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파는 사람이 양말에 빵꾸가 나 있어도 되나
사람들이 경쟁하듯 서로의 어깨를 부대꼈다. 잔뜩 비장하고 또 긴장한 표정으로 재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여기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서울까지 한 시간 반을 줄곧 서서 가야 했다. 무언의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목적지까지 앉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다.
눈치 싸움에서 운 좋게 자리를 확보한 나는 반대편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울에서 줄곧 지내다 한 달에 한두 번 부모님을 뵈러 갈 때면, 언제 어디서든 녹색 풍경을 마주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푸른 산과 강을 눈에 담았다.
끼이익. 끼이익. 평온함을 깨는 낯선 소리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노인이 녹슨 리어카를 끌며 열차를 비집고 들어섰다. 리어카 안에는 양말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노인이 호객행위를 시작했다.
“양말 사이소. 양말 사이소. 다섯 켤레에 만 원. 대기업에 납품하는 질 좋은 양말 사이소.”
우렁찬 목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승객들은 불청객을 본 것 마냥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가방에서 이어폰을 주섬주섬 꺼내어 귀를 막았다. 세상과의 단절을 택한 것이다.
노인은 자신의 외침이 묵살되자 슬그머니 리어카를 열차 중앙에 내려놓았다. 양손 가득 양말을 들고 앉아있는 승객들에게 다가갔다. 사람들 무릎 위로 양말이 놓였다. “양말. 한 켤레에 이천 원.”
노인은 굳은살 가득한 손으로 내 무릎에도 새하얀 양말 뭉치를 내려놓았다. 천편일률적이다. 다른 노인의 무릎에도, 건너편 아주머니의 무릎에도, 내 무릎에도 모두 똑같은 사이즈, 똑같은 색상의 양말이 놓였다. 옆자리 사람이 노인에게 양말을 돌려주며 말했다. “현금이 없어요. 죄송합니다.”
노인은 양말을 놓았던 순서 그대로 다시 걷어갔다. 별 소득이 없어 보였으나, 한 아주머니가 가방을 한참 뒤적거려 만 원을 꺼내 들었다. “다섯 켤레 주세요.” 망설이던 몸짓으로 어레짐작해보니 양말이 마음에 썩 들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양말을 구매했다.
적당한 돈을 지급하고 자신보다 처지가 좋지 않은 사람을 도왔다는 자기만족에서였는지, 아니면 평화 앞에 인색해지지 말자는 자신의 신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노인은 안 그래도 굽은 허리를 바짝 굽혀가며 구십 도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덜컹덜컹. 열차가 정차할 때마다 리어카가 아슬하게 흔들렸다. 리어카가 혹여나 넘어질까 걱정되어 노인에게 눈을 뗄 수 없었다. 호기심과 연민은 분명 아니었다.
그동안 리어카를 이리저리 얼마나 끌고 다녔는지 노인의 샌들은 밑창이 잔뜩 닳아 있었다. 신발이라는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도 의심되었다. 보통의 걱정이었다.
방송 소리가 흘러나왔다. “열차 내 호객 행위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호객 행위를 하고 계신 분은 다음 역에 정차 시 하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누군가 노인을 신고한 모양이었다. 노인은 무적처럼 방송 소리를 무시하고 리어카를 끌어 옆 칸으로 이동했다. 양말을 살까 말까 전전긍긍 고민하던 나는 결국 노인의양말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나 역시 양말을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호객 행위를 금지하는 방송이 재차 반복되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노인을 뒤따랐다.
“양말 사이소. 양말 사이소.” 노인의 외침에 다른 칸 사람들이 노인을 쳐다봤다. 한 아저씨가 노인을 불렀다. “거. 양말 줘 보이소. 가까이서 보게.” 노인은 양말을 한 움큼 들어 아저씨한테 다가갔다.
아저씨는 양말을 들고 이곳저곳 훑어봤다. 양말이 잘 늘어나나 늘려보기도 하면서 꽤 오래 붙잡고 있었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보통의 흰 양말을 그렇게 열심히 뜯어보는 사람은 처음 봤다. 구매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의도가 분명했다. 그는 못마땅한 눈초리로 노인을 향해 말했다.
“아니 어르신, 양말 파는 사람이 양말에 빵꾸가 나서야 양말을 팔 수 있겠어요?”
노인이 고개를 푹 숙였다. 나도 덩달아 시선을 아래로 돌려 노인의 발을 쳐다봤다. 닳아버린 신발 밑창만 보느라 몰랐었는데, 해진 양말 사이로 노인의 발가락이 다 보였다.
노인이 리어카를 집어 들었다. 호객 행위 금지라는 방송에도 끄떡없던 노인이 움직였다. 그러나 노인이 내리려는 걸까 싶었던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노인은 내리지 않고 다른 칸으로 넘어갔다. 나는 늦기 전에 노인을 뒤따랐다. 오천 원을 건네고 양말 두 켤레를 달라고 했다. 잔돈은 괜찮다고 했다. 노인은 세 켤레를 주며 서비스라고 말했다.
노인은 자신의 양말은 구멍 날 정도로 신고 다니면서 일하지만, 손님에게는 양말 한 켤레를 서비스로 주는 사람이었다. 보통의 미덕이 있는.
아마도 양말을 구입했던 아주머니와 나 역시 보통의 미덕과 보통의 도덕성의 이유에서 양말을 사게 된 것 같다. 그뿐이었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지시할 수 없고, 판단할 수도 없다. 사람들 모두 그냥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갈 뿐이다. 내가 오천 원에 양말 두 켤레를 달라고 말하듯, 또 노인이 양말 세 켤레를 건네주듯 말이다.
* 이 글은 열차 내 호객 행위를 옹호하는 글이 절대 아니다. 그냥 어느 주말 열차에서 내가 겪은 보통의 일상에 대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