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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소이 Sep 28. 2023

전화하는 사이

이건 보고 싶다는 말도, 좋아한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아니니까.


“전화해”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는 말이다. 특히 업무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내뱉는 말이기도 하다. 이메일보다 전화를 하며 실시간으로 내용을 파악하는 게 더 편할 때도 있으니까.


가끔은 영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돈 필요한 사람은 전화하라는 대출 문자, 물건 구입을 원하는 사람은 전화하라는 홈쇼핑 방송까지. 여전히 우리 일상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설문 조사며 보험회사 광고며, 개인정보 유출이 만연한 세상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곤 하니까.


그런 세상 속에서 자꾸만 전화의 의미를 잊어버린다. 전화는 가벼운 행위가 아닌데, 가볍게 치부된다.


전화에는 여러 제약이 따른다. 전화의 목적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정해진 시간 안에 용건을 요령 있게 말해야 한다. 또 말로 의미를 전달하며 생기는 희석 과정을 조심해야 한다. 별 의미 없이 하는 말에 의미가 부여되고, 중요한 말이 왜곡되지 않을까 하는.


그러다 보면 어느 날은 상대에게 내 목소리를 들려주는 일이 부담스럽고, 또 어느 날은 통화 중에 발생하는 침묵이 보통 이상으로 무겁게 느껴진다.


전화에는 암묵적 동의가 필요하다. 내가 전화가 가능할 때, 상대도 전화가 가능해야 한다. 서로의 목소리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비교적 조용한 장소에 있어야 하고, 대화가 어느 정도 길어질 걸 예측해서 일정 시간을 빼놓아야 한다. 타이밍이 필요하다. 서로가 놓인 시간과 공간이 딱 맞아떨어지는.


언제든지 ‘전화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 모든 걸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외롭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건 말없이 이어지는 침묵을 견뎌줄 사람도, 치기 어린 투정을 들어줄 사람도, 오늘 낮엔 소나기가 왔었다는 용무 없는 말까지 모두 기꺼이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거니까.


전화해. 언뜻 들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이건 좋아해도 아니고, 사랑해도 아니고, 보고 싶어도 아니니까. 그러나 곱씹을수록 설레는 말이다. 인류가 전화기를 최초로 발명한 이유는 사랑 때문이란 걸 알게 된 후로 더더욱.


안토니오 무치는 중병에 걸린 아내가 외출하지 못하고 침실에 누워만 있어야 하자, 아내에게 집 밖의 일과를 들려주기 위해 전화기를 발명했다. 전화는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을 한순간에 같은 시간 안으로 결속시키는 역할을 하니까.


이제는 ‘전화해’보다 ‘카톡해’가 많이 쓰이는 세상이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보냈는지 미리 읽을 수 있고, 굳이 답장하지 않아도 전화기 건너편에 숨죽이며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 양방향 소통보다 일방형 소통에 익숙해져만 가는 세상이다.


전화하는 사이, 그건 참 애틋한 사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알 수 없어 두근거리고, 상대의 말을 잊어버릴까 머릿속으로 계속 되뇌니까. 상대방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침묵이 그저 편안하게 느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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