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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연필 Apr 03. 2017

마음의 문신 - 격려

내향적 사람들을 위한 시원함

초등학교 미술 시간이었다. 4B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물감으로 색을 칠하는 시간. 신기하게도 공부를 싫어하는 친구들마저 집중하게 만드는 수업이었다. 모두가 조용하게 연필로 스케치북을 쓱쓱거렸다. 그 소리만 교실에 가득했다. 떠드는 친구도 자는 친구도 없었다.


풍경을 그리는 시간이었고, 미술을 배우는 친구들은 이미 집에서 연습을 해온 것처럼 빠르게 쓱쓱 그려갔다. 나는 연필로 그리는 순간이 가장 좋았다. 소리가 좋았다. 스케치북에 대고 움직이는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알려줬다. 작고 일정한 소리로 가득 차는 교실은 귀를 즐겁게 했다.


연필로 그릴 땐 소리뿐 아니라 작은 부분도 그리기가 좋았다. 내가 생각한 작은 부분들도 그릴 수 있었다. 그림이 다 완성되어 갈 때쯤, 장난꾸러기 같은 친구들은 무리 지어 다니며 다른 친구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평가했다. 


웃기게 그린 친구의 작품이 가장 인기 있었다. 그리고 미술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의 작품에는 우와~. 탄성이 가득했다. 그리곤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기에 바빠서 그냥 지나치겠지 하며 계속 그림에 집중했다. 그중 한 친구가 말했다.


"얘봐. 나무는 잘 그렸다"


그리던 손이 멈추고 얼굴이 빨개졌다. 칭찬 때문이 아니라 곧 확인하러 모여들 친구들 때문이었다. 부끄러웠다. 잘 하는 게 별로 없던 나에겐 잘 한다는 말은 어색하고 불편했다. 친구들은 하나 둘 나무를 보며 잘 그렸다 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무에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었다. 그리고 곧 물감을 이용해 색을 입히는 시간이 됐다. 연필로 그렸던 작고 자세한 부분들은 물감으로 가려졌다. 나무도 몸통은 갈색, 잎은 초록색으로 칠하면서 연필로 그렸던 내 작은 부분은 가려졌다. 역시 그림이 다 완성이 되었을 쯤에 그 그림 평론가 모임 같던 친구들은 다시 하나 둘 확인하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다시 내 그림을 보고 칭찬했던 그 친구는 단호히 말했다.


"아 뭐야. 이상해졌어"


이상해졌다는 대사 역시 많은 친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연필로 그렸을 때 보다 더 많이 구경하러 몰려왔고, 잘 못 그린다는 여러 방식의 표현으로 한 마디씩 남기고 자리로 돌아갔다. 상처였다. 기대하지 않았던 칭찬으로 만들어진 상처였다. 온몸에 열이 났다. 땀도 났던 거 같다. 그때 미술 학원을 다녔던 여자 아이도 혼자 조용히 내 옆으로 오더니 내 그림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빨리 한 마디 하고 돌아가 줬으면 생각할 때 내게 말했다.


"쟤네들 말 무시해. 너가 너무 작게 그려서 그래. 다음엔 물감 칠할 때 도와줄게. 너는 실력 금방 늘걸."


평소 말 한 번 주고받지 않은 같은 반 친구였다. 그렇게 말하곤 자리로 돌아가 물감을 정리했다. 여전히 내 얼굴의 온도는 가라앉지 않았지만, 그 여자 아이의 말에선 시원함이 있었다. 뜨거운 여름 시원하게 부는 바람이 땀을 식혀주는 느낌보다 더 빠르게 나를 식혀줬다.








격려라는 것은 칭찬이나 위로와는 다르다. 그 온도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격려는 시원한 바람처럼 내가 흘린 땀이나 몸의 온도를 멈춰준다. 따뜻함이 그 따뜻함을 준 사람을 바라보게 한다면, 시원함은 나를 먼저 확인하고 그 시원함을 준 이를 바라보게 한다.


따뜻함과 시원함은 지친 우리에게 힘이 된다. 단지 각자의 몸의 온도에 따라 다르게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표현을 못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친구들에겐, 격려와 같은 시원함이 좋다. 일어난 문제를 안 보이게 가리려 하지 않고, 그 문제를 알려주거나 인정하는 그 시작. 그건 예고 없이 들어오는 커다란 칭찬이란 부담보다, 천천히 다가오는 친구의 역할을 해준다.


따뜻함과 시원함은


언제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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