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천에 있을 프란츠 카프카, 당신의 영을 축복하며-.
드디어 눈이온다.
드디어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드디어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춥지 않은 겨울, 덥지 않은 여름을 꽤나 못마땅해 하는 나는 12월이 다 가도록 제대로 된 함박눈 한 번, 살을 에는 칼바람 한바탕 내리지 않는 뉴욕의 하늘을 겨우내 무료히 바라보다 그만 꼭 쥐고 있던 시간의 옷자락을 아스라이 놓쳐버리고, 생령이 떠나 흙으로 돌아가버린 육체마냥 바스라히 부스러져 멈추어버린 시간의 협간(峽間), 그 저변으로- 저변으로- 한동안 가라 앉아 있었다.
멈춘 시간의 벽 사이에서 자연인의 모습으로 돌아가 홀로 자유히 방황하는 일은 마땅히 추천할 만한 일이 아님이 분명하지만 자신의 본성을 생태학적으로 관찰해낸다는 관점에 있어서는 또 이에 견줄만한 일이 없음 역시 자명한 듯 했다. 마치 카프카의 소설 ‘굴’처럼-. 카프카의 말은 진리는 아니다만 놀랍게도 대개 맞다. 니체의 말처럼-.
나의 사랑하는 카프카, 나를 스스로 용서하게 하는데 단초가 되어준 카프카-.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난 20대 초반시절 당신을 만나, 난 결단코 당신처럼 아버지의 완벽한 부산물이 되는데 온 청춘을 다쓰지 않으리라-, 주산물이 디자인한 통조림에 스스로 갇혀 최고급 상품이 되는데까지는 성공해 보였지만, 결국 속은 텅빈 깡통이 되어버린 그런 인생은 단연코 살지 않으리라-, 자학에 버금가는 명품 블랙코미디인 당신의 글을 깔깔거리며 웃으며 읽다,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버틸수가 없어 술을 잔뜩먹고 목놓아 울어버리기를 수십차례-, 그렇게 당신덕에 나와 당신의 컴플렉스를, 20대 중반이 되기 전, 운좋게 탈피(脫皮)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한 주춧돌 정도는 당신의 공헌으로 ‘신 앞에 선 단독자’의 모습을 얼추라도 갖추게 된 30대 초반의 난,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2023년의 잔재들을, 그 수 많았던 다짐의 잔상들과 속을 다 태워버린 열정의 그을음들을, 거센 겨울의 차디찬 바람에 한 재도 남김없이- 그림자조차 남지 않게 훠이- 저 우주로 날려버리기를 고대하고 고대하다- 도무지 불어오지 않는 침묵하는 공기에 숨이 막혀-, 버리려 잔뜩 쌓아둔 감정의 찌꺼기의 악취에 질식되어-, 그만 당신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굴’의 늪에 갇혀버리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갇힌 굴은 여전히 어둡고 텁텁하고 동시에 아늑하고 편안했다. 공기의 순환과 시간의 맥이 막혀버린 곳에서 난 쌓여버린 먼지와 함께 여기저기 마음껏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급기야 마치 눈 먼 두더지 처럼 버리려 쌓아두었던 무더기 속까지 온몸으로 헤집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배설물을 굳이 하나하나 관찰하며 그들이 삶에 소화되지 못하고 결국 이 곳까지 도달하게 된 과정들을 기어이 반추하며 자연인으로서의 나의 체질을 역행연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내가 지금 하고있는 짓이 20대 초반, 그다지도 벗어나려 발버둥 치던 나와 당신의 컴플렉스 ‘굴’ = ‘자폐(自閉)’라는 것을-. 그리고 여기 모인 감정의 편린들은 20대 초반 카프카를 반면교사 삼아 강건히 싸워 이겨내었지만 여전히 세포에 남아있는 자폐의 잔당이라는 것을-.
신앙이 내게 매력있었던 이유는 이 길이 자폐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예술을 사랑하지만 예술가를 친구로 두고 싶지 않고, 사귀고 싶지는 더 않게 된 이유는 그들이 보통 자폐적 성향이 강한 인간형임을 깨달았음이었다. 자폐란 말 그대로 자기 폐쇄적 성향, 자기도취적 성향을 뜻하며, 영어로는 Autism이라고 하는데 자신만의 감옥이란 의미에서 Self-imprisonment라는 용어로 묘사되기도 한다.
2023년 5월 말, 마지막이고 싶던 직장을 또 그만두고, 또 다시 길을 잃은 나는, 실패의 원인을 편집증 적으로 찾아 헤맸고 사회적 약자 보호와 정의 구현을 최고의 가치로 바라보는 나의 육으로서의 천성을 실현하는 무대의 선택에 오류가 있었음이라고 결론을 내렸었다. 그리고 그렇다면 ‘다음 무대’는 필연적으로, 타고난 운명이 준 필드안에서의 ’정면돌파’가 답임을 선물처럼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목표는 ‘내 손으로 양현수 자폐 완치’로 신접한 듯 걸어붙이고 하루 평균 17시간씩 꼴아 박아 의료통역 자격증을 7월 초, 자폐치료사 자격증을 8월 말 까지 따내고 9월 초 부터 현장에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12월을 맞이한 후 난 브라이언처럼 청소만 하며, 송구영신을 맞이하여 광풍이 휘몰아 쳐주길-, 그리하여 이 모든 구 시절의 흔적을 다 휩쓸어 가길-, 지루히 기다렸다. 태산처럼 모아 놓은 더미에 빠져 한 달을 헤멜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그리고 드디어 바람이 분다. 드디어 한파가 찾아왔다. 칼로 도려내듯 불어치는 바람은 마침내 무더기를 가르고, 굴을 부수고, 태초의 상태로 헤메이던 나를 씻기고, 멀었던 눈을 띄운다. 나의 자폐의 잔당들이 드디어 나를 떠났음을 체감한다. 1월은 벌써 중순이 지났으나, 나에겐 오늘이 신년임이 분명하다. 비로소 ‘송구영신’이다. 가야할 길에 마침내 제대로 들어섰음에 희망의 빛이 일렁인다. 마음에 소망이 차오른다. 먼 길을 돌고 돌아, 비로소-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