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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가정-아들셋]
제4편. 여덟 살 정우의 사생활

2009 . 2. 6. 02:10분 태어난 후, +2666일

by 김현이

"엄마 이 치마 입지마"

"왜 정우야, 엄마는 이쁜데"

"남자들이 친한 척 하니까 입지마"

"아~! 알겠어 정우야 "

평소의 저녁시간보다 10분정도 여유가 있는것 같아서 옷장의 해묵은 좀 짧은듯한 치마를 꺼내서 허리춤에 데어 보고 있던 나를 보고 거실에서 동생들과 자동차를 갖고 놀던 정우가 안방으로 들어와서 작은키 까치발을 하고서 내일 출근할때 입을 옷을 골라준단다. 그러면서 집개손가락을 길게 뻗으면서 좀 어두운 색인 남색의 반팔 티를 추전해주면서 저걸 입으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정우야 저 옷은 아빠가 싫어하시던대" 하자, 고개를 흔들며 " 으으 아니야, 엄마는 다 어울려 이뻐~", 어른스럽게 이야기하는 정우에게 " 고마워 정우야" 하고 다시 옷장에 옷을 포개어 놓는다.



밤 아홉시가 넘어가려는 시간, 둘째는 깔아 놓은 이불에 쓰러지듯 누워있고 막내도 이제는 자기잠자리리쯤은 어딘지 잘 알고 있고 혹시 누군가 먼저 그 자리에 누워 있으면 나오라는 표현으로 " 빼~ 빼~ " 하며 나오라는 시늉을 하며 곰돌이 얼굴을 한 배개를 껴안고 있고, 가장 큰 형님인 정우는 아직 놀고 싶은게 많은데 동생들이 다 자려고 하니 혼자 놀기가 심심한건지 거실에서 몇가지를 따닥따닥거리며 있다가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들고 들어와서 제 자리에 눕는다. 이쯤되면 곧 아이들의 동그란 배가 오르락 내리락하며 규칙적인 숨소리로 온방이 채워질것이며 막내 아이의 들큰한 땀냄새 - 누군가 이상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아기때의 비릿한 젖냄새 섞인 땀 냄새가 너무 좋다 - 를 맡으려 정수리에 코를 갖다 대고 한참동안 아기 궁둥이를 토닥토닥 한다.

벌써 8년이라는 햇수가 지나버린 일이다. 보통의 일이라면 멀어진 기억이라 생각이 안날 수도 있겠지만 정우를 낳으러 병원에 가던 그 시간으로 되 돌아가면 그 산통이 아직 느껴지 듯 선명하다. 아기는 엄마뱃속에서 40주간의 기간을 채워야 나온다고 정확하게 책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정말로 출산예정일인 딱 40주만에 아기를 낳는 사람은 2~3%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다고 한다. 내가 산통을 느끼기 시작한건 39주 6일째 되던 새벽시간이었다. 아침에 화장실에 가니 속옷에 혈흔이 묻어 있었는데 어른들께서 이슬이 비치면 곧 아기가 나올 징후라고 했던 기억때문인건지 그 순간부터 살살 아파오는 아랫배의 통증을 더해 아직 경험하지 못한 막연한 공포감과 두려움으로 온종일 침대에서 누워만 있었다. 지금 같아선 내가 병원에 직접 찾아가 봤겠지만 애 아빠가 퇴근하기까지를 그렇게 종일 아무것도 입에 대지 못하고 꼼짝없이 있기만 했다.



그렇게 병원 응급실을 들어서는데 산파인 간호사가 내 상태를 살펴보고 아직 20% 밖에 진행이 안되었으니 집에가셔서 배가 더 아프면 오라는 거였다. 그래서 우리는 병원을 다시 나와 병원 옆 순부두집에 가서 애를 낳으려면 힘을 써야 되니까 뭐라도 먹어야 한다며 숟가락을 들었지만 도대체 목구멍으로는 음식을 넘길 수 가 없었다. 왜냐하면 정말로 배가 점점더 심하게 아파왔기 때문이다.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다시 응급실로 가서 내진을 해보았는데 40% 진행이 되었다고 입원을 하는게 낫겠다고 이야기 했다. 그런데 병실에는 이미 산통으로 진통중인 산모들이 모두가 입원을 한 상태여서 나는 대기실에 있는 이동식 침대에 환자복을 입고 누워 있었고 그때 시간이 막 11시를 넘어가던 때였다. 그런데 정말 배가 아파서 간호사를 불러 나좀 봐달라고 하면 "아직 기다리세요 초산이시라 그렇게 아프게 느끼시는거예요"라는 위로의 말만 할뿐 당췌 나를 진료해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애원하 듯 배가 너무 아프니 한 번만 봐 주세요 하니 마지못해 내진을 해보던 산파가 깜짝 놀라며 "어머니 진행이 엄청 빠르세요. 수술실로 이동할게요" 이렇게 말하는 거다. 그렇게 수술실에 들어가서 산파의 주문대로 힘을 몇 번 더 주고 2009. 2. 6. 새벽 2시 10분에 40주를 정확하게 꽉 채운 3.35Kg의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새벽부터 미세한 진통이 있었다지만 입원한지 3시간 만에 아이를 출산했다. 그것도 이미 먼저 병실에서 산통을 겪고 있었던 산모들을 제치고 그것도 초산인 내가 입원실 한번 들어가보지 못하고 가장 먼저 우리 황정우를 낳게 된 것이였다.

