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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by 이세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는 어떻게 모험과 자기 발견을 그려내는가?”


왜 우리는 일상의 경계를 벗어나고 싶은 갈망을 품게 될까?


많은 이들이 반복되는 루틴 속에 살면서도, 은밀하게 상상 속 모험을 꿈꾸곤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 공상들은 단순한 회피 기제일까, 아니면 진짜 변화를 향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까? 벤 스틸러(Ben Stiller)의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는 제임스 서버(James Thurber)의 단편소설을 토대로, 평범한 인물이 어떻게 내면의 소심함을 극복하고 ‘진짜’ 모험을 향해 나아가는지 보여준다. 초반, 잡지사 ‘라이프(Life)’의 필름자료 담당자로 일하는 월터(벤 스틸러 분)는 조용하고 소극적이지만, 머릿속은 온갖 환상으로 가득하다. 그러다 잃어버린 중요한 사진 필름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월터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던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상상 이상의 여정을 시작한다.


도대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어떤 방식으로 ‘목적’과 ‘흥분’, 그리고 ‘자기재발견’을 갈망하는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또 회피 성향과 자기 확장 이론을 어떻게 그려내는 걸까? 우리 심리에선 가끔, 환상이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내면의 본능적 용기와 가능성을 일깨우는 불씨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영화는 이를 코믹함과 따뜻함을 버무려서 보여준다. 결국 지루한 평범함 뒤에 숨어 있던 열정을 깨워, 머릿속 ‘공상’이 진짜 삶으로 펼쳐지는 마법 같은 변화를 말이다.


평범한 남자, 그러나 휘몰아치는 내면 세계


영화 초반의 월터 미티는, Life 매거진에서 필름을 정리하는 꼼꼼하고 수줍은 인물로 그려진다(스틸러, 2013). 표면적으로는 조용하고 남에게 묻히기 쉬운 캐릭터지만, 사실 머릿속에서는 상상력이 폭주한다. 대체로 직장이나 일상에서 충돌 상황이 생길 때마다, 월터는 ‘용감무쌍한 히어로’나 ‘멋진 로맨티스트’가 되는 환상에 빠져든다. 주변 사람들 눈에는 그저 “멍 때린다” 정도로 보이지만, 관객은 그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기상천외한 모험을 목격하며, 그 내면의 드라마에 웃음을 터뜨린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회피적 성향을 지닌 이들이 비교적 ‘위험 없는’ 상상 속에서 자기 욕구를 충족하는 패턴(Roth & Cohen, 1986)이라 할 수 있다. 실제 갈등이나 모험에 뛰어들 자신은 없지만, 상상을 통해 잠깐씩 대리 만족을 느끼는 식이다(Cramer, 2000).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이 과정을 코믹한 방식으로 비추면서, 상상이 어떤 역할—심리적 보호와 자극—을 하는지를 살짝 암시한다.


회피성 성격: 꿈꾸면서도 현실은 피하는 심리


회피 성향의 핵심

회피적 성격을 지닌 사람들은 흔히 “인정받고 싶고 더 많은 걸 누리고 싶지만, 비난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작 행동은 못 하는” 특성을 보인다(Alden & Bieling, 1998). 월터는 직장 동료에게나, 좋아하는 여성 셰릴(크리스틴 위그 분)에게마저 제대로 말을 붙이지 못한다. 겉보기엔 소심하고 묻어가는 태도로 일관하지만, 내면으론 “더 대담하고 싶다”는 욕망이 불타오른다. 그러나 “그러다 헛수고하고 웃음거리가 되면 어쩌나?”라는 불안 탓에 늘 꺾이고 만다.


