는 일만 한다면 선택지가 몇 개 없다. 지금은 선택과 준비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시대다. 시대가 허락하지 않아도 어떤 일을 좋아하고 꾸준히 잘하는 사람은 잘 된다. 자신이 꾸고 있는 꿈이 하고 싶은 일에서 비롯된 것인지, 성공한 사람의 후광인지 구분해야 한다. 시대의 변동성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선택은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사실 그렇게 다르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도 그 일을 하다가 죽고 싶을 때가 있고, 싫어하는 일을 하는 사람도 그 일이 좋은 순간이 있다. 어느 하나의 선택이 옳은 것이 아니고 이것저것 다 해봐야 한다.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대학생의 시선에서 위 말은 좋아하는 일로 성공한 사람의 특권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믿고 싶다. 꾸준히 쓰다보면 뭐라도 달라질 거라고.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글 쓰는 일'이라고 답할 자신은 없다. 취준도 병행할 것이다. 어떤 쪽이든지 길이 보인다 싶을 때 자신 있게 말하고 다녀야지. 그전까지는 숨은 작가(?)로서 매일 글을 쓰고자 한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습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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