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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연필 Apr 24. 2017

고집부리며 살 시간들

탈진을 달고사는 삶

불금이라 불리는 금요일. 서른두 살이 먹도록 불타게 보낸 적 없던 금요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일을 마치고 상수역으로 출발했다. 스물세 살, 레스토랑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때 주방에서 일하던 동생과 친해졌고, 그 동생은 자신의 이름을 딴 J.Chef라는 파스타집을 열었다. 난 그곳 상수역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레몬즙을 뿌린 슈니첼, 달콤한 과일과 딸기 푸딩을 먹는 시간이 좋았다. 맛있는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여자들의 노하우가 이해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 중간들마다 뜬금없이, 나도 곧 무감각의 끝에 서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 앞 경춘선 공원 길에 푸른 싹을 틔운 나무들과 꽃들, 좋은 책들, 서른에 시작했던 유일한 내 동거 식물 친구들, 맛있는 음식들. 이들이 나에게 주는 여운의 시간이 줄고 있어서 불안했다. 그 불안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중간마다 두려움으로 바뀌어, 내 신경을 자극했던 건 아닐까.


동생과의 짧은 이야기를 마친 후,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로 향했다. 빈자리가 없을 시간임에도 자리가 비어 있어 앉았다. 버릇처럼 멍 때리는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 하나가 왔다.


"혹시 OOO 씨 아닌가요?"


문자로 내 이름을 알고 있는 모르는 번호. 개인정보의 허술함이 넘치다 못해 굴러다니는 현시대, 내 이름쯤이야 알 수 있지. 문자로 어떤 사기를 치려고 이럴까. 1분쯤을 문자만 봤다. 그리고 답을 했다. 오랜 부재를 이기고 용기 내어 연락하는 지인일 수 있으니.


"네 맞습니다. 누구시죠?"


바로 전화가 왔다. 그는 처음 보낸 문자 그대로 천천히 말했다.


"혹시 OOO 씨 아닌가요?"

  "네 맞아요."

"저 OOO이에요. 기억 못 하시겠지만...."


나의 소대가 아닌 다른 소대의 군대 후임이었다. 바로 기억 못 한 게 너무 미안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연등시간을 함께 했던 후임. 민방위로 넘어가면서 더 이상 미루면 평생 연락을 못할 것 같아 용기를 낸 거라고 말했다.


이 친구는 유독 괴롭힘이 많았던 소대에 있었다. 그래서 이해됐다. 동시에 고마웠다. 뒤늦은 공부 욕심에 금 같은 2시간을 빼서 공부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때마다 이 친구와의 대화에서 주춤했던 열정과 의욕을 정비하곤 했다.


지친 이들의 늦은 퇴근 시간. 조용할 수밖에 없는 시간. 반가운 마음에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오래 통화할 수 없었다. 지하철이라 미안하다고 말했고, 그렇게 통화를 마쳤다. 아쉬웠다. 그리고 미안함과 고마움을 집까지 가져왔다.


11년 전 연등시간에도

다시

11년 후 지하철에서도

이 친구는 나에게 적나라하게 또는 담백하게 위로를 해줬다. 오늘 느낀 짧아지던 여운들이 모두 나를 보는 느낌이었다. 한꺼번에 나에게 몰려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고집대로 살아온 내 시간들이 억울한 듯 울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괜찮다고 서로 토닥여주는 느낌을 받았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너무 외롭다. 혼자가 아닌 것을 알고 있지만, 몸으로 마음으로 와 닿는 느낌이 분명 혼자라고 말할 때. 우리는 외롭고 지친다.


각자 스스로가 위로하는 방법과 시간들이 있다.


자연을 보고

책을 보고

감각을 채워주고

감성을 채워주고

일을 하고

이야기를 하고


다양한 방법들로 스스로를 지키고 유지한다. 강한 사람들은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잘 찾고 유지를 하는 사람들이고, 약한 사람들이란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도 많이 하지만 유지가 안 되거나 아직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지 못한 사람일 뿐. 외로움이란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불변의 감정이다.


혹여

난 아닌걸?이라 말하는 이들에겐

아직 그 시기가 아니거나

무감각해진 나머지 그런 적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어릴 때는 내가 고집이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참 고집부리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법적으로 성인이 된 순간부터 나의 고집도 성인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가족-대학-군대-회사-사랑 모든 공간에서 나의 고집은 꺾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듣지도 보지도 않고 나아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이런 방법이 있구나, 저렇게는 하지 말자, 다를 수 있구나 하며 배우는 시간에 집중했지만, 내 고집은 결국 '참고만 하자 너도 이게 편하잖아' 중얼거리며 한 발 앞서 나갔다.


사람이란 후회하는 시간이 많아질 때 약해지는 것 같다. 주관적 삶을 살아가자고 다짐하고 토닥이는 내 손도 앓고 있는 수전증처럼 떨리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내 고집을 응시했다. 그럼 눈치 보는 듯 구석으로 가 있었다. 하지만 나설 때가 되면 또 한 발 앞서 움직이는 고집에 나는 지쳐있었다.


그런데 이 날은, 내 고집이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거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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