상상이 의미하는 심리적 방어

클링어(Klinger, 1977)는 환상이나 공상이 일종의 자가 조절 전략일 수 있다고 했다. 월터의 무슨무슨 슈퍼히어로·용감한 전사·멋진 연인 등 공상은, 현실의 소심함에서 벗어나고픈 욕구를 잠깐씩 풀어내는 통로인 셈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식으로 머릿속에서만 해결해버리면, 실제 대처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 더 줄어든다(Roth & Cohen, 1986). 영화가 코믹하게 보여주는 건, 그 환상이 한편으론 그를 보호하고, 다른 한편으론 현실 속 행동력을 점점 더 약화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 계기로의 밀어붙임

그러던 중, 중요한 필름이 사라지고, 월터의 직장(과 인생)이 위기에 놓이면서, 더는 상상에만 빠져 있을 수 없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그를 안전지대 밖으로 몰아내는 사건이 벌어지고, 갑자기 파격적인 모험(그린란드행 비행, 아이슬란드 스케이트보드 질주, 히말라야 추격)이 현실이 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이같은 “내부 공상에서 외부 실행”으로 이어지는 짜릿한 과정을, 짭짤한 유머와 포근한 감동으로 그려낸다.


자기 확장 이론: 멈춰진 자아에서 확장된 자아로


자아 확장을 향한 갈망

자아 확장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역량과 정체성을 확장하고자 하는 내적 동기가 있다고 한다(Aron & Aron, 1996). 월터는 오랜 세월 제한적 삶—오피스와 필름 보관소 사이만 오갔던—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그 마음 깊숙이 “더 많은 세계, 더 다양한 경험”을 갈망해온 터였다. 이 갈망이 환상에서 불꽃처럼 번지고, 실제 계기가 터지자 서서히 현실 모험으로 전환된다.


여정이 불러오는 자아 성장

영화 속에서 월터가 그린란드에서 헬기에 뛰어오르고, 화산 폭발이 일어난 아이슬란드 길을 스케이트보드로 달리며, 히말라야 산골에서 기자(숀 펜)를 찾아 헤매는 모습은, 한층씩 쌓여가는 자아 변화를 보여준다(스틸러, 2013). 이전의 그라면 꿈도 못 꿀 상황에 부딪히면서, 현실을 뚫고 나가는 기쁨이 쌓이게 되는 것. 심리적으로도, 새로운 도전과 성공 경험은 자기효능감을 높이고,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점차 강력히 만든다(Ryan & Deci, 2000). 영화의 코미디 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모험이 ‘진짜’가 돼버린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지만, 실은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곧 그의 진정한 각성을 이끈다.


일상의 틀 넘어선 활력

자기결정 이론에 비춰볼 때, 인간은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도전과 이를 달성하며 느끼는 성취감을 통해 활력을 얻는다(Ryan & Deci, 2000). 월터가 익숙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대자연·타국·위험에 몸을 던지자, 공상적 비전이 실제 용기로 이어져 그를 살아 있게 한다. 결국 상상은 상상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현실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음을 이 작품은 보여주는데, 이것이야말로 영화의 최대 매력 포인트다.


로맨스와 직업적 성공: 사회적 유대가 주는 용기


셰릴과의 관계 추진 요인

월터가 셰릴(크리스틴 위그 분)에게 품은 호감은, 그를 움직이는 큰 동력이다. 처음엔 망상 속에서나 멋있게 구원하는 상상을 하고, 현실에서는 전화조차 망설인다. 그러나 본격적 모험이 시작되며, 그가 몸소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자신감을 맛보게 되자, 셰릴과의 진짜 대화도 조금씩 이어진다(Aron 외, 1998). 영화적 유머는 “망상 속 허세”에서 “실제감 있는 대화”로 변화하는 과정에 서 있다—결국 대인관계가 사람의 내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코믹하게 시각화한 셈이다.


회피성 향상을 돕는 사회적 지지

영화에서는 월터의 내적 전환이 주로 혼자 힘으로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동료나 가족의 응원, 셰릴의 이해, 심지어는 한두 마디의 따뜻한 관심이 그를 두려움에서 해방시키는 ‘빙산의 조각’ 같은 역할을 한다(Helgeson, 2003). 회피 성향이 심한 인물이라도, 소소한 지지와 소속감은 사회적 위험을 감수하는 데 큰 버팀목이 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역시 희극적 포장에서 그 지점들을 포착한다—조그만 믿음이나 격려도, 사람을 모험으로 뛰어들게 만들 수 있다.


