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과 멀어지고 싶어서
2026.02.03
미래에셋 박현주 재단에서 장학금을 받게 된 동시에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하고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내가 잠시간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한동안은 외면했다가 현실을 직시하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니가 몇 번이고 서울과 고향을 오가며 면접을 보고 최종 불합격의 고배를 맛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오늘도 아무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언니는 울음을 뚝 그치고는 말했다.
"이제 진짜 너랑 놀 계획이나 세워봐야겠다."
타지에서 혼자 쏘다닐 줄 알았는데 함께 여행할 가족이 생기자 드디어 의지가 샘솟았다.
언니가 언제 출국하는 게 가장 싼지, 유럽 전역을 돌아볼 거라면 내가 있는 독일은 언제쯤 오는 게 가장 효율적일지 마구 찾아봤다. 비행기표 가격을 알아보느라 한 시간이 훌쩍 갔다. 교환 준비는 나 몰라라 하고 쇼츠나 보며 심심해하던 때와 달리 시간이 쏜살같이 갔다. 알아보면서 깨달았다. 아직 불확실한 게 많았다. 언니와 여행할 일정을 확정하기에 내가 언제 시간을 낼 수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본(University of Bonn에서 온) 메일 똑바로 확인하기'
대략 두 달 전에 휴대폰에 남긴 메모를 드디어 실천했다. 정확히 정규 학기 전 독일어 특강 기간이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정규 학기 시작일은 며칠인지 두 달 전에 온 그 메일에는 똑똑히 적혀 있었다. 언니와 언제 놀 수 있을지 확정하려다가 교환 학교 개강일을 알게 될 줄이야.
시기별 저가 항공편을 찾다 보니 '유럽은 출발 5개월 전에 항공편을 예매하는 게 제일 싸다'는 인터넷상의 소문이 거짓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9월 말에 끊은 항공편이 출국 일자를 24일 남겨두고 11만 원이나 싸져 있었다. 손해 본 기분...이 아니고 사실. 더 중대한 문제는 기숙사 입주가 3월 첫째 주 평일인데 내가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는 일시는 독일 시간으로 2월 27일 16시라는 점이다.
그 말인 즉, 3박 4일을 프랑크푸르트나 파견교가 위치한 본에서 숙소를 잡아 묵어야 한다. 그러게 왜 3월 초가 아니라 2월 말에 출국하냐고? 첫째는 기숙사 입주가 3월 초 평일이라는 사실을 작년 9월에는 알지 못했고, 둘째는 그날 그 시간 그 비행기표가 가장 쌌다.
본에 있는 숙소를 우선 알아보니 1박에 10만 원이 기본이었다. 부담스러웠다. 심지어 곧 있으면 본에서 기숙사를 쓰게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가격이 더 아깝게 느껴졌다. 프랑크푸르트는 치안이 별로라던데... 너무 섣부르게 비행기표를 끊었나 싶었다. 출국 일정을 변경하려 했으나 수수료가 너무 컸다.
끝내 프랑크푸르트에서 3박을 보내는 편이 합리적이겠다는 판단이 섰다. 구글, 트립닷컴, 네이버를 오가며 숙소를 찾던 중 유로맘 한인 민박을 발견했다. 좋은 리뷰를 보고, 기숙사 입주 날짜를 한 번 더 확인하고, 결제할 그 사이트가 가장 싼 편인지까지 알아본 후 27만 원 정도를 지불했다. 그렇게 싸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무려 아침, 저녁 식비까지 포함된 가격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설마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이동편도 더 알아봤는데 그때그때 생각해도 될 것 같다. 미리미리 한다고 해서 손해를 안 보는 건 아니었으니까. 참,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내가 구매해 둔 항공편이 '이벤트 운임'이라 수하물 규정이 15kg이며, 취소 및 변경 수수료도 다른 운임에 비해 훨씬 비싸다는 점. 부랴부랴 추가 수하물 가격을 검색해 보니 1kg만 늘어나도 이벤트 운임은 비용이 무자비하게 높아졌다. 그럴 줄 알았으면 '고작' 10만 원 더 비싼 스마트 운임을 택했을 거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어찌나 와닿던지. 소위 말하는 멍청 비용 나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캐리어에 넣어둔 여름옷을 다시 추렸다. 가방 형태의 러기지에 입을 여름옷만 몇 벌 옮겨서 위탁 수하물 2.5kg를 확보했다. 캐리어의 빈 공간에 초겨울에서 봄에 입을 옷을 추가하니 현재 위탁 수하물 무게는 약 10kg. 남은 무게는 5kg다. 아끼고 아끼다 보면 15kg 정도는 맞출 수 있겠지. 넘치면 등에 짊어질 백팩에도 좀 덜고.
이상하게 진땀 빼며 싼 쪽을 택하고 후회하고 꾸역꾸역 감내하는 상황이 그렇게 비참하지 않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내가 가진 조건을 긍정하지는 못하더라도 수용할 수는 있지 않은가. 현실을 수긍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선택지를 찾아가는 게 어쩌면 당연하고 도리어 멋진 행위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궁상맞은 게 아니라 치열한. 이제는 그렇게 나를 정의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