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민트색 셋업 수트남.
나이를 먹으면서 깨닫게 된 것이 몇가지 있다. 그중에서도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며 배웠던 한 가지. ‘우리 모두는 존재만으로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라는 명제는 틀렸다는 것. 사랑받는 사람이 되려면 누구라도 그에 걸맞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10주에 걸쳐 <환승연애>를 지켜봐온 결과, 한남동 고급 주택에서 함께 살고 있는 여덟 남녀(10화부터는 열 명이 됐다)는 비로소 두 분류로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사람을 찾고자 하는 자’와 '옛 연인과의 중단된 인연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자’. 여기서 ‘종결’이 아닌 ‘중단’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KBS 명작 드라마 <연애의 발견> 속 강태하의 대사로 대신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헤어지자.
이제는 제대로 헤어지자.
나는 왜 헤어졌는지를 몰라서 너랑 못 헤어졌던 거고, 너는 계속 나 미워했었잖아.
미워하는 동안은 아직 헤어진 게 아니야.”
지금까지 <환승연애> 시청자 사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주휘일 것이다. 그는 두 분류 중 옛 연인을 붙잡고자 하는 쪽이다. 나이는 28세. 그는 현재 카카오게임즈에 재직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나는 그의 활약상 때문에 이제 카카오게임즈의 주식이 사고 싶어질 지경이다.
주휘가 매력적인 이유는 명확하다. 그는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 속에서 변하지 않는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주휘의 X, 민영은 현재 주휘와 정권이라는 두 사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중이다. 주휘가 민영과 단둘이 커피 한 잔 못했던 약 열흘 사이, 민영은 정권과 밥도 먹고, 빵도 만들고, 저녁 늦게까지 단둘이 술도 마시고, 밤 산책을 하고, 손을 잡은 채 귀가하고, 둘만의 반지도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주휘는 이 모든 장면을 목격했다.
주휘의 입장에서 이 모든 순간들은 마음을 칼로 쿡쿡 쑤시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휘는 단 하루를 제외한 모든 날 민영에게 문자를 보냈다.(참가자들은 매일 밤 한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야 한다. 그 문자는 암묵적으로 호감의 표시로 사용되고 있다.)
주휘의 이 모든 게 되려면 자신감보다는 자존감이 필요하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여기서 냉소를 선택하고 싶었을 것이다. 냉소를 선택하면 편해진다. X의 마음이 이미 다른 사람에게 돌아섰다고 스스로 매듭짓는다면, 내가 원했던 사랑을 쟁취하지는 못하겠지만 동시에 마음 졸이며 속상해할 필요가 사라진다.
물론 그렇다 한들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네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판단은 오직 나만의 것’이라는 자세로 X를 대하는 주휘의 태도는 로맨틱 그 자체다. 그가 빨래를 대신 개주지 않고, 인도에서 차도 쪽으로 걷지 않고, 밤늦게까지 달콤한 말들로 고백하지 않더라도 민영에게 매력적인 남자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영은 프로그램 초반, ‘나의 X 소개서’를 통해 주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제가 헤어짐을 후회했던 유일한 남자입니다.” 고민영 씨가 같은 인연으로 하여금 두 번 후회하지 않길, 진심으로, 간곡한 마음으로 응원한다.
추신.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번 편 주휘와 민영의 귓속말 대화 장면으로 많은 분들께서 분노하신 줄로 알고 있습니다. 여자 출연자 코코가 주휘에게 용기를 내 좋아한다는 마음을 전했지만, 같은 날 주휘와 민영은 코코가 잠들어 있는 침실에서 서로 머리를 쓰다듬고 귓속말로 오래도록 이야기를 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지요.
방영 직후 “주휘 실망이다”, “아무리 그래도 코코 앞에서 스킨십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하는 식의 피드백을 보았습니다. 저 또한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난받아야 할 일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휘와 민영은 그날 잃어버린 줄 알았던 자신들의 우주를 3년 만에 되찾은 사람들이라고 봐줘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이번 화를 통해 새롭게 얻은 교훈이 있습니다. 호감을 사고 싶은 여성과 데이트를 할 적에는 민트색 셋업 슈트를 입지 말 것. 그날의 데이트가 남이섬에서 진행되는 이벤트라면 더더욱 입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