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까지 남의 손에 맡기고 오는 길
이번 달에 첫돌을 맞는 우리 둘째까지 이번 주부터 타게스무터(독일의 가정 어린이집)의 손에 맡겨졌다. 사실 첫째는 26개월이 되도록 엄마빠가 끼고 있었다. 그 시절이 코로나 시절인 것과는 별개로 첫 아이라 우리가 어떻게든 해보고 싶어서 36개월까지 끼고 있으려고 했지만 아이가 18개월이 되자 아이 스스로가 사회성 발달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때 급하게 알아본 것 치고는 운이 좋게 26개월부터 크리페(독일의 어린이집, 만 3살 미만의 아이가 가는 곳)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첫째가 32개월이 되었을 때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가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그야말로 엉망이 되고 말았다. 장난감 정리를 가르치고 나서 이를 잘 따라 주던 첫째 덕분에 깔끔해지기 시작한 집이 다시 난장판이 되었고, 한 번씩 자다가 깨긴 했지만 어느 정도 잘 유지되고 있었던 우리 일상 루틴에 금이 갔다.
그 가장 큰 원인은 모유수유였다.
둘째가 드디어 타게스무터 손에 맡겨져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내 품을 떠나게 되었다. 형아는 유치원 동생은 유치원 바로 옆 아파트에 사는 타게스무터 이탈리아 할머니 집에 맡겨진다. 아침 6시 30분에 눈을 뜬 범돌 형제는 아침 일찍 시리얼과 빵을 간단히 먹고서는 느긋하게 옷을 갖춰 입고 준비물을 챙겨 엄마 차에 몸을 실었다. 첫째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파파 츄스, 엄마 츄스~"라는 인사를 나눈 후 둘째도 내 품을 떠나 할머니 품에 안겨 나를 향해 애원하는 눈빛을 뒤로 하고 챠오챠오 하며 잠시간의 헤어짐을 고했다.
둘째까지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나니, 이제 내 삶을 다시 30% 정도는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홀가분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돌아오는 길에 오늘 해야 할 일과 남는 시간에 하고 싶은 일 몇 가지가 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브런치에 첫 글을 끄적이는 일이 그중 하나였다.
가족이란 그런 것 같다. 따로 또 같이.
결혼할 때 남편이랑 얘기했던 우리의 가치관인데,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오후 3~4시 전까지는 다른 사람과 교류도 하면서 사회성도 배우고 엄마빠에게서 배울 수 없던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는 시간을 가지고 그 이후에 우리는 또 만나 북적북적 회포를 풀면 되는 것이다. 매일 그런 일상이 쌓이면서 아이들도 자신들만의 세상을 배우고 저녁 시간에는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면서 믿음과 사랑을 더욱 다지면 이것보다 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있을까?
오늘 나는 내가 꿈꾸는 그 가족의 모습이 시작되는 첫 단추가 끼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전 11시경 여유롭게 샤워를 하고 기초 화장품을 풀로 바르면서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있는데 타게스무터에게서 둘째가 열이 난다고 연락이 왔다... 뭐 가타부타할 것 없이 데리러 갔다왔다. 오후의 내 계획은 다 무너졌구나...
아이가 있으면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내일, 아니 당장 한 시간 내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고요한 내 마음을 침범하고 내 머릿속을 뒤흔드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런 선택을 할 수가 있겠다.
여유롭고 안정적이지만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는 (아이 없는) 삶
여유도 없고 안정도 없고 하루도 바람잘 날이 없이 바쁘고 지루할 틈이 없지만 가끔 인생에서 더없는 행복과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아이가 있는) 삶
나는 선택 후에 어떻게 될지 한치 앞도 알지 못했지만 후자를 택했다. 시작은 그저 내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고 둘째로는 온전히 내가 꾸린 가족을 갖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거의 모든 엄마가 그렇겠지만 예상치 못한 삶이라도 후회는 없다.
자유를 잃었고 일을 할 시간을 잃었고 그렇기에 수익을 잃었고 남편과의 시간을 잃었고 그렇기에 둘만 있었을 때의 연애 감정을 조금은 잃었다.
하지만 나를 이 세상 전부로 여기는 아이들이 생겼고, 그렇게 그 아이들도 내 전부가 되었다. 나를 보고 꺄르르 웃어줄 때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전지전능함을 느끼게 해준다. 나는 그렇게 우리들만의 세계에서는 신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계급이 수직으로 상승했다.
그만큼 고충도 많아졌지만 그냥 아이 가진 것을 후회하냐는 물음이 있다면 정말 솔직한 마음으로 아이들이 나에게 선사한 전지전능함과 이들의 웃음소리가 처음부터 내 전부였던 것처럼 느껴지는 큰 착각 속에 빠져 내가 잃은 것들이 무엇인지는 감도 오지 않고 사실,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피곤한 이 일상에서도 충만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