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병균바람이 불었을 때 해먹은 것들
나의 몸살을 시작으로 우리집에는 병균이 퍼지기 시작했다. 범수는 목요일부터 열이 나서 유치원 방학 시작도 전에 집에 있게 되었고, 그게 일요일에는 범진이에게 옮겨가 범진이는 강제로 방학을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은 수요일부터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나는 일주일이 지나니 속이 편해졌고, 남편이 몸살이 나던즈음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아이가 조금 일찍 찾아왔다. 그냥 집에 멀쩡한 사람이 없으니 방학 때 뮌헨으로 크리스마스마켓 구경이며, 자동차 박물관 구경이며, 세웠던 계획을 모두 포기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루틴도 다 무너졌다.
어떤 날들은 애들도 열이 나 힘이 없어 내내 누워 있었고, 어떤 날은 애들이 일어나서 좀 놀기 시작했지만 내가 놀아줄 수가 없었고, 어떤 날은 남편이 내내 누워 있어서 내가 괜찮아도 애들이랑 놀아 줄 수가 없었다. 왜냐면 끼니는 또 때워야 할 것 아닌가. 애들이 방학이니까 삼시세끼를 집에서 먹어야 한다. 독일은 배달음식이 있긴 하지만 맛도 없을 뿐더러 너무 비싸서 내가 살짝 움직이는 게 낫다. 그리고 배달음식으로 애들 먹일 거라고는 피자, 햄버거, 감자튀김, 치킨너겟이 다인데, 마트에서도 살 수 있는 것들이고, 맛도 크게 차이가 없는데, 배달시키면 너무 비싸니까 너무 낭비다.
아픈 내내 밥 차리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사실 아이들은 아파서 잘 먹지도 못했다. 스크램블 에그나 조금 먹고, 오뎅국 조금 먹고, 조금 낫더니 치킨너겟 달라고 해서 에프에 돌려 주고, 결국은 그게 다였는데, 그래도 음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있어야 한 입이라도 먹여나 볼 것 아닌가. 내가 아플 때는 속이 안 좋으니까 계란찜을 했고, 두부 넣은 뜨끈한 전골을 끓였고, 대부분은 간장계란밥으로 때운 것 같다. 계란만 구우면 되고 밥만 잘되면 애들도 밥을 조금씩 우겨 넣었다. 범진이는 몸이 안 좋으면 잘 씹지를 못해서 그런지, 아니면 씹고 싶지가 않아서 그런지 보통 쥬스나 요거트로 끼니를 때운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래도 좀 영양소가 골고루 있는 아기용 과일퓨레를 사뒀다. 일주일이 지나니까 좀 많이 나았는데도 간식으로 잘 먹고 있다.
한 번은 당근을 다 갈아서 당근 머핀을 구웠는데, 영양 때문에 아몬드가루랑 헤이즐넛 가루를 잔뜩 넣었더니 씹히는 게 약간 있어서 그런지, 원래 맛이 아니라서 그런지 애들이 잘 먹지를 않았다. 냉장고에 넣어서 차갑게 했더니 난 달달하고 맛있던데, 애들 입맛엔 안 맞나 보다. 아픈 와중에 고생해서 열심히 휘저어서 구웠더니, 쩝... 정성껏 무언가를 만들었는데, 아무도 먹어주질 않으면 그만큼 실망스러운 게 없다. 그래서 요리력이 없던 결혼 초에는 더 요리를 잘 안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범수 낳고도 범수가 요리라는 걸 잘 안 먹고 재료를 하나하나 다 분해해서 먹던 아이라 나중에는 재료 따로따로 볶거나 굽거나 해서 아주 간단하게 먹였던 것 같다. 범수가 샌드위치를 분해하지 않고 한 입에 모든 재료를 섞어 먹기 시작했을 때부터 요리를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정성껏 무언가를 만들었을 때 맛있게 먹어주면 또 그만한 행복이 없다. 참 어떤 일이든 양면성이 있다. 그래서 일단 실망을 하게 될지언정 해야 하는 것이다. 의외로 또 큰 행복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에.
또... 이번주에는 내가 생리를 시작하긴 했지만 몸은 완전히 괜찮아져서, 피자도우를 직접 만들어서 애들이 좋아하는 피자를 두 번 구워주었다. 또 하루는 냉장고에 있는 맛살을 처리하기 위해 김밥을 10줄 넘게 말아서 점심, 저녁 모두 때웠고, 또 어제는 범진이가 좀 먹을까 싶어서 찜닭을 끓였다. 다행히 닭고기를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이 맛있게 먹어 주었다. 범수는 당면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먹는 묘기를 보여 주기도 했다. 나도 몸이 온전치 않으니까 혼자 차리고 치우는 게 귀찮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식구들이 잘 먹어주니까 또 그 억울한 마음이 다 사라진다. 이게 또 엄마가 되어 가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하다. 엄마는 강하니까. 하지만 또 중요한 건 그런 마음이나 감정을 식구들한테 숨길 필요는 없다. 결국은 하겠지만 엄마도 힘들고 억울한 마음이 든다는 걸 표현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그럼에도 잘 먹어주니까 또 기분이 좋다는 표현도 함께 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