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들도 꽃은 좋아하더라
잔인했던 3월은 가고, 어느새 4월이 왔다.
입고 간 겨울옷이 유독 덥게 느껴지기 시작한 시점에서 창밖의 나무들을 자주 힐끔거리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부터 포근했던 바람이 불고 햇살이 좋다 싶더니 거짓말처럼 앙상하던 나뭇가지에 꽃이 피어 있었다. 그 날은 또 어느 상갓집에 조문을 다녀온 다음날이기도 했다. 눈부시게 맑은 날 화사하게 핀 꽃들을 보고 있으니 어제 온통 검은 색 옷을 입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던 일이 꿈인가 싶었다. 또 작년과 재작년에 보았던 꽃을 떠올리며, 꽃은 봄이 오면 피고 또 피는데 인간의 일생은 단 한번 뿐이구나 하고 잠시 상념에 잠겼다.
한번뿐인 인생처럼 활짝 피어있는 꽃을 보러 가기로 마음먹고 기다리는 주말은 아주 더디 왔다. 벚꽃놀이를 가자고 하니 초딩 남매 둘 다 싫지 않은 눈치다. 내가 꽃을 보고 느끼는 감정들을 아직 모를 나이어도 꽃은 그저 예쁘고 좋은가보다 생각했다.
경기도 남부에 위치한 우리 집에서 어디로 벚꽃놀이를 가야 좋을까 남편과 함께 고민했다. 윤중로, 석촌호수, 남산, 과천 서울대공원... 서울에 좋은 곳들 많지만 이미 재작년 서울숲에 벚꽃놀이를 갔다가 벚꽃보다 많은 사람들에 치인 경험에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심지어 그땐 휴직이라 평일이었는데도..! 주말은 대체 어떻다는 말인가...) 역시 남쪽으로 가는 게 답인 것 같아 검색해 보니 호수와 어우러진 벚꽃이 있는 충주의 충주호호에 끌렸지만 남편이 지도를 찍어보니 우리집과 두시간이 넘는 거리라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는 일정이 빡빡할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천안으로 왔다. 지난주에 벚꽃 없는 벚꽃축제를 치른 지역도 많았다는데 이곳은 마침 이 날이 벚꽃축제 기간이었다. '천안 북면 위례 벚꽃축제'. 15km가 넘는 벚꽃길이라는 정보에 기대감이 부풀어올라 가는 길이 설렜지만...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고 빠져나와 겨우 목적지까지 5km정도 남은 시점이었던 것 같은데,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차량 정체가 이어졌다. 그래도 비교적 남쪽인 천안이라고 방심해서는 안됐다. 천안에 들어서고 차에서 한시간을 넘게 있었던 것 같다. 겨우 도착한 축제장은 사람으로 인산인해였고 먹거리 천막들은 가득했지만 돗자리를 펼만한 곳은 없어 우리는 또 한참을 헤맸다.
노지캠핑을 많이 하는 곳이라더니 과연 벚꽃이 드리워진 하천 쪽에 주차된 차 사이사이 텐트들이 있어 우리도 그곳에 자리잡고 조그만 우리의 원터치 텐트를 폈다.
으리으리한 텐트들 사이에 우리의 원터치 텐트는 바람불면 날아갈 듯 소박하기 짝이 없었고 테이블도 없이 캠핑의자만 겨우 펴고 앉아 그럴듯하게 준비해온 음식도 없이 편의점에서 급조한 밀키스와 과자 몇 봉지를 함께 나눠먹었을 뿐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초등학교 6학년인 큰 아이는 이미 내 키를 넘어섰고 3학년인 작은 아이는 한번씩 되바라진 소리를 해서 야단도 맞고 하지만 좁은 텐트에서 까르르 웃으며 뒹구는 모습은 여전히 해맑고 아기같아서 내 마음을 공연히 짠하게 한다. 부드럽고 따스한 봄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 생동하고 연한 이 봄이란 계절은 아이들과 얼마나 닮아 있는가를 생각했다. 계절도 봄, 아이들도 봄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