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겨울은 유독 춥다
크리스마스 그 다음주가 되자, 우리 가족에게 찾아왔던 병마가 서서히 물러났다. 그래서 그리운 친구집을 방문할 용기가 생겼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박 4일을 친구딥에 머물렀다. 밤에 수다를 떠느라 항상 늦게 자는 바람에 다녀와서 조금 탈이 났다. 우리가 돌아오는 금요부터 하얗게 눈이 내렸다. 같은 도시에 사는 잭키가 썰매를 같이 타자고 초대해 주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작년에 썰매 끌고 다니는 걸 내가 봤는지 애들 동네에서 썰매를 태워주고 싶어서 아마존을 뒤적였지만 범진이가 너무 어렸어서 내년을 기약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겨울 되자마자 다들 아파서 썰매 주문할 생각을 못했다.
마침 잭키가 초대를 해줘서 다른 친구집 방문의 여파가 남아 약간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그 다음날인 토요일에 아이들과 썰매를 타러 갔다. 가기 전에 OBI에 들러 썰매를 사러 갔는데 나무로 만들어진 루돌프가 끌 거 같은 썰매와 조개 같이 생긴 한 명만 탈 수 있는 동그란 썰매가 있었다. 내가 생각한 건 납작하고 긴 썰매였는데 아무리 봐도 그건 없어서 어떻게 타는지 감이 안 잡히는 나무썰매 말고 플라스틱 동그라미로 골랐다. 범진이는 가기 전부터 썰매가 무섭다고 말해서 일부러 하나만 샀다.
잭키 집에 2시쯤에 도착하니 모두 썰매 타러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범진이는 무서워서 안 간다고 해서 잭키와 집에 남기로 하고 나머지는 모두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공항 근처에 있는 Volkspark Marienberg라는 곳이었는데 긴 비탈이 많아서 정말 썰매장 같았다. 집집마다 썰매를 끌고 모두 같은 곳을 향해 가는 것이 처음 보는 나에게는 뭔가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범수는 생각보다 망설임없이 썰매에 올라 앉았고 또 망설임없이 내려갔다. 처음 타봤지만 너무 재미 있는지 올라올 때도 아주 씩씩하게 올라왔다. 동네 공원이지만 공원이 꽤 커서 여러 코스가 있었다. 우리가 멋대로 정한 초보자 코스에서는 무난하게 탔는데 레벨 2, 레벨 3 코스로 갔는데 하나는 비탈이 너무 길고 하나는 경사가 너무 가팔랐다. 범수는 비탈이 긴 코스에서 좀 즐겼는데 올라오다가 힘을 다 썼고 그래서 경사가 가파른 짧은 길로 갔는데 나무에 쳐박혀서 얼굴을 긁혀버렸다. 지칠대로 지치고 상처가 난 범수는 다시 초보자 코스로 가자고 징징댔다. 결국 초보자 코스에서 조금 더 타다가 우리 먼저 잭키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날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의 썰매 도전은 계속됐다. 범수에게는 다행히 눈이 녹지 않아서 그 뒤로 여러 날 동안 놀이터 언덕에서 썰매를 탔다. 처음엔 미숙했던 방향 조절 같은 것도 제법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집 근처 큰 놀이터에도 사람들이 썰매를 많이 끌고 왔다. 난 그제야 알았다. 이곳 유럽에는 큰 스키장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처럼 스키장을 가야만 스키나 보드를 타는 게 아니고 근처 산이나 언덕진 곳을 발견해 자기 장비를 들고 간다는 것을. 그 전에도 잭키나 다른 친구들에게 그러한 정보를 접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아서 어떤 식인지 체감이 되지 않았는데 장비 들고 지하철을 타는 할아버지나 집에서 만든 썰매를 끌고 나오는 가족들을 보니 체감이 되었다.
어제도 눈이 왔다. 집에서 쉬고 싶은데 오늘도 썰매를 끌고 놀이터라도 가야 하는 걸까? 올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니까 참으로 고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