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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현욱 Jul 29. 2021

엄마와 인스타그램과 루이비통 핸드백

사랑은 연필과 현찰로 쓰세요.

엄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 모자 관계는 매우 돈독한 편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기억이 선명한 가장 오래된 때로 돌아가 보자.


우리 집은 교회를 다닌다. 요즘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유초등부에서는 매년 ‘성경암송대회’라는 것을 했다. 성경암송대회는 유명한 성경 구절을 외우고 단상에 나가 성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암송하는 대회다.


1번은 엄마와 나와 동생. 아버지는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셨다. 2번은 성탄절.


지금도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처음인 줄은 알았지만 마지막 줄은 몰랐던 나의  성경암송대회. 시편 1(3 자가 조금 넘는다) 외우던 내내 나는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는데  모습이 어른들의 눈에는 귀여워 보였는지 교회 집사님들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군중 속에서 가장 크게 웃던  사람의 얼굴을 아직 잊지 못한다. OO 집사님. 우리 엄마. 나는 그때보다 나이가   넘게 많아졌지만 요즘도 가끔씩 그날 웃음의 경위에 대해 묻곤 한다.


사이가 좋아지기 시작했던 것은 군대에서였다. 엄마도 나도 서로를 보고 싶어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던 모양이다. 물론 전역  우리의 모자관계는 왕왕 악화되곤 했지만, 내가 상경한 이후로는 판문점 선언을   나라처럼 큰탈 없이 현상유지를 해오고 있다.


해병대 교육훈련단 입영식 풍경. 출처는 '날아라 마린보이'.


그렇게 평화가 이어지던 어느 . 엄마로부터 전에 없던 유형과 내용의 카톡을   내리 받았다.  번째 카톡은 메시지가 아닌 링크였다. 본능적으로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단어 조합의 파란색 문구. 클릭하니 루이 비통 공식 온라인 스토어가 떠오른다.


“뭐죠??”


“돈 열심히

벌어서 맘한테

선물 하라고~~”


크리스마스 때도 어린이날 때도 나는 이렇게 노골적인 방식으로 요구를  기억은 없다. 요즘 어린이들은 다른가? 하지만 엄마는 어린이도 요즘 사람도 아닌데. 저쪽에서 요청해온 제품의 모델명은 ‘루이 비통 알마 BB 핸드백이다. '1934년에 처음 선보인 아르데코풍 디자인의 발자취를 따르는 그래픽한 다미에 에벤 캔버스 소재의 가방'이란다. 일단은 제가  알겠습니다.


그리고 약 2주  뒤 받은 두 번째 문자.


“아들아~~

어머니

인스타계정

만들었다

팔로워 혀 ^^”


“헐”


“(인스타그램 아이디)”


“가족끼리는

인스타그램 팔로우 하는거 아님”


“예외를 두자는거지”



두 번째 카톡을 받고서 엄마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는 엄마가 행갈이를 굉장히 신경 쓴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나보다 훨씬 솔직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엄마는 평생 당신이 갖고 싶은 무언가를 꼭 짚어 말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갖고 싶은 게 남들보다 적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내 생각은 틀렸고, 엄마의 방법은 솔직하고 덕분에 오해의 소지가 없어서 옳다.


여전히 서로 언팔 상태다.


살면서 엄마에게 받았던 손편지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우리 아들은 부족한  하나 없는 아들이었는데, 엄마는  칭찬이 모자랐던  같아. 엄마 노릇은 처음이다 보니 너무 서툴렀네. 미안해 아들.” 엄마와 아들의 사이가 가장 가까워진다는 입대 2 차에 받았던 편지다. 나도 아들은 처음이라 매 순간이 서툴지만, 전역 7  아들이 엄마와의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손편지는 아니라는   알고 있다.


루이 비통 알마 BB 핸드백의 가격은 1백82만 원이다.

루이 비통 알마 BB 핸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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