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그렇게까지.
난 타인과 함께하는 식사 메뉴를 고를 때면 ‘호’보다는 ‘불호’를 묻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호’와 ‘불호’는 단순히 취향, 선택의 문제이다. 말 그대로 ‘참’과 ‘거짓’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현실은 선택과 당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있다.
말은 우리의 의식을 대변하기에 말에서도 ‘호불호’를 넘어 ‘정당‘의 문제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말들이 있다.
‘국룰(國 rule)’
‘국’이야 대한민국을 통틀어 하는 말이고, ‘룰’은 rule을 지칭한다. 즉 ‘대한민국의 규칙’이어야 한다 혹은 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소소하게는 라면 끓이는 방법, 술을 마시는 방법 등에서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는 행동, 남자와 여자의 역할, 인생경로 등에 이르기까지 깊고, 다양하게 자신들의 취향과 선택의 자유를 타인에게 강제하는 표현들이 흔히들 쓰이고 있다. 세상 어느 헌법과 법률에 취향을 ’ 국룰‘로 정하는 곳이 있다는 말인가?
‘난 이것이 좋더라’ 정도로만 하자. 어떻게 안될까?
은연중에 자신의 취향을 타인에게 강제, 강요하거나, 자신과 동일한 취향을 갖거나, 동일한 선택을 하지 않는 이들을 적대시하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취향을 법칙으로 지위를 상승시키지 않기 바란다.
‘친구(親舊)’
친구란 사전적으로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의미한다. 친구에 대한 사자성어를 보면 관포지교(管鮑之交), 죽마고우(竹馬故友), 문경지교(刎頸之交), 수어지교(水魚之交), 금란지교(金蘭之交), 지란지교(芝蘭之交), 막역지우(莫逆之友) 등 관계와 관계의 깊이에 초점을 둔 표현들이다.
한국에서는 일단 나이와 사회적, 경제적 지위로 위아래 서열을 나누고 본다. 그리고 나이가 같으면 갑자기 친구로 강요받으며, 이 또한 지위나 처지가 비슷한 경우라야만 가능한 처럼 보이기도 한다.
친구가 이렇게 가볍다는 말인가 아니면 친구에 목을 멜 정도로 외로운가, 관계를 통해 이익을 얻고 싶은가.
율곡의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는 “나이가 자기보다 곱절이 되면 아버지처럼 대하고, 10살 이상 많으면 형으로 대하며, 5살 이상 많으면 어느 정도 공경하는 게 좋다.”라고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가벼울 리 없다. 그렇다고 갑자기 친구가 될 수는 없다. 친구의 inflation은 얼마나 큰가? 친구에게는 친구에 걸맞은 value를 부여하자.
‘마약 김밥’
‘마약’은 ‘마약’ 일뿐이다. 이 표현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벌써 수십 년이 지났다. 길을 가다 아내에게 ’십수 년 지나면 한국에 마약이 많이 퍼질지도 모르겠다.‘라고 얘기한 기억이 난다. 지금 한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가가 아니라고 한다.
뭘 그렇게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