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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가정-아들셋]
제16편. 생리현상

사내 아이에게 오줌싸기는 생리현상 보다는 놀이에 가깝다.

by 김현이

배가 아프다. 고개를 돌리고 단우가 등지고 있는 커다란 창문 쪽으로 들어오는 빛이 약한 걸 보니 아직 신호가 올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배가 부우웅하고 부풀어 오르는가 싶다가 콩알만 한 철퇴가 내 아랫배를 내리치는 듯 쿡쿡 찌르는 통증에 깜짝 놀라기도 하다가 갑자기 부유하던 배가 서서히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말랑말랑해지며 다시 평온을 되찾은 듯 하다가도 갑자기 또 항해 도중 폭풍을 만난 배처럼 현기증까지 느끼는 나는 높다란 파도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은 배가 뒤집혀 버리 듯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두 발로 이불을 걷어 차내고 화장실로 간다.


내가 이놈의 생리현상을 참아볼 데까지 참으려는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다. 단우는 아기 특유의 본능으로 잠을 자면서도 내 젖가슴을 만져보고 엄마가 내 옆에서 누워있구나 안심하고는 등을 돌리고 잠이 들고 갑자기 훽 돌아누워 별안간 이제는 다 사그라져 말아 붙은 젖을 몇 번 빨아 먹고는 만족한 듯 또 다시 몸을 돌려 잠을 자기를 하룻밤 사이 동안에도 수차례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제 내게는 아직 아기인 단우의 생리현상 중 하나라는 생각까지 든다. 서서히 깊은 잠에서 빠져나올 때가 되는 새벽녘에는 그 행동의 반복이 더 심해지고 엄마가 없다는 걸 알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아서,


“엄마~! 어디 갔어~!”


하고 울음을 터트려서는 아이들 숨소리조차도 희미한 그 시간을 연쇄적으로 터지는 지뢰밭처럼 한 놈 두 놈 짜증을 내기 시작하면서 결국은 내 목소리를 가세한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배가 꾸륵꾸륵 소리를 낸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입을 다물고 있어도 얼마든지 소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신기한 몸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설사병이 잦은 사람이다. 약한 장으로 타고나기도 했겠지만 술을 좋아하니까 아무래도 열 번 해도 될 것을 스무 번 이상을 그렇게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연례행사처럼 꼭 장염을 앓아서 링거 수액 들어가는 바늘로 꼭 팔뚝의 정맥을 찔려봐야 한동안 설사병이 사라지기도 한다. 한 번씩 내가 변비로 고생할 때 그런 남편을 보고서 ‘좋겠다.’고 예의에 맞지 않는 듯 한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아마 지금 변기통위에 불안하게 앉아 있는 나를 본다면 ‘내가 부럽다며?’하고 분명히 나를 놀렸을 것이다. 다행이 아직까지 단우는 깨지 않았다. 더 나올 것 같은 데 맘대로 안 된다. 어떻게 내가 완전히 소유한 내 육신을 이럴 때 맘대로 할 수 없다니 내 몸뚱아리 조차도 누구한테 저당 잡힌 기분이라니 잔변감만큼이나 개운치 않다.



단우가 자고 있다. 아직 아침이 되려면 멀었고 단우는 잠을 자고 있다. 이미 잠도 저 멀리 달아나 버렸으니 잠들기 전까지 봤던 책이나 볼까 할 심사로 손을 머리맡으로 뻗다가 그만 단우를 건드려 버린다. 의외의 변수로 예상은 늘 빗나가는 법, 경거망동한 내 이런 행동 -, 단우를 기어이 깨우고야 말았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사람 꼴이다. 예상대로 단우는 ‘엄마 쮸쮸’ 하며 눈도 뜨지 않고 내 몸을 더듬기 시작한다. 이 순간은 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 새끼의 모습일지라도 검은 거미 떼가 나를 급습하는 듯한 공포감에 압도된다. 책을 포기하며 생리현상을 발산하는 내 아기 단우를 오른팔에 끌어다 머리를 눕히며 젖을 물려준다. ‘녀석! 강아지같이 잘도 빤다.’ 안 나올 때 입질로 제 어미의 젖을 머리로 들이받기를 반복하는 눈도 채 못 뜬 새끼 강아지 같다. 그래서 어른들이 손주 손녀를 보고서 ‘이쁜 내 강아지.’라고 하는 가 보다. 열 번을 빠는 가 싶더니 또 다시 등을 돌리고 잠을 잔다.



