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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가정-아들셋]
제15편. 분노의 숨바꼭질

내가 아는 정우의 큰 장점

by 김현이

알베르 카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나보다 수 백배는 위대한 작가이며 만일에 그리스가 아니라 러시아에서 태어났더라면 분명히 노벨문학상을 받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카뮈는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며 어떻게 보면 동시대를 살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카잔차키스를 롤모델로 삼았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 각자의 작품속에서는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저자의 성장 환경과 자란 시대상을 빼내고는 작품을 이해한다면 4차원적인 발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카뮈의 생애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방인] 속에 나오는 뫼르소를 환상속에 사는 사람으로만 바라볼 테며, 카잔차키스를 알지 못하고 [그리스인 조르바]를 본다면 '나'로 등장하는 화자와 조르바의 관계도 쉽게 수긍할 수 없을 것이다. 정상적인 경로를 통한 관련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나는 지금 문학작품을 평론할 생각도 그럴만한 지식도 없다. 그들의 몇 편의 책을 읽은 것만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그들을 굳이 언급해가며 지엽적인 소견을 보여주고 있는지는 낯이 뜨겁지만 지금부터 말하고자 이야기에 조금의 동감을 받기 위한 시작 쯤으로 그런 것임을 말하고 싶다.


정우는 그 수업시간에 배운 교과서를 교실 뒤편에 있는 사물함에 정리하기가 귀찮아서 책상위에 늘어 놓았다가 선생님의 지적을 받고도 단 몇 발자국 걷는게 귀찮아서-물론 내 생각- 키높이의자로 만들어버리는 아이다. 엉덩이에 깔고 앉아서 수업시간 교대로 바꿔가면서 책을 꺼내 본다. 정우는 방과 후 돌봄교실로 가서 배우는 오카리나를 뜬금없이 그만 두고 싶다고 말한 이유를 사실은 그것을 잃어버려서 그런 것임을 그런식으로 쉽게 말하는 아이다. 나중에 담당 돌봄선생님이 직접 정우 가방에 넣어서 보내주신 것을 보고서 정우는 그동안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다던 오카리나를 찾았다며 무척 기뻐한다. 정우는 단 한 학기만을 주산수업을 듣고서 시작 전에 사줬던 주판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이유를 따져 물으면 이제는 배우지 않는 수업이니까 필요 없어서 잃어버려도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학년이 바뀔 무렵 그 또한 돌봄선생님이 보관중이던 주판을 정우의 가방속에 딸려 보낸다. 실내화를 신지 않고서 운동장만 빼고 양말만 신은 채로 아니면 그 마저도 아닐 때는 맨발로 학교 어느 곳이든 한 달 동안을 누비고 다녔다. 그동안 나는 아이의 양말이 유난히 새까맣던 이유가 워낙에 활발한 아이라서 그런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사실은 돌봄교실 신발장에서 가지런히 놓여 있던 실내화가 1학년 교실 신발장에 없다는 이유로 잃어버린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한테 말한다는 생각도 운동화로 갈아신으면 잊어버린다. 받아쓰기 시험도 만점의 반 이상을 넘은 적이 별로 없고 심지어 담임선생님조차도 정우가 산만하고 집중력이 짧다고 실언을 한다. 이게 불과 몇 달 전의 정우 모습이다.

