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전의 여름은 유난히도 길고 무더웠다. 9월이 다가오고 절기상으로 처서가 벌써 지났는데도 그 무더위의 기세는 꺾일 줄도 모르고 오히려 "처서"라는 말뜻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밤중의 무더위까지도 양보할 줄 을 몰랐다.
그러다 한차례 비가 내렸다. 하루 아침에 기온이 20도가까이 차이가 났고 갑자기 서늘해진 탓에 부랴부랴 아이들의 긴소매 옷을 찾아서 짝도 못맞춰 입혀 주고 나 또한 하근무목 위에 춘추잠바를 껴입는 어색함을 연출했다. 그렇게 여름은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서 마치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건지 도망치 듯 우리곁에서 달아나 버렸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자기가 떠날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름은 그 여름만의 열정과 젊음의 낭망의 여운도 남겨주지 못한 채 조금은 아쉽고 초라하게 자취를 감춰버렸다. 엉겁결에 그 자리를 내어받은 후발주자 가을은 오늘 날씨를 여름에 맞춰야 하는지, 겨울쪽에 맞춰야 하는지를 갈피를 못잡고 며칠동안을 그렇게 오락가락하며 한여름의 소나기와 같은 천둥번개를 내리기도 갑작스런 차가운 바람으로 사람들을 서운하게 하기도 하였다.
9.2. 며칠만의 맑은날인데 일기예보상으로는 주말내내 강풍을 동반한 비가 내린다고 한다. 그러건 말건 여기 내 책상에서 보이는 문 밖은 늦매미의 멎었다 이어졌다 하는 의무감섞인 아쉬운 울음소리와 반짝반짝한 햇살이 키가 큰 은행나무의 잎사귀들을 간지럽히고 있을뿐이다.
이제부터 겨울이 오기전까지 하루하루 기온이 점점 낮아질테지만 1년안에 며칠 주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날들로 몸속의 체감온도를 조금씩 높여가며 지금부터 겨울을 위한 비축에 힘써야 겠다. 나도 조금 있다가 뒷마당 평상에 나가 앉아서 햇살이 해주는 안마도 받으며 제법 여유를 부리며 나 좀 봐달라 멀어진 파란 하늘 구경좀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