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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가정-아들셋]
제2편. 달걀귀신

내 일상은 언제나 세 아들과의 전쟁이다.

by 김현이



황정우, 변기에 앉아서 잔득 용을 쓰면서,

"엄마 나 똥누면서 엉덩이 흔들거야. 달갈귀신은 더러운거 좋아하니까 내 엉덩이에 붙으면 어떡해"

달걀귀신! 요즘 우리집 아이들의 가장 무서운 존재, 가끔 말 잘 듣게 하기의 쓰임새로 내가 만들어 내놓은 무기다. 궂이 설명을 붙이자면 밥안먹을때, 서로 다툴때 등 중요한 순간에 등장시켜 그 어떤 훈계보다도 강한 방법으로써 애들을 순한 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까지 되려면 달걀 귀신의 탄생 비화부터 그 생김새, 성격까지 사전에 충분한 인지를 시켜주어야 한다.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어떤 음식을 주로 먹는지, 어떤 아이들을 가장좋아하는지 미리 겁을 먹게 하고 그림까지 그려 보여주고는 엄마조차도 달걀귀신을 엄청 무서워한다는 인상을 심어주면 그다음부터는 자동으로 달걀귀신이라는 그 허무맹랑한 존재는 우리집의 막강한 권력자가 되는 것이다.

단우가 태어나고 한달이나 지났을까 지난 한여름때의 일이다. 갓난아기 재운다고 큰아이 작은아이를 조용히 시키자니 통할리 만무하고 그렇다고 마냥 혼을 낼수도 없는 터라 큰아이 정우의 제안인, 선우와 둘이 외출을 하되 현관 밖 우리집 복도로 곧장 두집건너인 순성이네까지만 왔다갔다 자전거만 탄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바랬다. 애초부터 아이와의 약속이 지켜질거란 생각은 혼자만의 기대였고 오히려 아이의 솔깃한 제안으로 갓난아기 편하게 재우려고 행동 구역만 한정시키는 하나마나한 약속을 해버렸던 것이었다. 한참뒤, 복도에 있어야할 아이들은 없고 놀이터를 아무리 내려다봐도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점점 불안해져 아기를 안아들고 나서려는데 요놈들ㅡ 황정우 황선우가 집으로 들어오는게 아닌가. 안도감보다 그 사이 걱정되고 긴장됐던 화의 감정이 표출되고 나는 자초지종을 듣지도 않은채 두아이를 심하게 나무랬다. 복도에만 있으랬더니 어딜갔던거냐 따져 묻자, 정우는 너무도 태연히 엄마가 순성이네집까지만 가라고 해서 갔다가 그집옆 계단에서 선우와 나란히 앉아서 바람을 쐤다는 것이다. 한여름 좁은 복도에서 자전거만 타는게 더웠으리라.... 맞다! 나도 아이가 다소 깊은 잠이 들었을 땐 집안에만 있던게 갑갑해서, 마땅히 외출도 어려우니 그집옆 비상계단에서 맞바람이라 유난히 시원한 바람으로 땀도 식히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하늘을 볼수있다며 꼭대기층에 살고 있단걸로 위안받지 않았었던가. 그것도 잠깐, 하지만 계단에서 다리 짧은 녀석들이 구르기라도 한다면 아찔한 생각에 어찌나 가슴이 두근거렸었는지 모른다.

그날, 내가 어릴때 다녔던 분교 화장실에 달걀귀신이 산다던 소문만으로도 막연하게 무서움을 주던 그 공간을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막상 지나기가 꺼려졌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야기인즉, 누군가 달걀을 화장실에 빠뜨렸는데 그 달걀이 원한을 품고 귀신이 되어서 화장실에 온 아이들을 데려간다는 거였다. 사실 말도 안되는 얘기였지만 그때 내 동무들은 모두 달걀귀신의 존재를 두려워했고 화장실에는 꼭 가고싶을때만 두세명이서 함께 가곤 했었다. 두아이를 공손한 태도로 앉히고 진지한 태도로 그 복도에는 말 안듣는 아이를 좋아하는 달걀귀신이 살고 있는데 특히 어른들이 없을때 그런 아이들을 데려가서 징그러운 지렁이를 먹인다며 아이라면 누구라도 겁을 먹게끔 단단히 일러두었다.


외출뒤에 손 안씻는 아이, 밥상앞에서 밥안먹는 아이, 형제와 싸우는아이, 장난감 양보안하는 욕심쟁이, 어른말 잘 안듣는 아이... 일일이 열거하자면 말안듣는 종류엔 한도끝도없다. 그동안 잦은 등장으로 정우에게 각인된 달걀귀신이란 존재는 말안듣는 이런아이들은 달걀귀신이 좋아해서 언제든지 데리고 가며 더군다나 엄마는 그런아이를 좋아하지 않기때문에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엄마의 도움을 기대하기란 어렵다는 논리로 자리잡고 있다. 꽤나 일리있는 생각인만큼 행동도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지만 중요한건 그 두려운 존재를 언제까지 끌고갈 수 있는가이다. 그동안엔 아주잠깐씩 밤에만 우리집에 왔던 달걀귀신이 이제는 온종일 우리집 어느곳에서든 출몰(!)하고 있다. 밥상에도 장난감통에도 화장실에도. . 아니 아예 동거하는 사이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점점 더 말안듣는 아이가 되어간다는 건 아니다. 그냥 일상의 아주 사소한 것에도 달걀귀신의 존재를 끌어들여 자기들만의 가설을 펴내 어떻게하면 엄마의 귀여움을 더많이 받는가를 스스로 알아가고 있다는데 있다. 전엔 응가를 해도 그냥 혼자서 잘 씻고 했던아이가 먼저 달걀귀신때문에 엉덩이를 흔들며 응가를 하겠다는 말도안되는 이야기로 엄마를 웃기게하고 지저분한 아이를 싫어한다며 전보다 깨끗하게 씻겠다는 걸 엄마에게 표현한다는건 나는 그렇게 무서운 달걀귀신도 이길수 있고 말 또한 잘듣는 용감한 아이라는걸 자랑하고픈 마음이 아닐까.

우리 아이들은 삶은달걀도 지렁이같은 꿈틀이 젤리도 아주 좋아한다. 물론 비상계단 옆을 지나갈땐 무서움을 참지 못하고 서로 앞다투어 뛰어가지만 여전히 찐계란과 젤리는 재미있는 장난감이 되기도 맛있는 간식거리도 된다. 물론 나의 생각이 과장되고 앞서간 것 일수도 있지만 중요한건 나와 아이들 사이의 관계 변화가 아닐까. 여전히 화내고 혼내고 무섭고 한편으로는 겁쟁이 엄마지만 전처럼 아래로 보지않고 내가 아이와 동등한 입장이라며 아이들한테로 내려와 앉아서 그냥 같이 노는 것이다. 과자도 뺏아 먹고 씹던 풍선껌도 바꿔 씹고 함께 아이스크림도 먹고 노래도 같이 부르고 서로 다투기도 하면서 오롯이 친구가 되는 거다. 놀아 주는게 아니라. 그동안 나는 참 많이 잘못했다. 지금도 잘못하고 있고 내일도 분명히 잘 못할것이다. 하지만 다른건 몰라도 내안의 욕심을 조금씩 버리고 사소한 것에도 만족하며 감사할 줄 아는 힘으로 채워나갈수 있다면 누구라도 기쁘지 못할 이유가 없을것이다.

단우가 잠이 들었는지 확인한 정우와 선우가 살금살금 다가와 귓속말로,
" 엄마, 자 이제 찔콩해줘야지". . .
요놈들!!! 이제 달걀귀신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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