인정을 얻고자 하는 열망

월터가 속한 ‘라이프(Life) 잡지’는 종이 잡지 시대의 종언을 맞으며 대대적 구조조정을 앞둔다. 어떤 면에서, 그는 잡지의 역사와 정신을 지키려는 충성심과 함께, 자기 자신도 ‘평범한 콤마’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 한다(스틸러, 2013). 이런 맥락에서, 상관이나 동료들에게 ‘저평가받는 역할’로 남길 거부하며, 사진가 숀 오코넬의 필름을 찾아 떠나는 과정은 단지 회사 일만이 아니라 개인의 자존심 회복이기도 하다. 즉, 업무의 범주를 넘어선 큰 동기가 무의식적으로 그를 밀어붙인 것이다.


환상에서 현실로: 상상적 용기가 실제 행동이 되다


초반 환상의 기능

영화 초반, 월터의 환상은 내면 갈등을 해결하는 일종의 회피 기제나 자아보호 전략 역할을 한다(Cramer, 2000). 사장에게 면박받으면, 상상 속에서 그를 처단하거나, 셰릴 앞에서 자신을 멋지게 꾸미는 식. 관객은 웃지만, 사실 이는 현실 부정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이 공상이 품은 “하고 싶지만 못하는 욕망”이 그를 애초에 모험으로 뛰어들 계기로 서서히 준비시킨다고 볼 수 있다.


상상과 실제, 경계 허물기

일단 한걸음 나서 그린란드로 떠나고부터, 월터의 ‘대담무쌍한 몽상’은 실제로 펼쳐진다. 상어와 맞닥뜨리고, 화산 지대를 스케이트보드로 질주하는 등, 과거엔 상상 속 히어로처럼 움직이게 된다. 이 시점에서 환상 장면은 점차 줄어들고, 현실이 곧 모험이 된다(Klinger, 1977). 이는 “환상을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실제 삶이 충만해졌다”는 메시지. 바꿔 말하면, 내면 욕구를 현실로 실현하기 시작하면, 상상을 대체할 실제 용기가 생긴다는 뜻이다.


두려움의 상징적 극복

스케이트보드, 헬기 점프, 자연 재해 등은, ‘겁쟁이 월터’가 진입하기엔 무모해 보이는 장면이지만, 그걸 하나씩 헤쳐나감으로써 과거의 “나는 못해”를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정체성 재부팅을 이뤄낸다. 이를 코믹하게 그리지만, 사실은 깊은 심리학적 의미를 띤다—우리는 종종 자기혐오나 두려움으로 스스로를 제한하고, 어떤 계기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깨달음을 얻으면, 그 뒤론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삶의 태도를 갖게 된다.


함께하는 순간들의 힘: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 찾기


‘LIVE’ 잡지의 정신

영화의 큰 플롯은, 전설적 사진작가 숀 오코넬(숀 펜)이 보낸 마지막 필름이 사라졌고, 그것이 Life 잡지의 마지막 호 표지를 장식해야 한다는 긴박감이다. 숀은 방랑벽이 심해 자연과 세계를 직접 파고드는 인물이고, 그의 작품을 맡아 정성껏 보관하던 월터는, 사실상 그 뒷면의 진정한 멋을 지켜주던 숨은 파트너. “매거진의 정신”과 “월터의 무심한 헌신”이 만나는 지점에서, 영화의 감동이 생긴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표지에 담긴 건, 놀랍게도 ‘평범해 보이는 월터’ 자신의 모습이었음을 암시한다(클라크 & Tufte, 2015). 이는 “가장 일상적인 사람이야말로 무대 뒤의 진짜 영웅”이라는 반전 메시지다.


“사진 찍지 않고도 그냥 바라보는 순간”

숀이 귀한 설표범을 마주친 장면에서, “어쩔 땐 사진 찍지 않고, 그냥 본다”며 셔터를 누르지 않는 대사가 인상 깊다. 이는 온갖 걸 기록·표현하려는 현대인에게, “순간을 그대로 온전히 느끼는 것”의 가치를 역설한다. 월터가 그 말을 듣고 감동하는 건, 그 역시 늘 눈에 안 띄는 사람으로 살았지만, 사실은 많은 순간을 소중히 간직해온 조용한 시선을 가졌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기 때문이다(Brown, 2009). 그런 깨달음이 “모두 눈에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라는 식으로 이어진다.