탯줄이 아직 잘리지 않은 아기를 산파들이 내 가슴위에 올려주는데 순간 뜨거운 눈물이 터졌다. 아마 이런걸 "감동의 순간"이라고 말을 해야 하는게 아닐까 상투적으로 흔하게 쓰이는 감동이라는 표현은 막쓰기 아까운 말이라 꼭 그 순간에 써야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가 빠져나오는 순간을 어떤 느낌이라고 표현을 해야 할까. 마치 물이 꾸덕꾸덕하게 말라가는 진흙탕에서 나이 많이 먹어 힘이 좀 빠지긴 했어도 살찌고 뚱뚱한 미꾸라지 한마리가 그 속에서 머리로 힘겹게 굴을 만들어가며 온몸으로 느꼈을 그 밀착감과 고통, 이미 두꺼운 몸이 지나친 자리를 지나갈때의 꼬리에서 느껴질 매끄러움, 아마도 우리 정우가 머리부터 그 좁은 엄마의 길을 뚫고 바깥으로 나올때 그 미꾸라지와 비슷한 고통과 희열을 느끼지 않았을까.


유난히 머리둘레가 컸던 정우는 어쩌면 남들보다 더 빨리 나와서 엄마를 덜 아프게 해줘야겠다며 그렇게 빠른시간에 밖으로 나왔는지 모른다. 꼭 출산을 경험한 여자들은 마치 애기 낳은 것이 훈장인 것처럼 자기가 아기를 몇시간 진통하고 낳았으니 어쩌니 자랑하듯 말을 하기도 하고 또 고생만하다 결국엔 제왕절개 수술로 낳았다고 말하는 엄마에게는 약간의 동정의 말을 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애를 셋이나 자연분만으로 낳았어도 첫 아이를 "응급실 입원한지 세시간만에 낳았어요" 선뜻 말하지 못했었다. 그렇지만 이미 내 첫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 배꼽이 탯줄로 연결된 순간부터 이미 그렇게 배려심이 많은 아이로 정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엄마 나 낳으실때 조금이라도 덜 아프시게 내가 힘을 내서 빨리 빨리 나가야겠다' 하고.

내가 꼭 그런 생각이 드는건 정우가 맏이라서 보단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에도 또래 친구한테 갖고 놀던 장난감도 기꺼이 건네주던 양보심이 많은 아기였고 점점 커가면서 나의 참는 성격을 닮아가는 것 같아 안쓰럽고 그래서 더없이 애착이 가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4살이 되던 어느날, 디즈니 공주들이 많이 그려져 있던 스티커를 붙였다 뗐다 하며 놀고 있는 정우가 "엄마 공주님 예뻐, 이쁘지?" 하기에, "엄마가 이뻐 공주님이 더 예뻐?" 물었던 적이 있었다. 정우는 잠깐 고민하는 것 같더니 "엄마~ 엄마가 공주님만큼 예뻐~" 이러는 거다. 보통 어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말 장난을 하는 식으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렇게 묻는게 참 짖궂은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나는 그보다 더 못한 질문을 세돌밖에 지나지 않았던 아이에게 했던 것이다. 말그대로 愚問賢答이였다.


