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에는 아파트에 장터가 서는 날이라서 나보다 조금 먼저 돌아오는 아이들은 그 근처에서 나를 기다리거나 다른 놀이를 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큰 아이가 선우가 새로운 선우 친구를 사귀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제법 살이 통통하고 귀엽게 생긴 한 꼬마가 선우와 사이좋게 꼬치 어묵 한 개로 번갈아 가면서 한 입씩 베어 먹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핫도그 4개를 사서는 아이 곁으로 다가가서 핫도그 한 개를 선우 친구에게 건네주면서,
“선우야~! 이 친구가 선우니?”
“응, 엄마. 그런데 얘는 김선우야!”
선우와 이름이 같은 그 아이는 한눈에 척 보기에도 한 뼘은 더 커 보였으며 몸무게 또한 아직도 17킬로그램이 안 되는 선우보다는 최소한 3분의 1은 더 많이 나가 보일 정도로 건강한 체격을 가진 아이였다. 전에 아이들이 지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생각해 보니 그 선우는 외동이라고 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가끔씩 오늘은 ‘김선우와 놀지 못했다.’ 는 아쉬움 섞인 혼잣말을 하는 것을 몇 번 본적이 있던 터라 형제가 많은 우리 아이들은 어울릴 친구가 없어도 형제들끼리 무엇이라도 하고 놀 수 있었지만 외동이었던 그 아이는 함께 놀 친구가 없는 날엔 엄마에게 천원, 이천 원을 받아와 어묵 몇 개를 사서는 우리 선우에게 꼬치도 나눠주면서 그렇게 함께 어울리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우는 음식을 이렇게 잘 먹어서 키 도 아주 크고 건강하게 잘 생겼구나!”
마냥 아이들을 기다려 줄 수 없는 나는 세 아이와 선우를 다 같은 승강기에 태우고 그 아이가 사는 층에 내려 주면서 ‘이제 늦었으니 집에 들어가거라.’ 하고 친절한 이웃집 아줌마와 같은 인사를 보냈다.
이름과 성별이 같은 두 선우의 체격조건이 눈에 확연할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것에 속상한 나는, 그리고 언제나 밥 상 앞에서 음식 먹는 일은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행동하는 선우에게 그날 저녁 밥을 푸면서 평소의 그런 아이에게 오늘 저녁 마침 복수라도 하 듯 한 주걱 더 퍼서 평소보다 많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꾹 꾹 눌러 담았다.
그런데 선우는 평소보다 밥을 더 많이 먹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행동이 내게는 엄마가 김선우에게 튼튼하게 생겼다고 칭찬한 것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려는 선우만의 고집이며 방식이라고 여겼다. 어쨌든 그 자존심 덕분에 평소보다 많이 퍼 준 밥을 반 이 넘도록 먹었으니 오늘 선우의 몫은 다 한 셈이었다.
장면 2. 이른 감기에 걸렸던 단우
해는 일찍 저물어가고 있었지만 아직 가을이 온 것은 아니었다. 단우는 지난 삼사일 동안 부지런한 감기를 앓느라고 그렇게 좋아하는 부침개도 마다하면서 적게 먹은 음식마저도 기침과 함께 토해내 버리기 일쑤였다. 어제 아이를 데리러 가서 선생님께 단우가 오늘 어땠느냐고 물었을 때 오늘은 제법 살아난 듯 즐겁게 활동했다고 하면서 방방 놀이터에서는 그동안 아팠는가 싶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단우야~! 오늘 방방 놀이터에서 놀았어요?”
“응, 정말 재밌어~! 나중에 엄마도 해 볼래?”
“그래 좋아, 그런데 엄마는 어른인데 방방이 부셔지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가벼운 뜀뛰기를 해 보이면서,
“그러면, 엄마는 이렇게 살살 하면은 되겠다. 그러면 방방은 괜찮아.”
단우는 장터에서 파는 천 원짜리 핫도그에 캐첩을 발라먹는 걸 무척 좋아한다. 일단 먼저 달콤하고 새콤한 맛이 나는 캐첩이 묻은 부분부터 야금야금 먹고서 또 다시 캐첩을 지렁이 모양으로 뿌려 달라고 한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해야 핫도그 한 개를 다 먹을 수 있다. 캐첩이 빠진 핫도그는 단우에게 앙꼬 없는 찐빵과도 같은 것이며 절대로 캐첩의 도움 없이는 먹는 게 지루해져서 핫도그 한 개를 다 먹을 수도 없을 것이다.
핫도그로 배를 타 채운 단우가 저녁밥을 잘 먹을 리가 없다. 몇 번의 속임수 섞인 거래로 몇 숟가락을 먹이고 나머지는 내가 싹싹 긁어 먹고 만다. 어차피 이런 식의 식사가 내 저녁식사로 된지 오래전 일이지만 그래도 화요장터가 서는 날엔 처리해야 하는 잔반의 양도 많아진다. 그리고 오늘은 선우에게 저질렀던 내 소심한 복수가 고스란히 내 책임으로 돌아와 있던 것이 아니던가.
나는 온 몸이 나른하고 잠이 쏟아지는데 단우는 거실에서 큰 형과 한참을 놀다가 뒤 늦게 들어와 제 자리에 누우면서 한 마디 한다.
“엄마~ 나 기분이 아파!”
그런 아이를 부둥켜안으면서,
“우리 단우 기분이 아프니까 엄마가 치료해 줘야겠네?”
다 말라붙은 젖을 아이에게 한 번 물려주고 궁둥이를 토닥거려주었다.
“나 이제 잘래!”
