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만의가정-아들셋]
제5편. 9일간 휴가 마지막날

독립기념관 둘레길을 돌며

by 김현이

2016.5.8. 일요일.

3, 4월의 산이 어딘가 빛바랜듯한 느낌이라면 5월의 산은 그 푸르름이 하루가 다르게 점점 짙어져가 무언가 어떤일이라도 다시 시작하고픈 마음이 들게 만드는 원동력이 있는 것 같다. 큰 아이 둘째아이의 학교 재량 휴교로 4월 끝자락에서부터 오늘까지 곧장 아홉일을 출근하지 않고 쉴 수 있었던 덕에 내가 또 언제 이런 호사(?)를 부려보나 싶다가 막상 열흘 가까이 나가지 않은 사무실에 당장 코앞에 닥친 출근을 생각하자니 방학 다끝나가는 아이가 밀린 일기 어찌 쓸까 고민하는 비슷한 마음이 생긴다.

오늘 몇 가지 먹을 것과 물통을 챙겨 독립기념관 둘레길을 걷고 왔는데 항상 기운 없고 약한 둘째애가 잘 따라와 줄까하던 처음의 걱정과 달리 오르막길도 힘차게 뛰어오르며 오히려 엄마 아빠를 빨리오라며 재촉까지 하는 모습에 그간의 들인 정성과 노력이 그래도 헛된것이 아니였구나 싶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우리집 큰 아들은 거뜬히 선두를 지켜가며 앞서 다녀온 길에 뭐가 있는지 다시 내리막을 되돌아 내려와 자랑하듯 이야기해 놓고 다시 맨 앞에 서서 길잡이를 해주었다. 한편, 고집이 세진 막내도 혼자 걷겠다고 하며 그 작은 발로 한발 한발 전진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 강아지 같은지 지나가시던 중년 부부의 "산에서 아기를 다보네" 하시던 정감어린 말씀에 괜시리 엄마마음 우쭐하게 했던 단우가 더없이 예뻐보이기도 했었다.

그늘 좋은 자리에 좁은 돗자리 한장 깔아놓고 얼음물로 목도 축이고 땀도 식히는데 큰아이의
"자연이 뭐야?" 뜬금없는 질문에 아이들 아빠와의 주거니 받거니식의 대화가 오가던 중 나는 아이에게 이런식의 대답을 해 주었다.
"자연은 스스로 도움없이 저렇게 자라고 살 수 있는게 자연이야."
이게 맞는 답이 아니란걸 알지만 일단 사람은 부모의 보살핌으로 성장하지만 나무와 꽃들은 부모의 도움없이도 저렇게 아름답게 될 수 있단 생각이 들어서 였을까.. 나는 잠시 자리를 돌려앉아 고개를 높이 들어 나뭇잎만한 햇살을 이마에 올려놓고서는 갈수록 대답하기 심오한 질문들을 해대는 아이들에게 어떻게하면 명쾌한 대답을 해줄 수 있는건지 나무들한테 정중히 청해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레길은 단풍나무가 양쪽 길가에 울창하게 서 있어서 그 줄기와 잎사귀들이 둥근 아치형으로 빽빽히 얽혀있어 자연 그늘막을 만들어주고 있는데 단풍나뭇잎 다섯갈래 모양을 보자면 서로 깍지를 낀 듯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사이 사이로 미처 가려지지 않은 하늘은 별모양을 하고 있어서 마치 한낮에 하늘빛 별이 뜬 것처럼 그 별빛 줄기가 듬성 듬성 아주 곧지만 부드럽게 쏟아지는 그런 길이였다. 그러고 보면 산의 나무와 꽃들 만큼 계절을 정직하게 맞는 존재도 없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사람들처럼 때이른 반팔로 만일에 추위를 걱정하고는 잠바를 더 챙기며 짐가방을 무겁게 잘못 계산하는 법이 없기때문이다. 치장없이도 스스로 무엇보다 아름답고 계속 보아도 질리지 않고 오히려 편안해지며 쉴 공간을 내어주는 넉넉함이 있는 자연속에서 그동안 얼마나 좁은 생각과 불평으로 사치스럽게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고 있는지 내 자신이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나만큼, 내가 보고 느낀만큼, 아니 나보다 훨씬 더 맑고 순수한 아이들이니 오늘 몇 시간 동안의 산책이 주는 의미를 마음 한켠에 잘 새겼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아이들이 마냥 보물찾기에 집중하며 시간 가는줄도 몰라 신난 시간을 보내고 뜀박질로 땀흘려 저녁밥맛이 좋아지고 몸이 고단해져 밤잠 푹 잘 자게 될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참 의미있는 경험이였다고 생각한다. 종종 내가 아들셋 엄마라는걸 아시는 분들은 참 힘들겠다는 위로의 말을 하시곤 하신다. 특히 혼자서 세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야하는 날엔 측은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뒤통수가 간지러운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왕자님들 틈속에 사는것도 행복한 거라고 말하는게 흔한 경우인데 게중에는 아들넷(남편을 아들로 간주)을 어떻게 건사하느냐는 분들도 있어서 내겐 딸같은 남편이 있으니 괜찮다고 되받아치면 그만이다. 내가 이렇게 호기로울 수 있는건 말은 말일뿐 경험하지 못한건 아무리 설명해도 와닿지 않을 뿐만아니라 대부분이 진심이라기 보단 호기심 섞인 말들이 더 많다는 느낌때문이다.

머리 좋은 것보다는 마음 좋은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가족이 되기를 희망한다. 내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바라며 아이들이 그렇게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어려움을 겪더라도 감당하며 참아낼 수 있는 힘 있는 아이, 만일에 가난이 와도 그쯤의 불편함이야 대수롭게 여길 수 있는 미덕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실패를 겪었을때 그 어려움을 떨쳐낼 수 있는 지혜로운 아이, 한편 그 실패를 잊지 않고 새길 줄 아는 용기가 있어 다시 노력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나길 기도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 내가 먼저 그런 사람으로 동등한 입장이 되어 아이들을 볼 수 있기를 유념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아이들 아빠는 가끔 뜬금없이 "너는 넷째 낳자면 당장 낳자고 할 사람이야"하고는 내가 반색하며 "여기서 더? 싫어~"하고 말하면 대번 " 실망이야~"라며 나를 들었다 놨다 놀리기를 잘한다. 그리고 여자인 나보다도 애교스럽고 익살스러우며 결혼한지 9년이 됐어도 다시 태어나도 나와 결혼 할거라고 또는 내가 예뻐서 결혼했다는 둥 뻔한 거짓말도 잘하는 유쾌한 사람이다. 가족의 중심을 이루는 부부는 양보의 마음을 시작으로 해야 싸움이 적어지며 그 사이가 좋을수록 서로 인내할 수 있는 힘도 늘어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성격차이라는건 본래부터 항상 있는 것이며 노력해서 좁혀질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없앨 수 없고 다만 다른 갈등이 부각되었을때는 그것을 성격차이라고 느끼는 거라고 말이다. 엄마와 아빠가 그 위치를 잘 채워주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큼은 서로 잘잘못을 따지기 보단 그냥 격려하고 칭찬하며 보듬어 준다면 두 기둥 아래 있는 아이들과 함께 영위하는 삶의 무게 중심이 고단함보다는 행복함으로 조금씩 더 기울어가지 않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만의가정-아들셋] 제1편. 내 첫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