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로 병든 일주일

실패한 운동 루틴

by 팬지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감사하게도 난 아주 배움이 빠른 아이어서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라면서 점점 체력적 한계에 부딪쳤다. 배움은 빨랐으나 무슨 분야든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서면 체력과 지구력이 필요했다. 난 그게 부족했다. 머릿속엔 온갖 아이디어로 가득했으나 그걸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부족했다. 지치거나 지루해 했다. 그걸 견디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전공인 영어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도 고급 수준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불편함 없이 의사 표현은 하게 되었지만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말이다. 그런 영어 수준에만 도달해도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독일어는 독일에 거주한 지 8년이 넘어감에도 아직 초중급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누구와 스몰토크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실정이다. 통탄스럽지만 이게 내 현실이다.

사실 이런 내 성향은 번역일과 아주 잘 맞아 떨어진다. 배움이 빨라 새로운 내용이라도 대략적인 맥락 파악이 뛰어나고 배우면서, 또 자료를 찾고 수집하면서 얼마든지 번역할 수 있다. 게다가 읽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번역가 중에서 작업 속도가 빠른 편이기도 하다. 물론 현재 육아와 병행 중이라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처리 물량이 많이 줄긴 했지만 한 가정의 운영이 가능한 정도이다. 번역에만 집중해도 할일이 천지인데 또 일 벌리는 걸 좋아한다. 아이디어가 마구 샘솟기 때문이다. 콘텐츠 제작에도 깊은 관심이 있고 계획은 해 뒀고 실천만 하면 된다. 어찌 보면 미래 수익 안정화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하는 것들이 많아서 나는 피상적으로는 누워 있는 것 같아도 쉽게 지친다. 사실 지금도 일을 어느 정도 끝내고 소파에 누운 채로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우리 가족의 보다 안정적인 일상을 위해 사실 올초부터 집구매 계획을 세웠다. 독일어 실력도 형편없는 나였지만 일단 부딪쳐 보기로 했고 봄부터 집을 보러 다녔다. 여름에는 조금 더 저렴한 작센주에 있는 집도 둘러봤다. 그러는 동안 여러 가지 기준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그러다 좋은 피난츠베라터(금융 자문가)를 만났고 또 다행히 챗지피티라는 강력한 툴을 만났다. 덕분에 집구매 실현이 더 앞당겨진 것 같다. 처음 보자마자 운명 같던 집이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로 와주기까지 거의 80% 진행된 상태이다. 80% 진행시키면서 일도 하고 아이들 돌보고 너무 바쁜 한 달을 보냈다. 수면 부족, 피로 누적, 호르몬 변화를 겪으며, 내 몸은 다시 한 번 번아웃을 겪었다.

자꾸 몸이 피곤하니까 운동을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지난주에는 10분씩 운동 루틴을 꾸준히 했는데 그게 더 날 갉아먹은 듯하다. 그 이후 일주일간 앓고 있다. 자율신경계가 무너져 체온 조절을 못했고 소화기관이 제 기능을 못했다. 거의 이틀 동안은 강제 금식을 했고 먹은 것이 없으니 에너지가 모자랐다. 한국에 있었으면 수액이라도 맞으러 갔을 텐데 하우스아츠트(가정의)까지 갈 힘도 없었다. 그저 집에서 버텼다. 4일차부터 조금 일어날 수가 있었지만 6일차인 지금도 온전히 다 낫진 않았다.

머릿속을 좀 비우고 쉬엄쉬엄 할 때인 것 같다. 이런 나를 인정하고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운동도 좀 회복되면 일주일에 한 번 루틴으로 시작하리. 먹는 음식도 소화 잘 되는 음식으로 소량 먹는 걸로 식습관도 개선해야 할 것 같다. 먹는 걸 좋아해 오히려 소화하는 데도 에너지 낭비가 심한 것 같다. 그에 따라 살도 많이 찐 것도 몸이 무겁게 한 이유 중 하나겠지.


그냥 쉴 땐 좀 쉬자. 눈을 감자. 계획하지 말자.아무 생각 말자.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