“엄마가 도와줄게.”
내 손 바닥만한 배를 살며시 두드리면서 자장 자장을 해 주려고 하자,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려 누우면서 하는 말이,
“괜찮아~ 나 혼자 할 수 있어 엄마.”
늦은 시간이고 엄마처럼 온 종일 밖에서 지내는 아이는 금세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큼한 캐첩 냄새 같은 단우의 머리칼에 살며시 입을 맞추고 세상에 이보다 사랑스러운 아이가 또 있을까 하는 새삼스러운 감동에 아주 잠깐 마음이 울컥해 진다.
장면 3. 가장 마지막에 들어 온 가장 큰 정우
큰 아이는 가장 나중에 방안으로 들어왔다. 자기 전에 우선 화장실에서 오줌도 눠야 했고 언제나처럼 집안의 켜져 있는 불이 있는지 확인도 해야 했으며 더욱 오늘 밤은 자주 없는 수학 숙제를 푸느라 조금 골치가 아팠기 때문에 잠이 늦게 왔으리라.
“시간이 정말 잘 간다. 정우야 벌써 11시야. 어서 자자.”
평소대로라면 ‘응, 안녕히 주무세요, 사랑해요, 오늘 고마웠어요.......’ 하며 정우가 자기만의 래퍼토리를 읊조리면 나는 바로 ‘나도 사랑해 잘 자.’ 답례를 했었을 테지만 오늘 만큼은 정우에게 다른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제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정우를 지나치게 혼냈던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우리 정우가 벌써 아홉 살이네.”
“엄마,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어?”
“왜 갑자기?”
“사람은 보통 두 자릿수 이상을 살 수가 없어. 간혹 세 자릿수까지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극히 보기 힘든 일이야.”
“그러면 네 자릿수까지 살 수 있는 것은 없겠네?”
“아니, 있을 수도 있어. 우리가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거북이 있잖아.!”
“정우야, 거북이라고 해서 전부다 천년을 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설령 그렇다고 해도 매우 드문 경우지.”
“이제 세 달만 지나면 우리 정우도 두 자릿수네.”
“그게 뭔데?”
“열 살!”
정우가 어느 새 열 살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동안 내 마음대로 아이를 주물렀던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심히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그래서 이 순간 정우의 기분이 좋아질 수 있도록 무슨 말이라도 해 주어야 할 것 한다는 의무감 생겼다.
“그런데 엄마~! 친구 00는 오늘 수학 문제를 엄청 빨리 풀었어. 와 대단하지?”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아? 그렇게 빨리 풀었는지?”
“아니, 걔가 자기는 선생님이 숙제를 내자마자 답이 떠올라서 선생님한테 가서 귓속말로 답을 이야기 했는데 정답이라고 하셨대! 그래서 나도 빨리 해 보려고 했는데 아무리 해도 정답인 14가 안 나왔어.”
“정우야, 엄마가 보기엔 그 문제는 선생님이 내 주신 식대로 풀자면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14라는 답이 나올 수가 없어. 그 문제는 잊어버리고 내일 선생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잘 알아봐. 잘 듣고 와서 엄마한테도 이야기 해 주고. 그리고 정우야, 이제까지 본 아이들 중에 너처럼 그렇게 참을성이 많고 영리한 아이는 본 적이 없어. 무엇보다 너는 엄마한테 최고야.”
“최고가 가장 사랑한다는 뜻이지?”
“그렇지~”
정우는 이제야 모든 걱정이 풀렸다는 듯 안심한 목소리로 자기 전 주문과도 같은 그 래퍼토리를 중얼중얼 거렸다. 그리고 곧 깊이 있는 안정감 가득한 숨소리는 내 귓가에 ‘사랑해요, 고마워요,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었다.
장면 4. 나의 잠, 그리고 내가 꾸민 음모
이제 오늘의 내 소임을 다했으니 내가 잠이 들 순서였다. 그러나 일요일 아침 평소의 아침보다 잠이 더 일찍 깨는 아이처럼 이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나의 잠은 점점 더 먼 곳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이들을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하지만 참 잘 가지고 놀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이 피식하고 나왔다. 일전에 등교하는 차 안에서 선우가 말하길 ‘요즘에 형아는 엄마가 차에서 내려주기가 무섭게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가서는 자기를 좀처럼 유치원 앞까지 바래다주지 않는다.’ 는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 아이들을 깨우기 전 모든 준비를 말끔히 해 놓고 큰 아이를 제일 먼저 은밀하면서도 단호히 흔들어 깨웠다. 그리고 정우에게 용돈을 표시하는 보드 앞에 세워두고 500원을 표시하는 “正” 분명하게 써 주었다. 그리고 정우에게 ‘이것은 오늘 선우를 유치원 앞까지 데려다 주는 것에 대한 대가로 주는 것.’ 이라고 말했다.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을 정문 앞에 내려주었다. 정우는 친절하게도 선우의 손까지 잡고 유치원 쪽으로 걸어가면서 고개를 돌려 흘끗 나를 바라보면서 모종의 손짓을 하고 있었다. 선우도 나를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지만 오늘 아침에 형아가 베푸는 이 자상함과 듬직함이 엄마와의 뒷거래에서 나온 부자연스러운 행동임을 알아채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면서 “얘들아 즐겁게 보내~, 잘 다녀와~” 하고 인사를 했다.
이제야 나는 내 자신의 재미를 위해 아이들을 이용하는 것이 아님을 세상의 그 무엇보다 내게는 더없이 소중한 여김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임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내가 그렇게 나쁜 엄마가 아님에 위안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