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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소이 Apr 25. 2023

꽃이 진다고 연락을 준 당신에게,

당신의 연락을 받자마자 내 마음속 모든 꽃들이 고개를 떨궜다.

 

 한 달하고도 보름 전, 나는 당신에게 꽃이 핀다고 연락을 하고 싶었다. 봄이 오고 있다고.     


 꽃샘추위에 몸을 잔뜩 웅크리며 정처 없이 걸었다. 발걸음이 멈춰 선 곳, 점묘법으로 점을 찍듯 하얀 꽃잎이 나뭇가지 위로 이리저리 피어나고 있었다.          


 어린아이 마냥 신이 났다. 꽃이 벌써 피어오르다니.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꽃이 피는 모습, 내가 올봄 처음으로 목격한 이 광경을 당신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와, 벌써 꽃이 피고 있어요.'          


 당신에게 보낼 문자를 적었다가 고민 끝에 여러 번 문장을 지우고 다시 썼다. 들뜬 감정은 배제하고.

          

'날은 아직 추운데, 꽃은 피네요. 꽃들도 봄이 온다는 걸 아는 거죠.'          


 손이 시리도록 고민하며 쓴 문자는 전송하지 못했다. 섣불리 꽃이 피었다고 연락하지 말아야지.


 꽃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모든 걸 잊고 새로이 출발하고 싶은 마음, 내팽개친 인생을 다시 보듬고 싶은 마음,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싶은 설레는 마음. 주고받은 언어와 몸짓에 의미 부여하여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싶은 마음. 나 역시 다른 이로부터 아주 예쁘게 핀 꽃 사진을 받았으니.

 

 당신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며 여러 꽃들을 눈에 담았다. 벚꽃, 진달래, 개나리, 철쭉, 황매화. 각양각색의 색을 뽐내며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본연의 색을 피우기 위해 억겁의 시간들을 부지런히 견뎌내 왔을 터이다.


 부치치 못한 문장을 마음에 묻어둔 지 한 달 보름이 흘렀고, 당신에게 뜻밖의 연락이 왔다.


'꽃이 지고 있어요.'

   

 꽃이 진다고 연락을 주다니, 곧 떨어지고 이리저리 밟혀 사라질 걸 알아서 그런지 참으로 예쁘다고. 당신은 내게 떨어진 꽃잎 사진을 보내왔다.


 당신의 연락을 받자마자 내 마음속에서 피어났던 모든 꽃들이 툭하고 고개를 떨궜다. 철렁거리는 마음, 만개한 꽃들이 낙화하는 기분이었다. 눈이 부시게 어둠이 찾아왔다.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꽃이 피기 위해서는 온 우주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저온과 고온 그 사이의 특정한 온도, 건조와 습윤 그 사이의 적당한 습도, 낮과 밤 그 중간 얼마만큼의 일장이 필요하다고.


 물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꽃의 의지다. 스스로 적당한 생장물질을 뿜어내어 분화하여 발달하고 성숙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


 나는 꽃의 개화 과정(생장-분화-발달-성숙)에는 반드시 꽃이 떨어지는 과정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성숙의 의미는 적당한 때를 알고 물러나는 것이므로.


 성숙은 사전적 의미로 모든 발육이 완전히 이루어진 상태를 말한다. 성숙한 꽃은 더 이상 꽃이 필 수 없는 환경 조건이 찾아올 때, 생육을 일시적으로 정지하고 꽃잎을 떨어트린다. 더욱 찬란하게 피어날 다음의 봄을 기약하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이 낙화에서 말한 것처럼, 당신이 목격한 건 아름다운 뒷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우린 그렇게 꽃이 지는 것을 보며 성숙하고 있다고.

 내가 당신에게 꽃이 핀다고 선뜻 연락하지 않았던 이유도, 내게 활짝 핀 꽃 사진을 보내준 다른 이보다 당신에게 유독 끌리는 이유도, 모두 다 알려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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