두돌이 지나고 동생이 태어났다. 첫 아이에게 동생이 생기는 일이란게 남편이 내연녀를 본처에게 보이는 그런 충격보다 더 정신적으로 반향이 크다는 글을 읽은적이 있다. 우리 착한 정우, 남들 한번씩은 다 할퀴고 때린다는 전형적인 큰아이의 행동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속으로 삭이는 걸까? 분명히 정우에게도 그간 자신이 독차지해왔던 부모님의 사랑을 동생에게 뺏긴다는 박탈감과 상실감이 있었을텐데 그 작은 아이한테 벌써부터 몸집보다 훨씬 큰 기꺼이 나누어 주고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넉넉함이 있었을까? 아니면 아무리 동생이 태어났어도 엄마아빠가 여전히 나를 아끼고 사랑할거라는 확신이 있었을까? 그 작은 꼬마의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없었지만 그 후에 한번더 동생을 안겨 주었을때도 정우는 담담했고 맏형의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정우는 지금 8살, 1학년이다. 첫아이라 유난히 더 혼나고 항상 네가 동생들을 잘 돌봐주어야 한다는 무거운 말들로 그 작은 아이의 어깨를 짓눌러 왔던게 아닐까 싶어 아이의 행동이 위축되고 자신감이 떨어질까 항상 걱정이 되었다. 3월초에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에서 다행이 정우는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이며 목소리도 엄청 크고 어느땐 유난히 큰 목소리와 행동으로 선생님의 제지를 받을 정도라며 내 걱정을 조금 덜어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은 아들만 가진 사람은 그중에 분명히 딸 노릇을 하는 자식이 한명은 있다고 하며 항상 애교가 많은 둘째가 그럴거라고 이야기를 하곤한다. 반문하지도 않을 뿐더러 아이들 중에 딸같은 자식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갖지 않지만 만일에 그런아이가 있을거라면 꼭 정우가 그런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확신한다.


얼마전에는 정우가 "엄마 나 다음달에는 하나가 짝꿍이야"그러길래, 하나는 정우 유치원때부터 같이 다니던 친구라서 나와도 안면이 있던 아이라 "정우야 잘됐다. 하나는 착하고 귀엽잖아. " 했다. 그랬더니 정우가 말하기를 하나는 뚱뚱해서 이쁘지 않다는 말을 하는거였다. 나는 속으로 '하나가 통통한데가 있는데 저 녀석도 벌써 그런걸 본단 말이야, 많이컸네' 하고 웃었던 적이 있었다. 또 체육대회 때 다른반에 다니는 아이 친구 엄마를 만났는데 그 반 여자아이들이 황정우가 잘생겼고 여자 친구들끼리 그런 이야기했다고 그걸 그 엄마에게 이야기 하더라며 말을 하시는 거다. 정우도 남자니까 당연히 날씬하고 이쁜 여자가 좋은걸까? 이 작은 아이들도 벌써 이성적으로 누가누가 좋은지 그런생각을 하는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항상 아들만 셋을 키우는 엄마로서 어떻게하면 아이들을 잘 키울까 나중에 여자도 만나고 할때는 어떻게 대해주어야 하고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엄마여야 할까 걱정이 되기도 하다. 아직은 정우한테 이른감이 있겠지만 어떤 여자를 만나라고 내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까 아이는 내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까 이런 생각 말이다. 하지만 아이가 이성에 대한 자신만의 성벽을 높이 높이 쌓아가기 전에아름다운 여자에 대한 기준을 이렇게 이야기 해 주고 싶다. 물론 미의 기준이라는게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겠지만은 적어도 아름답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알만하다 잘 알고 있다는 뜻이며 한결같이 그 지속성을 본질로 하는 거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나중에 평생의 반려자를 만날때에는 그 상대가 어떤 아내가 될지 또한 어떤 어머니가 될지를 짐작할 수 있는 여자를, 이렇게 장차 어떠한 여자로 발전할 것인가를 반드시 보아야 한다고 일러 두고 싶다.

"정우야, 정우야~ 정우야!, 정우야 ?, 정 우 야~ 황 정 우 "

정우는 대답을 잘 안한다. 무언가를 하고 있을때 골몰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미 5살이전부터 그렇게 땀이 많이 아이가 한 여름 좁은 방안에서 레고 조립을 5시간 이상을 쉼없이 해도 지친기색이 없고 오히려 엄마인 내가 '정우야 제발 잠자고 다음에 다시 해' 이렇게 부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정우의 수줍음 많은 성격도 한 몫을 할 것이다. 정우가 7살때 가끔씩 만나서 놀던 친구가 있었다. 그 아이 엄마도 자기 아들이지만 다른 아이들과 유독 싸우고 몇번이나 선생님과 상담도 받았는데도 그 아이의 강한 성격이 쉽게 다독여지지 않는다며 유난히 정우와는 한 번의 다툼이 없이 잘 지낸다고 신기할 정도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얘기를 듣고 마냥 좋은 기분이 들었다기 보다는 엄마로서 내 아이가 기가 좀 센 아이와 어울릴때 무조건 양보하고 경쟁을 피하는게 아닌가 싶어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컸었다. 하지만 정우는 타협할 줄도 알았고 양보할 수도 있었고 더 중요한 자신의 그런 관대함에 불평하지 않는 여유있는 아이라는 걸 알았고 그간의 괜한 걱정이 아이를 더 안좋은 방향으로 자라게 만들 수 있겠구나 싶어서 한동안 내 자신을 반성한 적이 있었다.