출근 마감 시간 20분전, 나는 워킹맘치고 출근이 빠른 편에 속한다. 어떤 경우는 카운트다운 몇 초전에 딱 맞춰 사무실 문을 열고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들어오는 여자들(!)에 비하면 나는 꽤 양심적이고 모범적인 사원이다. 내 컴퓨터에 팀장님이 앉아서 무언가를 하고 계시는데 나를 보시더니 엉덩이를 주춤거리며 일어나시려는 듯 한 행동을 하신다. ‘괜찮아요, 쓰세요 팀장님.’ 말해 버리고 평소와 달리 아예 먼저 옷을 갈아입으러 올라간다. 근무복 단추를 일부러 천천히 잠근다. 단화도 닦아서 신어본다. 그런데도 팀장님은 여전히 내 자리에 앉아 계신다. 꿀 발린 자리가 아닌데... 기다리기를 10여분, 아홉 시 땡 맞춰 들어오는 여직원이 지금 막 본서의 어느 사무실 문을 태연하게 열면서 들어가고 있겠지. 그와 동시에 팀장님이 일어나시고 비로소 나는 어엿한 직장인의 모습으로 내 의자에 앉아서 내부망 프로그램에 아이디를 집어넣는다.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온 모습이군. 스마트폰 패턴의 암호가 꼬인 듯 먼저 사무실 현관을 열기를 시작으로 내 자리에 가방을 놓고 로그인을 한 다음, 젖은 걸레로 책상을 대충 닦고 나서 옷 갈아입을 동안 식기를 기다리는 커피를 가장 뜨거운 온도에 맞춰 타 놓고 그러고 나서 그 날의 첫 번째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내 패턴인데 이게 오늘은 좀 꼬였다. 그래서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풀지 못한 것처럼 모니터를 마주하고 앉아 있는 내 자신이 좀 멍하다. 뭐부터 해야 하지? 아~! 커피가 없다. 그래 커피부터 타야지. 커피 한 잔을 책상 옆에 올려놓고 나서야 꼭 일을 할 때는 무슨 차라도 옆에 두어야 한다는 내 방식이 그동안의 고정관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키보드가 여자 구두 뒤축의 또각또각 굽 소리를 내면서 모니터 화면에 발자국을 찍어낸다. 보기 비율을 100%로 맞춰 놓고 10포인트짜리 글자를 타이핑하고 있자니 벌써 내 눈에 노안이 왔나 싶다. 의자를 끌어 당겨서 모니터에 더 바짝 얼굴을 갖다 댄다. 나는 꼭 모니터를 100% 비율에 맞춰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가 싶다. 125%는 과한 듯 넘쳐 보이고 75%는 와이드 모니터를 너무 형편없이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선지 난 누군가 꼭 화면 배율을 바꿔놔도 바로 100% 돌려놓는다. 이것도 내가 가진 고정관념 중의 하나일까. 꾸륵꾸륵~! 커피도 안마셨는데 또 배가 아프다. 새벽녘에 아프던 통증과는 다른 조금은 부드럽지만 무게감 있는 돌덩이가 아랫배를 지그시 누르는 듯 한 통증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오른쪽 전화기 두 대 옆에 있는 책상용 달력을 바라본다. 한 달이 이렇게 쉽게 흘러가다니. 아침의 설사병은 나의 달거리 전초전쯤 되는 에스트로겐 충돌작용에 불과한 것이며 이제부터 나는 일주일동안 팬티 대신 기저귀를 차고 있는 단우와 같이 불편한 차림으로 지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내년 봄에 태어났을 지도 모르는 아이는 딸이었을까? 조금은 끔찍하기도 약간은 슬프기도 한 졸업이수에 요구되는 필수 전공과목과도 같은 한 달의 필수 생리과정, 한 달 내내 꽃을 피우기 위해서 엄청난 속도로 쉼 없이 세포분열을 했지만 끝내 피우지 못하고 져버린 꽃 - , 이번 꽃은 딸이었을까.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나를 엉뚱함으로 똘똘 뭉친 4차원적인 사람쯤이나 지나친 비관주의자 이거나 아니면 매사에 불평불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염세주의자로 여길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극히 평범한 여자임을 밝혀둔다.



