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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생은조연]
제23편. 정상과 비정상

"잘했어요, 아주 잘했어요, 아주 아주 잘했어요."

by 김현이

나는 지방의 중소도시에서 그 중에서도 그 변방부에 위치한 작은 읍단위의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이다. 여기에는 소장님을 포함해서 모두 13명의 경찰관이 근무를 하는데 작은 시골마을이라고 하더라고 인구가 대략적으로 22,000명이 넘어서 경찰관 1명이 담당해야 하는 인구가 1,700여명이 되는 꼴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우리 파출소에서 유일한 여자인데 그것마저도 나의 업무는 현장에서 직접 주민들과 부대끼는 업무가 아니라 파출소내의 전반적인 행정업무를 맡고 있어서 주민들에게 있으나 마나한 존재와 다름이 없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주민들의 이야기도 내가 근무하는 이 지형의 특성도 아닌 내가 가끔씩 업무적으로 부딪히는 읍사무소의 어떤 계약사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셋째아이를 출산하고 2년정도 휴직을 했다가 복직을 한 게 지난 1월 29일이었다. 본래 내가 우리 조직(엄연한 표준어에다 적절한 단어임에도 풍기는 분위기에서 어떤 어두운 냄새가 나는 건 내 특유의 직업근성인 듯 하다)의 구성원이였음에도 항상 공백기를 지내고 소위 컴백을 할라치면 전부다 서툴고 낯설다는 느낌에 모든면에서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상태가 된다. 분명히 의욕은 넘쳐나는데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잘 적응해 낼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나는 것이다. 며칠이 지난 후 우리 파출소에 제때 이발하지 못한 것 같이 머리 둘레가 단정하지 못한 스포츠스타일의 머리를 한 어떤 남자아이가 파출소에 들어왔다. 마침 옆 옆 책상에서 팀장님이 함께 계셨던 터라 낯선 남자애의 등장이 그다지 긴장된 일은 아니였다. 내가 일처리를 하기 곤란한 경우라도 팀장님이 얼마든지 처리를 하실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애는 팀장님쪽으로 가는게 아니라 말없이 꾸벅 고개만 한번 숙이고는 나에게 누런 서류봉투를 건네는 것이 아닌가. 봉투의 겉면의 보내는 사람란에 00읍사무소라는 주소가 인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읍사무소의 사환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초짜인 듯 보이는 게 싫었고 자칫 첫 만남에서 얕잡아 보이게 되어 기선을 빼앗길까봐 속으로 혼자서 말도 안되는 게임을 하면서 아주 능숙한 척 봉투를 뜯고 서류를 꺼내어 보았다. 서류는 미성년자의 주민등록증 발급을 목적으로 채취한 십지지문표였다. 인수자란에 내 이름 석자를 또박또박 사인하고 나머지 증서를 건내어 주었다. 그 와중에 그 남자애는 시선을 내 얼굴에 고정한 채로 몸만 수그리며 인사를 했다. 그래서 나도 같이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를 하는데 그 남자애가 아주 어눌하게 그 여섯글자 "안녕히 계세요"를 'ㅇ ㅏ ㄴ ㄴ ㅕ ㅇ ㅎㅣ ㄱ ㅖ ㅅ ㅔ ㅇㅛ' 이렇게 아주 힘들게 말을 하는게 아닌가.. 그 남자애는 아이가 아니라 이미 다 자란 성인이였고 지체장애가 있는 읍사무소 계약 사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계약사환과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한달에 두어번의 만남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그 사환이 배달하는 서류는 미성년자 십지지문채취표외에도 신분증 분실자들이 신청하는 운전면허증 발급 신청서도 신청비 얼마와 동봉한 밀봉 봉투도 가져다 주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내 이름 석자 [김 현 이] 를 인수증에다 아주 또박또박 적어서 다시 건내주었는데 나는 점점 그 사환에게 분명한 발음으로 인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번은 "조심해서 가요", 또 한번은 "잘가요" 관공서에서 하는 인사라고 하기에는 조금 격을 갖추지 못한 어쩌면 격식에 어긋난 "비정상"적인 인사를 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같이 있던 직원분이 그 사환이 나가자 " 저 사람은 모자란 사람인가봐.. 왜 다 저렇게 말들을 하는지 몰라." 나는 직원의 그 말에 괜시리 화를 느끼며 " 저 사람은 정신지체가 아니라 그냥 지체장애가 있는 사람이라 말이 좀 불편한거에요. 관공서에도 그런분들을 위한 채용이 할당되어 있어서 우리 경찰서 00과에도 그런분이 근무하고 계시잖아요."라고 마치 그 사환의 대변인이라도 된 듯 약간 흥분한 어조로 이야기를 해 버렸다. 그냥 화가 났다. 사실 내가 그렇게 인사를 격에 없이 하게 되었던 건 그 사환이 하도 힘들게 "안녕히 계세요"를 말하는 것에, 반대로 그 인사말이 나에게는 너무나 쉬운 것에 괜한 미안함이 느껴졌고 그래서 나는 매번 그 사환의 인사를 받는게 사실은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그런데 직원의 "비정상"이라는 별 생각없이 던지는 말에 그 사환 자신과 그 사환을 낳으신 부모님과 그의 가족들에게 얼마나 비수같은 말이 될지에 순간 그 사람들의 위치에서 그의 입장으로 그 단어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저 사람을 두고 과연 "비정상"이라고 아주 거리낌없이 정정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정상"의 사람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 사환의 눈에는 내가, 또 내 옆의 그 직원이 비정상으로 보였을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 사환에게는 여느 일반인들에게 보내는 그런 시선이 아닌 항상 어딘지 모를 살피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보통의 우리를 보았을 테니까 말이다.