‘진짜 일상’의 소중함

마지막에, 월터는 자신이 찾은 필름의 컷이 사실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스틸러, 2013). 그 누추한 차림의 일터 풍경이야말로, 숀이야말로 월터에게 존경을 보낸다는 상징. 이것이 영화가 말하는 요점: 소소하고 평범한 삶조차도, 제대로 들여다보면 거대한 서사가 된다(Clark & Tufte, 2015). 코미디로 포장된 모험 끝에, 우리는 “아주 평범한 하루가, 때론 멋진 사진 한 장보다 더 귀하고 놀라울 수 있다”는 통찰을 품게 된다.


문화적 함의: 상상, 탈출, 그리고 미디어의 영향


‘도망치듯 떠나기’가 해답인가?

“직장 관두고 세계여행!”을 꿈꾸는 사람은 많다. 영화 속 월터 역시 갑작스러운 계기로 해외 모험을 떠나 성장한다(스틸러, 2013). 이 흐름은 문화적 판타지—“자신을 얽매는 곳을 박차고, 낯선 땅에서 내 진짜 모습을 찾겠다”—와 닮았다. 그러나 본질은, 환경 바뀌는 것 자체보다, 스스로의 태도가 바뀌는 데 있다. 즉, ‘이국의 절경’은 촉매이긴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월터가 자기 내면의 용기를 끌어냈다는 점. 영화는 이에 대해 “새 풍경이 아니라, 새 시각이 우리를 변화시킨다”고 말하는 듯하다.


무의미한 일상은 없다—“뒷방 직원”도 영웅이 될 수 있다

월터는 인쇄매체의 막바지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매거진이 디지털화하며 위치가 흔들리는 존재다. 하지만 그의 인생 스토리는 그 누구보다도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이런 전개를 통해, 주변에서 “그냥 그런 사람”이라 여긴 이도, “내면에선 엄청난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Cain, 2013). 코미디로 포장했어도, 사회에서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숨은 가치’를 재발견하게 만드는 저력이다.


일상에서 영웅 찾기라는 희망

영화가 끝날 무렵, 월터는 더이상 환상에 의존하지 않는다—왜냐하면 실제 삶이 훨씬 더 흥미롭고 강렬해졌기 때문. 이 결말은 관객에게 “우리도 만약 용기를 낸다면, 이 꽤 평범한 환경 속에서도 영웅적 순간을 만들 수 있다”는 신호를 준다. 이런 메시지는 현대인에게 특히 유의미—“공상과 현실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정말로 한발 나아가는 자가 새로운 서사를 쓸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상상적 히어로에서 실제 용기로 나아가는 길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는, 코믹한 판타지를 통해 누구나 망상 속에서는 영웅일 수 있지만, 그 영웅성이 실제 삶으로 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처음에 월터는 조용히 숨은 채 상상으로만 해결책을 찾았지만, 촉발된 사건과 주변 인물들의 작지만 중요한 지지 덕분에, 그 상상 속 용기가 현실 행동으로 이어진다.


심리적으로 보면, 이러한 전환은 회피 성향을 지닌 인물이 역동적인 자아 확장을 달성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포기할 수 없는 목표(잡지사의 마지막 사진), 사랑(셰릴), 그리고 위험한 외국 탐험이 어우러져, 월터의 내면 서사를 폭발적으로 바꿔놓는다. 환상이 사라진 자리에, 더 멋진 현실이 펼쳐지고, 이젠 더이상 도망치듯 상상에만 파묻힐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수줍고 날개 없는 한 사람이 상상과 꿈을 발판 삼아 세상에 날아오르는 성장담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준 메시지는 꽤나 명료하다—“환상 속에서만 용감할 필요는 없다. 그 용기를 현실로 가져오면, 어떤 모험이든 시작할 수 있다.” 일상에 매몰돼 “어쩔 수 없다”고 마음속에서만 소리치는 사람에게, 이 작품은 조용히 속삭인다: “네가 그토록 환상 속에서 그리던 모험, 사실 이제 시작해도 늦지 않아. 언제든 진짜로 뛰어들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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