앞으로 내가 50살까지 꽃을 피울 수 있다고 가정해 보았을 때 이제 100여 번만큼의 기회만 기다리고 있다. 정상적인 신체구조를 가지고 태어나는 여자는 평생 동안 450번 정도의 생리를 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학책에서만 볼 수 있는 수치다. 우리 할머니 세대는 보통 적게는 다섯에서 많이는 열까지도 자식을 낳으셨다. 당장의 사남매를 낳으신 우리 할머니는 적어도 4년 동안은 생리를 하지 않았을 것으로, 더욱 분유를 먹여 키우던 때가 아니라 태어난 아이는 모유를 주 영양분으로 걸음마도 떼고 말더듬을 할 때까지 보편적으로 두 돌까지를 지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아이 당 생리를 멈추게 하는 시간은 3년이다. 우리 할머니는 적어도 12년 치의 생리를 거르신 것과 마찬가지의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요즘의 여성들은 아이를 많이 낳는다고 해야 2명이며 그 중에도 한명으로 끝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디 그 뿐인가. 내가 우스개 소리로 ‘나는 지금 모유수유 8년 차야.’라고 말하면 눈이 휘둥그레 놀라는 표정으로 ‘정말 대단하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게 사실이니까. 아이를 낳아도 모유수유로써 아이를 직립보행까지 시키는 사람이 요즘시대에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2년, 3년 터울이 지는 아이를 출산하는 동안 꼭 생리가 멈췄던 것은 아니었지만 임신을 출발로 해서 먼저 태어난 아이의 젖을 끊었을 정도이니 나의 30대 시절의 필수 생리현상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렇다면 나는 과학책대로라면 평생 해야 될 생리의 삼분의 이를 아직 채우지 못한 것이므로 50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계속 생리를 할 거라는 결론이 나오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게 다 넌 여자로 태어났으니 반드시 500번의 생리를 끝내야만 에스트로겐은 그제야 세력을 다해 사하고 테스토스테론이 왕성해져 갱년기가 온다는 뜻일까. 꼭 그런 뜻이라면 나야 반갑지 않을 리 없겠지만 평균적으로 옛날 여성들이 평생 동안 약 150여회의 생리만을 했다는 것을 보면 내 추론은 어긋나고만 만다. 다산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갱년기가 늦어지도록 할 수는 없을까 일말의 기대를 했던 내 자신이 한심하다.


어둠속에서 누군가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화장실 변기에 오줌을 눈다. 나는 오줌 누는 소리만 들어도 지금 생리현상 때문에 잠이 깬 놈이 큰 녀석인지 작은 녀석인지 안다. 같은 변기에 정우, 선우, 단우가 셋이 나란히 오줌 누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난다. 그렇지만 나는 갑자기 우울해진다. 딸만 키워본 엄마라면 절대 모를 고충 -, 아이들은 변기에 오줌을 눌 때 고추를 요리 조리 돌려가면서 사방에 오줌을 뿌려 놓는다. 그러면 매일매일 변기 닦는 일은 내 몫이 되고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 보니 누군가 화장실에 간다고 하면 ‘잘 눠라! 물은 꼭 내리고!’ 명령을 한다. 사내아이들은 타고나기를 오줌 누는 생리현상까지도 장난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천부적인 개구쟁이다. 곧 단우도 두껍고 무거운 기저귀를 벗어 던질 때가 됐는데 이제 내 잔소리가 더 늘어날 것 같단 걱정이 든다.



마트의 청소도구 파는 코너에 서서 진열대에 걸려있는 변기청소 솔들을 번갈아가 집어 보며 내가 변기 닦는 모습을 상상한다. 모양이 전체적으로 반원기둥 모양의 솔은 하수구로 직진하는 구멍 청소엔 적합하지만 변기 안쪽 구석의 틈을 닦기엔 부족하다. 납작한 사각모양의 솔은 반대로 구멍 닦이로 송편 빚기에 젬병인 남편 손과 같다. 종류는 10가지도 넘는 것 같은데 하나같이 5%내지 10%는 부족하다. 청소 솔 고르기를 포기하고 돌아서며 주방용품 파는 쪽으로 걸어간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세상에서 검게 탄 냄비 닦이용 쇠수세미로 닦는 변기가 제일 깨끗하더란 것을. 마침 그 옆에 나란히, 마치 세트인 듯 진열된, 내 눈엔 다소곳한 새색시 같이도 보이기까지 한 고운 핑크색 고무장갑도 집어 든다.



이정도가 되면 변기 닦는 것도 이미 절반쯤은 내 생리현상에서 나온 반사작용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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