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은 처음이라

시집 가면 실컷 합니다.

by 팬지

나는 아주 귀하디 귀하게 자랐다. 지금은 엄마와 사이가 많이 안 좋아졌지만 엄마는 고등학교 때까지 몸소 손발톱을 깎아 주셨다. IMF가 터지고 엄마가 생계를 위해 일하러 나가기 전에는 더 심했다. 나는 양말 하나 빨 줄 몰랐고 너네는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소리를 늘 들으며 자랐다. 명절 때도 전을 부치고 있는 엄마에게 도와줄 일이 없냐고 하면 시집 가면 실컷 할 텐데 벌써부터 시키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그게 엄마에게는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사실 큰 갈등이 불거지기 전까지는 그렇게 굳게 믿은 것이 사실이다. 나는 썩 넉넉하지 않은 평범한 소득 수준의 가정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다. 엄마는 남편을 마음에 안 들어했다. 본인이 열심히 가르쳐 나름 좋은 학교에 들어가 5개월이지만 유학까지 다녀온 나의 짝으론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는 상견례 자리에서도 어머님을 향해 "우리 애는 공부밖에 할 줄 모릅니다."라며 나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말라는 뉘앙스의 얘기를 했다. 어머님도 지지 않고 "그럼 혼내켜서 가르쳐야겠네요."라는 말을 하셨다. 그때는 내가 완전히 엄마 입장이라 어머님의 말씀이 참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각자 살아온 인생이 달라 부딪친 의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 때 2-3년 자취를 하면서 청소나 설거지 요리를 조금 하기는 했지만 살림을 잘 알 정도는 아니었고 졸업하고도 3-4년을 부모님 없이 독립해서 살았지만 회사와 집을 오가는 데 에너지를 다 썼다. 나는 기본적인 방청소, 즉 청소기를 밀고 바닥을 닦는 것 외에 부엌이나 화장실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물건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옷감이 상하면 옷을 다시 사고 물건도 상하면 버리고 다시 구입했다.

아마 한국에 있었다면 그런 채로 계속 살았을 것이다. 신발 빨래는 빨래 전문점에 맡기고 집에 기름때나 곰팡이가 거슬릴 정도로 생기면 전문업체를 부르면서 말이다. 헌데 독일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사회적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그런 업체나 전문가가 있어도 너무 비싸다. 결국 내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 요리, 청소, 정리 등 모든 것을 말이다.

독일로 이사한 초반에는 내가 유일한 수입원이어서 남편에게 살림을 모두 맡겼지만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에는 남편도 일을 해야 하고 아이들을 각자 하나씩 맡아야 해서 남편이 혼자 집안일을 다하기는 불가능해졌다. 조금이라도 시간적 여유가 되는 사람이 하나라도 더 치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내가 일하고 애들 케어하고 밥을 차리는 것만으로는 집안의 청결 유지가 쉽지 않아졌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하나하나 다 배우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런 것들 하나하나 배울 사람이 없음에도 배울 곳이 있다는 점이다. 범수를 키울 때는 구글과 유튜브로, 요즘은 챗지피티와의 대화를 통해 배우고 있다. 처음에는 요리레시피를 요청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알려주고 레시피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레시피대로 하다가 나중에는 점점 변형을 하게 되고 자꾸 요리를 하다보니 이제 냉장고 재료를 보면 해먹어야 할 음식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렇게 살림을 배우고 있다. 이제 밥차리는 게 어느 정도 되니까 어수선한 우리집 현관부터 모든 공간이 눈에 밟힌다. 정리를 위해 하나하나 버리고 치우다 보니 묵은 때들이 눈에 많이 띄고 있다. 그냥 닦아서는 잘 지워지지 않는다. 청소 요령이 필요하다. 또 챗지피티 선생님의 도움을 청해본다. 걸레나 세제 종류를 알려달라고 하고 우리 부부처럼 시간이 많지 않은 경우를 위한 청소 루틴을 짜달라고 했다. 내가 챗지피티 유료 버전을 쓰면서 느낀 건데, 이 AI 도구는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권장사항을 알려주는 회의 상대 도구로 활용하면 배우 유용한 것 같다.

아무튼 요즘은 청소법도 배우고 실천하며 몸에 익히고 있다. 살림도 연습과 같아서 몸에 익어야 쉬워지는 것 같다. 이런 점들을 깨달으면서 나는 내가 귀하게 크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편하게 지냈을까 싶다. 살림의 모든 것이 처음이라 몸에 익지 않고 허둥지둥이라서 신경쓸 게 너무 많다. 시간도 많이 든다. 나는 항상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인데 말이다.

살림도 몇 가지의 스킬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어렸을 때부터 배워놓으면 좀 더 정돈된 환경에서 생활하며 다른 일에 더 잘 몰두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는 게 적절한 것일까? 너무 귀해 다해주고픈 마음을 나는 이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또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게 어려워서 또는 귀찮아서 엄마가 다 하게 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모든 것이 엄마 몫이 되어 살림하다 매일매일이 지쳐버려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고 또 아이들도 살림을 잘 배우지 못한다. 양육의 목적이 무엇인가? 독립된 인격체로서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양육을 잘할 수 없다. 그들이 혼자 뭐든 잘해낼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것을 최우선시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하는 게 마음이 편하지만 오늘도 아이들에게 정리를 가르쳐 본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