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학교는 정말 무리일까?
범수는 매주 금요일 9시 45분에 학교에서 독일어 수업을 듣는다. 수업은 1시간 반 동안 진행된다. 처음 몇 번은 처음 겪는 일이라 흥미롭게 들은 듯하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계단에서 친구를 부딪치면서 내려간 사건이 있었고 친구가 다가가려고 하면 소리를 지른다고 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수업을 잘 따라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주는 참관수업이었다. 선생님한테 정확히 확인은 안 했지만 범수한테 물어보니 수업에 참여한 학생 10명과 선생님 1명 외에 참관하러 온 학교 관계자가 10명이었다고 한다. 그니까 한 교실에 21명이 있었던 셈이다. 수업 마치기 12분 전에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데리러 갈 준비를 하느라 그 전화를 못 받았고 확인한 시간이 2분 뒤긴 했지만 이미 가고 있었어서 다시 전화를 안 했다. 행정실에 도착했더니 범수가 어떤 선생님 무릎에 앉아 있었다.
결국엔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수업시간에 갑자기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불렀다는 것이다. 다른 애들 수업에 방해가 돼서 자기가 데리고 나왔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는 또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 물론 맞는 말이다. 다른 애들 수업에 방해가 되면 범수가 나오는 게 맞지. 그런데 마음 한켠으로는 기분이 나빴다. 아직 입학한 애도 아니고 자폐가 아니라도 나이 때문에 1년 늦게 갈 수 있을 정도로 아직은 어린데 90분 동안의 수업 끝무렵에 집중을 못하고 노래를 부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오늘은 게다가 참관 수업이라 다른 날이랑 달리 사람도 많아서 더 긴장했을 터였다. 선생님 입장도 물론 이해가 가지만 난 엄마라서 범수를 더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자기를 마스터라고 소개한 교장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고 나니 과연 범수가 일반학교에 다닐 수가 있을지 강력한 의문이 들었다. 억지로 꾸역꾸역 다닐 수는 있겠지만 오늘처럼 자꾸 아이를 데려가라고 계속 전화가 올 것 같다. 이게 맞는 것일까. 애가 이렇게 불안정한 상태로 학교에 억지로 있는 것이 맞는 걸까? 내가 5분 대기조도 아니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전화가 언제 올지 말지 불안해 하며 기다리는 게 맞는 걸까? 독일에서는 법적으로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독일어 시험을 보고 시험이 통과하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독일어 수업을 듣도록 되어 있고, 이건 의무라고 한다.
나는 의무이기도 하고 범수가 학교에서 어떻게 할지 궁금하기도 한 마음에 일단 보내 보자는 마음이 있었다. 가서 보지 않으면 잘 모를 테니까. 하지만 결과가 이렇게 됐다. 이렇게 되고 보니, 예전에 범수가 테라피를 받고 있다면 폴쿠어스까지는 받지 않아도 된다는 유겐드암트(관청 청소년과?)의 답변이 내 머리를 얼른 스쳐갔다. 나는 그래서 학교 이메일을 보냈다. 소아기 자폐증이라는 진단서를 첨부했고 현재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으니, 폴쿠어스 수강에 대한 의무에서 배제해 주셨으면 좋겠다면서 그게 가능한지 확인 부탁한다고 썼다. 일단 이메일을 보내고 나서, 놀이 치료(하일패다고긱) 선생님께 이 사실을 공유했더니, 테라피 수강 중임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써 주겠다고 하셨다. 많은 아이들이 폴쿠어스에 적합하지 않아 이런 제도가 있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이상하게 놀이 치료 선생님과 대화하면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편안해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참 그런 사람이 있다. 범수는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매의 눈을 가졌다. 아니, 사람에 대한 예민한 마음일까? 놀이 치료 선생님은 처음 보고 인사를 나눌 때부터 범수가 무척 좋아했다. 테라피 수업을 아주 많이 일주일 내내 기다리기도 한다.
범수는 그런 아이이다. 어른들과 1:1로 하는 수업을 아주 좋아하고, 자신을 이해해 주고, 바라봐 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활짝 여는 아이이고, 그래서 더러는 귀찮게 하기도 하지만, 그때문에 유치원 선생님들도 범수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자폐지만 소프트 오티즘이라고, 그런 말씀들을 하신다. 다만, 자신이 예측할 수 없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매우 어려워한다. 매일매일 집에서 보는 동생에게도 자신의 영역이 침범 당할까 봐 늘 불안해한다. 그런 부분을 아직 배우기 전인 아이들은 늘 누군가의 영역을 침범하고 파괴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어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사회적 관계에 어려움을 갖고 있는 범수지만 '자폐면 천재적인 부분이 있지 않나' 하는 우리 사회 속 잘못된 통념에 부합하는 범수의 최고의 강점은 바로 '숫자'다. 범수는 숫자를 참 좋아한다. 아주아주 어렸을 때부터 숫자를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가 넘버블록스라는 만화를 보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범수에게는 신세계가 열렸다. 백 단위, 천 단위, 만 단위, 십만 단위를 넘어 억, 조, 경, 심지어 내가 모르는 그 너머의 큰 숫자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한다. 게다가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의 개념을 이해하며, 소수점 단위까지 알고 있다. 덧셈은 두 자리 + 한 자릿수는 무난하게 더할 수 있고, 두 자릿수 + 두 자릿수는 내가 아직 확실하게 확인하지 못했다. 외워서 말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문제를 들이밀어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곱셈은 구구단을 13단까지 외우고 있다. 폴스터 선생님은 초등학교 2, 3학년도 어려워하는 수준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나는 문득 '범수한테 좋은 환경이 뭘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예전에는 아이가 사회성이 너무 없다 보니, '일반학교에 가서 일반 아이들과 부딪치고 어울리다 보면 그래도 조금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의 스트레스는 범수가 견딜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교 수업을 그렇게 어려워하고 다른 아이들이 다가오는 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소리를 지르고 시름을 잊기 위해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고래고래 지르는 범수를 보며, '범수는 배우는 것도 좋아하고, 어른 한 명이랑 관계를 쌓는 걸 즐기는 아이인데, 그냥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 입학하기까지 1년 반이 남았다. 1년간 범수의 사회성 발달을 지켜보고 학교에 방문 상담을 하면서 범수가 성장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것 같다.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