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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을 알 수 없는 훈육의 과정

엄마는 아이를 포기할 수 없다

by 팬지

첫째 녀석이 말을 안 듣는다. 첫째 녀석은 말이 늦다. 입을 많이 떼고 있는 지금도 또래에 비하면 많이 늦다.

한국어도, 독일어도 늦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분명히 있다.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도 또래에 비해 많이 어려워한다. 그래서 나는 기다려 주었다. 그게 엄마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재촉하지 않고 자기만의 발달 이정표를 차례차례 밟도록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고 기다려 주는 것이 엄마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치원 선생님들과 프루포더룽(치료센터) 상담 선생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얘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더욱더 엄격하게 할 때라고. 소리 지르며 화를 내는 아빠의 방법이 옳다고. 그렇다고 때릴 필요는 없지만 너의 행동에 화가 났음을 충분히 보여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나는 또 고민에 빠졌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남에게 맞춰 주는, 쉽게 말해 '예스맨'인 내가 아이들한테도 거절을 잘 못해서 이렇게 된 것인가 하는 자책이 들었다. 이제 그 버릇을 내가 먼저 고쳐야겠다. 이런 굳은 결심을 하고 오늘 첫 주말을 맞이했다.

평소 같으면 주말에 밖에 나간다. 애가 집에서 에너지를 충분히 발산하지 않으면 더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그런데 오늘은 아빠가 아침에 잠을 충분히 잤음에도 감기 때문에 몸살기가 있어 잘 일어나지를 못했다. 혼자라도 첫째 아이를 데리고 나서야 했는데, 물론 나도 감기였고, 애들도 감기였고 그냥 엉망이었다. 그냥 집에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지만 말이다.

첫째 아이는 아침부터 아빠한테 혼이 나고 있었다. 내가 둘째를 재우는 동안에도 혼이 났고 일어나서 간식을 먹는 동안에도 틈틈이 혼이 났다. 나는 아빠가 애한테 화를 내는 게 견디기가 어렵다. 이제는 그러려니 할 때도 되었는데, 하루종일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도 화가 폭발해버렸다. 일단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가 기분이 무척이나 다운된다. 나는 주변 사람도 그렇고 항상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다. 슬퍼서 우는 건 몰라도 화를 내고 역정을 내는 건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 이건 내 문제다. 알고 있다. 하지만 나도 그런 일에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결국 폭발해서 제발 그만하라고 오늘은 그만 혼내라고 소리를 질렀다. 집에만 있어 답답했을 아이를 혼자라도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려던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빠는 내 눈치를 보며 화내는 걸 멈췄다.

그러다 아빠는 한 번 더 가르치고 싶은 마음에 아이를 멈춰 세워 놀이터에 가서 양말이랑 신발 벗고 놀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있었는데, 아이가 아빠 말을 듣지를 않았다. 여느 때처럼 딴청이었다. 아빠는 내 눈치를 봤는지, 가르치는 걸 멈추려고 했다. 나는 안 했으면 안 했지 하다가 멈추면 안 된다고 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내 앞에 똑바로 서서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엄마 눈을 보면서 엄마 얘기를 들으라고 가르쳤다. 당연히 한 번에 되질 않았다. 아이는 침대에 벌러덩 눕고 나중에는 베개를 던지고 난리 부르스를 쳤다. 나는 점점 화가 났다. 결국 오늘은 그만 혼내라던 내가 더 소리를 지르게 됐다. 하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그러면 그럴수록 더 웃으면서 장난을 쳤다. 진지한 상황과 장난칠 상황을 구분하지 못한다. 나는 절대 웃지 않았다. 이건 정말 심각한 일이었다. 아이가 아무리 웃으며 귀여운 얼굴을 내 앞에 들이밀어도 난 웃음이 나지 않았다. 아이는 당황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적당히 넘어가던 엄마였다.

하지만 그도 그리 쉽게 지지 않았다. 억울한 울음 끝에 가만히 서서 눈을 맞추고 내 한두 마디를 경청하는 데까지 1시간 반이 걸렸다. 나는 아이를 때리지 않았다.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지만 힘으로 몇 번 제압했지만 그게 위협으로 느껴졌을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포기할 수 없었다. 엄마가 아이를 포기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안 되면 밥도 안 먹이고 잠도 안 재울 생각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1시간 반만에 한두 마디지만 가만히 서서 듣는 데 성공했다. 이런 과정이 앞으로 얼마나 더 필요할지는 모르겠다.

이제 만 4살이다. 앞으로 사람들과 많이 교류를 해야 할 텐데, 사람의 말을 끊지 않고 듣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이다. 다른 건 몰라도 좋은 태도와 자세, 기본적인 예의는 계속해서 훈련을 시켜야 그의 인생에 좋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고 그 안에서 행복감도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더 늦기 전에 하루라도 더 어릴 때 그런 훈련들을 시작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훈육다운 훈육을 하고서 나는 온몸의 힘이 다 빠졌다. 좋은 사람, 좋은 엄마, 좋은 아내로 산다는 건 끝없는 수련의 길을 걷는 것과 다르지 않은 듯 싶다. 하지만 그 고난과 역경을 견디는 지난한 과정 중에 이들과 한 울타리에 살붙이고 산다는 행복이 있다는 것도 이제 잘 알고 있다. 이 둘 중에 하나를 뺀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을 일인 것이다.


오늘도 나의 행복을 위해 어려움을 견디고 한 걸음 더 나아간 나 자신을 칭찬하며,

TV 보며 야식이나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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