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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onin Sep 06. 2021

바람이 분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

7살쯤의 기억인가, 늦은 저녁 아빠친구 누군가의 병문안을 가 병실 티비에서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보게 됨을 시작으로 나는 한동안 병적으로 이소라를 피했다. 보고 있으면 영문없이 마음이 땅끝으로 내리 앉아서. 브라운관을 통해서 그녀를 잠시 스칠 때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채널을 돌리곤 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아 이런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키면 안 된다는 작은 다짐을 몰래 하곤 했다.

그럼에도 그녀만 나오면 무조건 반사를 보이며 흡사 지진 경보음을 들은 사람처럼 리모콘을 찾아 헤멨다. 물론 그녀는 모습을 자주 드러내는 아티스트가 아니기에, 그녀의 쇼 ‘프러포즈’만 잘 피하면 되었다. 잊고 지낸 그녀를 다시 보게 된 건 2011년.

안보면 안 됐던 그 시절 국민프로 ‘나가수 시즌1’을 통해.




무럭무럭 자라 만20살이 된 나는 그녀의 무대들을 보며 어렴풋이 내가 왜 그녀를 불편 해 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도대체 얼마나 얇은 피부를 가지고 태어났길래 저리 예민할까. 저 감성으로 세상을 대하는 저 삶이 얼마나 버거울까.’ 일종의 동족혐오. ‘글을 써야겠구나’ 라고 처음 생각했던 것은 9살 무렵이지 않을까 싶다. 누구보다 잘 웃고, 누구보다 잘 울고, 누구보다 화가 많고, 누구보다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쏟아낼 곳이 필요하구나 라고 생각 했던 것 같다.




예술성을 음악으로 키워주고 싶었던 엄마의 바람과는 다르게 나는 음악과 미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내 유년시절의 대부분의 악행은 음악과 미술 수업에서 이루어 졌던 것을 떠올리면-.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을 가장 좋아하는 소녀감성 엄마의 딸을 ‘정경화 뺨치는 클래시한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우고 싶다던 취향은 가뿐히 무시한 채, 난 남자애들을 다 패고다니며 바지가 찢어질 때까지 보이는 각종 높은 곳을 일단 누구보다 빠르게 올라가는 선머슴으로 자랐다. 돌아보면 참 싸움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몸 싸움, 크면서는 말 싸움.





말싸움을 참 잘 했던 것 같다. 책을 많이 읽어서. 총알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놀랍게도 말싸움은 이겼다는 뿌듯함보다 마음안에 상처를 늘 더 남기었다. 반대로 할말을 다 했는데도 상처가 아닌 뿌듯함을 남겼던 건 글 싸움이었다. 글을 잘 쓴다는 말을 자주 들은 것 같다. 같은 말을 했는데도 말은 화를 부르는데 글은 이해를 부르는게 신기했던 것 같다.

아마 그래서 나는 중요한 마음을 표현할 일이 생기면 글을 써야겠구나- 오해를 받지 않게- 라고 다짐했던 것 같다.




말로 소통했을 때 더 결과가 좋지 못했던 이유가, ‘내 감정선이 너무 크고 급하기 때문이구나’라고 깨달은 건 성인이 되고 나서였다.

참 많은 시간이 걸린 후-.

참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준 후-.

그러나 안타깝게도 타고난 성정이, 타고난 널뛰는 감정선 그 자체는 고쳐질 일이 만무했다. 이건 노력으로 되는 영역이 아니구나. 난 그냥 피부가 얇게 태어난 사람이구나. 인정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방향을 바꿔 말을 예쁘게 하기로 다짐했던 것 같다. 그래서 놀랍게도 지금 이게 현인3.0버전이다.

믿거나 말거나-.




결국 감정이 많아 글을 쓰기로 다짐한 거다. 그런데 표현을 말로 하면 자꾸 누군가를 상처 주니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자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거다. 내 에너지를 사람에게 쏟아내면 받는 사람이 너무 버거우니 종이에 쏟자는 다짐이었던 것 같다. 싸움을 잘했지만 누구보다 싸움을 무척 싫어함으로. 싸우고 나면 그 기억을 잊지못해 시간이 지나고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도 긴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으므로.




전에는 누구도 쓰지 못할 글을 쓰고 싶었다.

가장 뛰어난 글.

그런데 이제는 누구도 상처주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

사람은 위로가 필요할 때 예술을 찾는다고 정의 내렸기에.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글을 쓰고 싶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말을 하고 싶다.




이소라의 노래를 듣는다.

당신의 상처를 다 드러내는 당신의 노래를 듣는다.

이젠 당신의 상처에 집중하지 않고 치유의 과정을 듣는다. 많이 아팠던 만큼 많이 설명할 수 있고 많이 위로할 수 있는 당신의 음악에 치유를 받는다.

용기를 얻는다.


이소라.

나의 아티스트.

오늘은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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