며칠전에 학교 홈페이지에서 정우의 활동사진을 찾아보다가 유난히 태권도 도복을 입고 있는 사진이 많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차에, "엄마! 나 내일은 도복입고 학교갈게" 하던 정우의 말에 나는 단번에 아이가 학교에 가면 바로 아침에 입혀준 단정한 옷을 땀냄새 나고 여기저기 얼룰진 도복으로 갈아입는 다는 걸 짐작 할 수 있었다. 다짜고짜 "정우아~! 바른대로 얘기해! 이제까지 몇번이나 언제 도복으로 갈아 입었던 거야" 정우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이미 엄마의 어조는 화가 났음을 말해주고 있었고 그간 수없이 그런 행동을 반복해 왔으므로 대충 말하면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고 항상 엄마는 내 모든 행동을 다 알고 있다고 말을 해 왔으므로 쉽게 지어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이한테 도복은 태권도장에 가서 갈아 입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 주고 그 사건은 그렇게 표면적으로나마 아이와 나와의 조건적인 약속을 끝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또다시 그 행동을 전보다는 아니지만 한 두번씩 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얼마나 태권도가 좋았을까! 냄새가 나므로 친구들도 너와 잘 놀지 않을거라는 나의 설명 때문이었는지 어제는 또 목욕을 하러 들어가서 도복을 깨끗하게 빨아서는 옷걸이에 말리는 것이 아니던가. 그것을 보니 너무 내 고집대로 아이를 윽박지르고 내 생각만이 옳다고 강요했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꼈고 정우의 마음이 얼마나 속상하였을까 싶어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이 정우도 엄연한 인격체이니 자신만의 사생활이 있었을 것이다. 미안했다 정우한테.


손끝이 매워 종이접기도를 해도 빈틈이 없고 한번 알려주면 좀처럼 잊어먹지 않고 거의 완벽하게 엄마를 따라하며 시키지 않아도 젖은 빨래를 너는 일도 마른 빨래를 걷어다 개어 놓는 일도 마치 자기가 집안에서 꼭 맡아 해야되는 일인 듯 자연스럽게 하며 엄마의 음식도 누구보다 복스럽고 맛있게 먹어주는 내 큰 아들 황정우~! 이런 아들을 두고서 내가 그동안 혼내고 야단치고 했던 이유들을 생각보니 전부다 나의 부족한 인내심과 지혜롭지 못한 부덕함이였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안한 마음이 점점 더 커져갔다.


한자 이름이 바로잡을 訂자에 벗 友자를 쓰는 아이, 강하지 않지만 분명이 힘이 있는 아이다. 세상에 부모만큼 자기 자식을 가장 잘 아는 사람도 없다는 말이 있지만 그동안의 나는 겉과 속이 다른 그런 엄마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아빠의 정자와 엄마의 난자가 엄마의 자궁속에서 수정이 되었던 순간부터 정우는 이런 독립된 정우로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는데 나의 욕심으로 아이를 소유물로 착각하고 살아왔구나 내 속으로 낳아 8년간 끼고 재우고 먹이고 씻기며 키운 아이를 모르고 살아왔구나 싶은 미안함에 마음이 짠해졌다. 항상 말로는 너 하고 싶은대로 하렴 이라고 했으면서 사실은 나 하고 싶은대로 너를 끌고 왔구나 싶어 이렇게 내가 겉과 속이 다른 엄마였다는 게 두팔을 다 뻗어도 아직 내 키만큼도 안되는 아이 앞에서 내가 얼마나 과장된 사람이였는지 한없이 반성하게 만들었다.


엄마가 달라져야 한다. 내가 먼저 달라지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항상 갖지 못한것에 열망하면서 이미 가진것이 전에 내가 갖고자 얼마나 열망했는지를 쉽게 잊어버리며 그때의 감사함과 기쁨 또한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아이가 내 곁에 와 주고 엄마품을 좋아하고 엄마의 음식을 좋아하고 엄마의 냄새를 좋아해주기를 얼마나 바랬던 적이 있던가! 하지만 처음부터 독립적인 인격체로 태어났기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에게 어디로 이끌지 모르는 부모가 되지 않으려면 아이에게 배우고 혼나고 친구처럼 싸우기도 하며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어울려야만 은밀한 아이의 사생활에 조금씩 조금씩 다가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싶다.


지금 태권도 발차기 열심히 하고 있을 엄마 큰 아들! 보고싶다 정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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