2학년 - 아홉살 먹은 황정우, 위기철의 [아홉살 인생]의 여민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꼭 증류수처럼 순수하다고만은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사회의 부조리와 그에 처한 분위기를 바라보는 시선에 어른 못지 않은 진지함이 있으며 물들지 않는데서만 올 수 있는 편견없이 꿰뚫어 볼 수 있는 힘은 오히려 어른들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민이와 정우는 동갑내기다. 물론 여민이는 소설속에 과장된 아홉살이고 정우는 현실속에 살고 있는 그냥 아홉살 아이다. 두 아이를 비교하면서 내 아이를 두고서 내 탓임을 반성하며 자책하자고 한 말이 아니라 어쩌면 정우는 여민이를 뛰어 넘는 아홉살이고 앞으로 어떻게 정우를 두고 볼 것인지 판단이 잘 안 서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우는 받아쓰기도 항상 백점을 받아온다. 아직까지 실내화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심지어 수업시간에는 발표를 아주 훌륭하게 해 내어 선생님으로부터 후한 칭찬으로 상을 받아오기까지 한다. 전번 날은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우수상을 탔으며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반 친구의 엄마로부터 당신 아이가 정우에 대해 말하길, '정우는 반 친구들 모두 하고 친하게 잘 지내.'라고 말한다고 했을 정도로 교우관계도 나무랄데가 없다. 심지어 선생님조차도 반 아이들 중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를 언급하시며 정우한테 그 아이와도 잘 지내주기를 부탁할 정도다. 여태 단 한번도 숙제를 안해가서 나머지 공부를 한 적이 없으며 다른 친구가 갖고 놀다 망가뜨려버린 공용 놀이터의 장난감도 정우가 고쳐놓는다. 내버려두면 다른 친구들이 못 갖고 놀기 때문에 그것을 본 사람은 누구라도 고쳐놔야 한다는 이유다. 정우는 퇴근한 나에게 어느날 뜬금없이 부모님 생각하는 인성교육 시간 중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날 뻔 했다고 말하면서 "엄마를 한 번 안아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거의 항상 동생 선우를 모르는 척 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갑자기 선우가 보고 싶어서 선우네 교실을 찾아가 잘 놀고 있는지 창문 너머로 보고 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엄마가 엄하고 무섭게 혼내는 건 자기를 미워해서 그러시는게 아니라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잘 알려 주려고, 나중에 나쁜 어른으로 클까봐 미리부터 고쳐주려고 혼내는 것이라고 대단히 잘 아는 척도 한다. 달력만 몇 장 더 넘겼을 뿐인데 전혀 다른 아이가 되어 버렸다.


오늘 아침, 가방속에 청포도맛 사탕이 네 개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을 잘만 써먹으면 내가 좀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에 밥을 먼저 먹는 단 두 명한테만 사탕을 두 개씩 주겠다고 선언한다. 거의 이런식의 경기에서는 단우는 열외자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정우와 선우는 앞 다퉈가며 뜨거운 누릉지를 호호 불어가면서 먹기 시작한다. 간발의 차로 선우가 한 숟가락을 늦게 먹었고 누가 이겼다 할 것도 없고 이미 사탕 두개를 단우가 가져가 버렸기 때문에 나는 나머지 두 개를 사이좋게 한 개씩 아이들 입속에 넣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정우가 돌발 행동을 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방으로 들어가 엎드려서 울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지금 한 개씩 나눠 먹고 수퍼에 가서 청포도맛 사탕 한 봉지를 사 주겠다고까지 말하며 아이를 달랬다. 얼마나 속상한지 이해할 겨를도 없이 나는 점점 더 떼를 써가며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 정우를 남겨 두고 평소보다 10분 먼저 선우와 단우에게 분리수거 빈 박스를 들게 하고 현관 앞에 쌓아 놓은 박스 더미를 들고 집을 나섰다.


분리수거를 끝내고 왼손, 오른손에 각각 아이 둘 손을 잡고 수퍼로 가서 맘에 드는 마이쮸를 한 개씩만 고르라고 이르며 정우에게 줄 사탕 두 봉지를 사가지고 나왔다. 단우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이제 얼마만큼 시간이 지났으니 정우가 차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 예상하며 선우와 함께 출발 준비를 마쳤는데 차안에서 5분을 넘게 기다려도 정우는 나타나지 않았다. 약간 열이 오르기 시작한 마음을 억누르고 다시 집으로 올라가 현관을 열었는데 정우가 집에 없다. 화가 더 치솟았다. 우리집 앞동, 옆동, 인근 주차장을 정신나간 여자처럼 그 아침 큰 소리로 정우 이름을 불려 가며 찾아 다녔다.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지하주차장 입구에서 이번에는 아까보다 몇 배는 더 큰 목소리로 정우를 불렀다. 차려 입고 출근하는 아저씨, 아줌마, 아가씨, 총각들 그리고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우려고 막 손잡고 나오는 엄마들이 나를 한 번씩 힐끗힐끗 쳐다본다. 내가 보아도 나는 겉모습 멀쩡한 정신이 반쯤 나간 여자 같다. 이미 시간은 평소 보다 20분이나 넘어 섰고 아예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처음에 차를 댔던 곳에 가서 기다려봐야 겠다 싶어서 그 쪽으로 다시 차를 몰아가는데 주황색 티셔츠에 칠부 바지를 입고서 파랑색 책가방을 둘러 맨 황정우가 자기네 반 친구를 만나서 같이 걸어오고 있는게 아닌가.