한달에 두번을 만난다 치더라고 벌써 그 사환과도 15번정도의 만남이 있었다. 이제 그 사환은 내 이름도 알고 있어서 나갈때 인사외에도 파출소에 여러사람이 앉아 있어도 굳이 나에게만 그 전달 서류를 주고는 "김현이 경사님?" 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보통의 만남이라는 단어의 뜻대로 라면 만남이 아니겠지만 내가 퇴근길에 지나쳐오는 차안에서 항상 201번 버스가 서는 정류장에서 우뚝 서있는 자세로 버스를 향해 손을 번쩍 드는 그 사환을 마주치기도 한다. 그 모습에는 주눅이 들었거나 주변인의 눈치를 본다거나 하는 식의 망설임이 없는 늘 당당한 몸짓이다. 내가 과연 저렇게 저 정류장에서 버스운전기사가 손님이 없다며 모르고 지나칠까 두려워 양 두손을 높이 들어 버스를 세울 수 있는 당당한 손짓을 보낼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일까 비교하게 되었다. 오히려 그런면에서는 내가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이렇게 주변인의 시선대로 이미 정해져온 관습대로 살아가는게 길들여진 우리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다시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핀란드의 교육에 있어 아이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단 세가지 밖에 없다고 한다. "잘했어요.", "아주 잘했어요.", "아주 아주 잘했어요." ... 앞으로 정우에게 받아쓰기 시험을 반의 누가 100점을 받았는지 절대로 묻지 않기고 했다. 아이의 수준을 나름대로 가늠해볼 심사로 물어볼때도 사실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건 아니였지만 이제는 나도 점점 어떤게 더 바른쪽으로 가는 답인지 그 방향감각이 조금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가장 중요한 건 경쟁이란 타인과의 겨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과의 싸움이며, 어제의 나보다, 좀전의 나보다 나아졌다면 이미 "아주 아주 잘했어요."를 들을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아이를 비교시켜가면서 키우면 비록 그 성과면에서 나아지더라도 진정으로 용기있는 사람으로는 키워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에 마음이 철렁 주저앉았고 읍사무소의 그 사환도 자신을 주변사람들과 비교했다면 그렇게 곧게 펴진 어깨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각인된 "정상"과 "비정상"의 사회의 구도속에 젖어 성장했더라면 구부정한 어깨를 가진 아이로 아마 읍사무소의 직원도 되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비슷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남과 만남으로 이어가며 살아간다. 어쩌면 나도 사환의 어눌한 말투를 매우 안타깝게 여겼던 수많은 보통의 사람들과 다름이 없었을 수도 있었다. 그를 정상으로 봐주지 못하고 안타까워했다는 것에 오히려 그의 자존심을 다치게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남이 누적될 수도록 나는 사환의 그 어눌한 말투를 어색하게 느끼지 않게 되었지만 왠지 그 때의 그 직원같은 사람이 또 엄한 말을 할까봐 일부러 더 서둘러 사환을 돌려보내기는 했었다. 누구보다 나에게는 어제의 비정상적이었던 나와 칼같이 이별하고 보다 당당해질 의무와 용기가 필요하다. 그게 내가 살아온 날에 대한 성찰이며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날들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세 아이를 용기가 있고 당당함을 지니며 행복한 사람으로 키워낼 엄마로서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의무일 것이다.



이번달에 읍사무소 사환이 오면 차라도 한잔 권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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