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가족학 전공생의 글쓰기_가족위기와 개입_독서 감상문
‘나는 누구누구야.’, ‘나는 뭐가 좋아.’, ‘나는 이러면 슬퍼.’ ‘나는’은 시선이 나를 향하는 아이들이 자신을 설명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물음표가 붙는 아이들이 있다. ‘엄마가 죽으면 나는?’, ‘왜 아무도 신경 안 써줘, 나는?’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의 저자들은 어려서부터 가슴 속에 품고만 있던 말 ‘나는?’에서 물음표를 떼고 ‘나’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우리 사회에서 ‘비장애 형제’로 불리는 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나’가 아닌 장애 형제로 향해있던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기 시작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한 편씩 써 내려갔다. 책에 실린 모든 이야기에는 ‘나는 사실 괜찮지 않았어.’, ‘나는 앞으로 나를 잃고 싶지 않아.’, ‘나는 나의 삶을 살 거야.’라는 외침이 담겨있다. 나는 그러한 목소리를 가족 위기 관점에서 분석하고 적절한 개입 방안을 제시하려 한다. 이 글이 그들을 지키고 싶은 내 고민의 흔적이자, 그들의 외침에 화답해 울려 퍼지는 메아리가 되기를 바란다.
‘나’들의 이야기에 적용해볼 이론은 가족 스트레스가 가족 위기로 이어지는 과정을 설명한 ‘ABC-X 모델’이다. 정신적 장애가 있는 형제를 둔 저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스트레스원(A)을 알아본 뒤, 가족이 가진 자원(B)과 가족의 인식(C)을 스트레스 촉발 요소와 완화 요소로 분류하고자 한다. 스트레스원(A)은 가족 구성원의 장애로 볼 수 있다. 가족 구성원이 가진 자원(B)은 가족 내부자원과 가족 외부자원으로 나뉜다. 가족 내부자원 중 스트레스 촉발 요소에는 책임 부담 쏠림, 가족 간 소통 부재, 현실 부정과 회피 중심적 대처, 전문 지식 부족이 있었고 이에 반해 가족 간 배려, 활발한 대화, 단단한 가족애는 스트레스 완화 요소가 되었다. 가족 외부자원 중에는 장애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장애인의 교육과 사회 활동을 보조하는 시설 부족이 가족 스트레스를 촉발했으며, 힐링 캠프, 정신과 진료, 비장애 형제 자조 모임 ‘나는’, ‘나’의 가족 이야기를 경청하고 존중해준 지인이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역할을 했다. 가족의 인식(C) 중에서 스트레스를 촉발하는 요소로 장애 형제를 숨겨야 할 존재로 보는 부모의 인식, 너무 늦은 개입으로 인해 생긴 부모의 죄책감, ‘나’라도 잘 커야 한다는 강박, ‘나’가 형제와 부모 사이에서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 가족에서 벗어날 수 없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요소로 ‘나’와 장애 형제, 가족 사이에 개별성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꼽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A에 B와 C가 개입된 결과로 ‘나’의 이야기 속 가족은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까? 스트레스 촉발 요소인 B와 C로 인해 야기된 가족 위기(X)의 양상에는 ‘나’의 우울증, 가족 간 갈등으로 인한 단절, 가족 구성원의 가출이 있다. 위기 상황에서 가족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상황 통제력을 잃는다. 그렇지만 위기를 겪은 ‘나’의 이야기가 여기에서 그치지는 않았다. 가족 위기를 전후로 ‘나’는 주변 자원의 도움을 받아 회피 중심 대처에서 사회적지지 추구와 문제 해결 중심 대처로 전략을 바꿨다. 사람들에게 가족 이야기를 피하고 부모님에게 서운하다는 말도 아꼈던 전과 달리, 친한 친구에게 사실을 털어놓거나 정신과 진료를 받았고, 가족과 말다툼을 하면서 원하는 바를 얻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가족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며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회복탄력성을 보였다.
분석 내용을 바탕으로 떠올린 개입 방안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전문 인력 투입이다. 가족에게 장애인의 조기 치료와 문제 행동 대응을 돕는 정신 장애 전문 인력과 함께, 가족의 의사소통이나 역할 분담, 비장애 자녀를 소외 없이 양육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가족 교육 인력이 필요하다. 해당 인력은 가족 구성원이 장애 진단을 받은 이후 주기적으로 투입되어야 한다. 더불어 양육 보조 인력과 상담 인력이 원활히 투입된다면 가족 구성원의 고충이 줄어들 것이다. 이로써 위 방안은 스트레스원이 더 심화하거나 누적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 둘째는 힐링 캠프 및 자조 모임의 확대이다. 책 내용 중에서 초등학생 이후로 ‘비장애 형제’를 위한 힐링 캠프 경험이 없지만 그때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저자의 말에서 이 방안을 고안했다. 여느 개인들과 같이 ‘나’ 역시 성장하면서 가지게 되는 고민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린이에게뿐만 아니라 청소년기, 청년기에도 다른 ‘나’들과 어려움을 공유하고 휴식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쯤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로 들어가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싶다. 나는 첫 에피소드인 ‘태은’의 이야기를 읽을 때부터 ‘나’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고는 비록 내가 비장애인의 비장애 형제이지만 ‘나’들과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은’을 비롯한 ‘나’들이 경험한 가정 내 시선의 쏠림, ‘잘’해야 한다는 부담, 숨통이 조여오는 느낌은 나에게 그다지 낯선 일이 아니다.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가족의 신세 한탄으로 가족은 종종 벗어나고 싶은 품이 된다. 또, 가족 중 한 명이 아프거나 힘들 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외로워지고 나만은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신경이 곤두선다. ‘나도 힘들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가족 구성원의 장애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나는 소통의 장을 넓혀 가족 문제를 공유하는 ‘우리’의 커뮤니티를 원한다. ‘나’들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의 연대 속에서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계망에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오히려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객관적이고 현명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과 주고받음으로써 우리가 한층 성장하리라 믿는다. ‘장애’라는 테두리를 넘어 ‘가족’의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는 그런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도 긴요한 소통 창구가 될 것이다.
인상 깊게 읽은 ‘해수’의 이야기를 끝으로 글을 마치려 한다. ‘해수’는 상견례에서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남동생을 보고 보인 반응에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상견례에 가는 길에 그는 동생이 돌발 행동을 할까 봐,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그런 그를 보고 눈살을 찌푸릴까 봐 불안해했다. 그러나 ‘해수’는 예상과 달리 자신의 형제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자연스럽게 반응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한숨을 돌렸다. 이러한 모습은 장애인의 가족이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방식과도 비슷하다. 차이에 너그럽지 못한 사회에서 그들은 한껏 위축되지만 따뜻하고 진심 어린 시선은 그런 그들을 보듬어줄 수 있다. ‘나’, ‘나’의 형제, ‘나’의 가족이 자신과 서로를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절실한 것은 어쩌면 다름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우리’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희망한다. 나와 다른 ‘나’를 감싸 안을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우리’ 모두가 나로 살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