창문을 내리고 당장 차에 올라타라고 말하는데 그 자리에서도 주춤거리면서 시간을 끈다. 당장 올라 타지 않으면 정말 내버려두고 가버리겠다고 최후통첩식의 엄포를 놓자 그때서야 못이기는 척 하면서 차에 탄다.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다. 나는 지금 이 아이를 두고 어떻게 이 감정을 다스려야 할 것인가. 아침 출근 시간대 황금같은 한 시간의 절반을 흥분 상태로 분노의 숨바꼭질로 술래를 하면서 너무 많이 써 버린 에너지, 그것에 비해서 너무 쉽고 허무하게 나타나 버린 범인, 그리고 이제 막 내 손아귀에 들어온 힘 없는 범인을 어떻게 처리 해야 내 화가 진정이 될 것인지 그 순간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무기력한 공허함에 빠졌버렸다. 차에 실린 두 아이와 학교로 가는 길에서 이제 엄마는 오늘 저녁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기로 했다고 선언해 버렸다. 선우는 아직 어리니까 할머니 집으로 가서 살아야 할 것이고 정우는 할머니를 힘들게 할 것이 뻔하니까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혼자서 전부다 책임져가며 살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정문 앞에 내려 두고 거울을 통해 아이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정우가 자동차를 계속 쳐다보면서 멈춰 서 있다. 그 순간 정우는 차 안에서의 엄마 말을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아 모두 다 진심으로 알아 들은 모양이었다. 보통은 혼이 나더라도 돌아서면 잊어버렸다. 혼나면서 엄마에게 들 법한 원망과 미움섞인 감정들을 쉽게 잊어버릴 줄 알았다. 곧 본래 정우의 모습대로 쾌활하고 밝고 까부는 모습이었는데 그게 내 아이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만은 다르다. 낮에 출장을 다녀오는 차 안에서 아침에 사뒀던 사탕 두 봉지를 보고서 왈칵 눈물이 나왔다. 나의 잘못된 어떤 행동으로 그게 원인이 되어서 본의 아니게 정우의 기분을 상하게 했고 우리 모자간의 아침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작가의 성장과정에서 형성되는 성향은 필연적으로 그들의 작품 세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카뮈의 경우에도 편모 밑에서 불우하게 성장한 그의 소년기를 안다면 [이방인]의 뫼르소를 마냥 호로자식 이라고만은 취급하지 못할 것이다. 몇 해전 심장에 스파크가 일어나는 듯한 타닥타닥 불꽃이 튀는 뜨거움으로 식음을 전폐하며 읽었던 [그리스인 조르바]의 카잔차키스도 마찬가지로 종교적인 환경에서 조금 자유롭게 자랐더라면 조르바를 그렇게도 좋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고백하건대, 당연히 다정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나는 정말로 무섭고 엄격한 엄마다. 생각해 보니 아침 불화의 원인은 나에게 훨씬 더 많았던 것이다. 정우 말처럼 정우 생각을 하자니 눈물이 나온다. 정말 꼭 안아 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 요전날 아이의 말이 엄마에게 잘 보이기 위해 지어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던 내 자신이 수치스럽다.


과정을 모르고서 결과만을 두고서 성폐를 따지는 경우가 많아지는 현대 사회는 드러나는 고민과 수치심, 한편으로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도덕적인 과정속에서 성장하는 인격체야말로 유일하게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판단의 객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우리들이 존경하고 따르고자 하는 것은 이 시대 보통의 지성인들이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정서를 바탕으로 잘 형성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며 또한 그들이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알고있다. 내 아이를 그런 성인으로 키우고 싶은 마음은 누구와도 비슷하고 같다. 나는 얼마나 오래 지속될 지 모르는 다짐을 또 다시 하고 있다. 아낌없이, 그리고 더 없이 분명하게 내어 주리라고. 좋은 삶에 관한 많은 견해들을 언제나 배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언제나 나에게도 바람직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더욱 내게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세 명의 거침 없는 사내 아이가 있고 또한 내 자신한테는 성실함의 최대의 근거인 타고난 부지런한 근성과 남다른 책임감이라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충분히 가능한 일임을 오히려 여유롭기까지 한 일임을 내 자신에게 꼭 보여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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